의사 출신 역학조사관 대부분 공보의…낮은 처우에 지원 꺼려
입법조사처 “역학조사관 제도 개선·민간 활용 방안 등 고려해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최일선에서 싸우고 있는 역학조사관들. 감염 환자의 치료와 격리는 물론 접촉자에 대한 감염 관리 등이 주된 업무이기 때문에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감염현장에 투입되는 인력이 바로 역학조사관이다.

특히 감염병 발생 원인과 특성을 파악하는 역학조사를 통해 전염병의 확산을 막을 방역 대책을 세우는 이들은 질병 원인을 수사하듯 찾아야 하기 때문에 ‘질병 수사관’이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사스(SARS),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나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도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는 역학조사관들의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각 시도에는 두 명 이상의 역학조사관을 배치해야 하며, 그 중 한 명은 반드시 의사여야 한다.

현재 국내 역학조사관 수는 130여명으로 질병관리본부에 70여명, 광역시도 등 지자체에 5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문제는 의사 출신 역학조사관들의 상당수가 공중보건의사들이라는 점이다.

일부 시도에서 공보의가 아닌 일반 의사들을 역학조사관으로 채용하는 경우는 있지만 한 명은 공보의로 두고 나머지 한 명은 역학조사관 교육을 받은 공무원을 배치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공보의가 아닌 의사 출신 역학조사관 수가 부족한 건 이들에 대한 낮은 처우 때문이다.

질병관리본부 전문임기제 가급 역학조사관의 경우 의사 면허증 소지 후 의료기관·정부기관·기업체·실험실·학계 등에서 4년 이상 연구 또는 근무 경력자를 자격으로 한다.

하지만 지난 12일 질본이 게시한 전문임기제공무원(감염병 역학조사) 채용 공고에 따르면 전문임기제 가급의 2020년 연봉 하한액은 6,106만원 수준이다(상한액 없음).

나급은 경력요건(▲학사학위를 취득한 후 6년 이상 임용예정 직무분야의 경력이 있는 사람 ▲9년 이상 임용예정 직무분야의 경력이 있는 사람 ▲6급 이상 또는 6급 이상에 상당하는 공무원으로서 2년 이상 임용예정 직무분야의 경력이 있는 사람)이나 학위요건(▲임용예정 직무분야와 관련된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람 ▲임용예정 직무분야와 관련된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2년 이상 해당 분야의 경력이 있는 사람) 중 하나를 충족해야 한다,

학위분야는 ▲의학 ▲간호학 ▲수의학 ▲약학 ▲보건학이며, 직무분야는 ▲의료기관 ▲정부기관 ▲기업체 ▲실험실 ▲학계 등에서의 보건의료 경력이다.

다급 역시 경력요건(▲학사학위를 취득한 후 4년 이상 임용예정 직무분야의 경력이 있는 사람 ▲7년 이상 임용예정 직무분야의 경력이 있는 사람 ▲7급 이상 또는 7급 이상에 상당하는 공무원으로서 2년 이상 임용예정 직무분야의 경력이 있는 사람) 또는 학위요건(▲임용예정 직무분야와 관련된 석사학위를 취득한 사람 ▲임용예정 직무분야와 관련된 학사학위를 취득한 후 2년 이상 해당 분야의 경력이 있는 사람) 중 하나를 갖춰야 한다.

나급의 연봉 상한액은 7,591만원이며, 하한액은 5,058만원이다. 다급은 각각 6,204만원, 4,406만원이다.

더욱이 이들의 계약기간은 2년에 불과하다(근무실적이 우수할 경우 연장 가능).

전문임기제 가급의 자격 조건이 의사 면허증 소지와 4년의 경력임을 고려했을 때 의사 출신 역학조사관 부족을 단순히 의사들의 탓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는 게 의료계 목소리다.

한 예방의학과 전문의는 본지와 만나 “의사 면허를 취득하고 몇 년의 경력도 요구하면서 6,100만원을 주겠다고 하면 누가 지원하겠냐”면서 “차라리 인원을 줄이고 제대로 된 대우를 해 주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감염병 치료 및 대응이라는 업무 특성상 역학조사관 선발을 의사 위주로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의사출신 역학조사관 A씨는 “‘왜 역학조사관을 굳이 의사가 해야 하나, 부족하면 다른 사람들을 뽑아서 교육시키면 되지 않냐’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면서 “하지만 사례분류나 기본적인 역학조사관 업무 자체가 감염병에 대한 지식과 환자의 임상증상을 파악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또 “의대에서는 예방의학을 배우기 때문에 역학에 대한 학습도 가능하다”면서 “이에 역학조사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은 의사가 돼야 한다”고 했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도 “역학조사관으로서 능동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선 질환과 공중보건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필요하다”면서 “이를 위해선 의사 출신 역학조사관이 더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이에 역학조사관 채용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병율 전 질병관리본부 본부장은 지난 10일 본지와 만나 “(지역사회 전파 가능성 증가 등으로 역학조사관 부족 문제가 심각해질 텐데) 채용이 쉽지 않다. 지금 질본 내 가급(의사) 역학조사관이 3명인데, 이들도 3년 계약직”이라며 “신분이 안정되지 않으면 사람이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 전 본부장은 “질본에서 3년 계약직으로 있는 사람들도 결국 복지부 5급 사무관 채용할 때 가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며 “(행정고시 출신 외) 복지부 사무관 채용은 인사혁신처에서 서류검사를 통해 하는데,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관이 사무관이 되기 위한 스펙으로 사용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 전 본부장은 “이런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역학조사관 채용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을 경우 (역학조사관 부족)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회에서도 우수한 역학조사관 확충을 위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국회 입법조사처 정치행정조사실 행정안전팀 입법조사관과 사회문화조사실 보건복지여성팀 입법조사관은 지난 12일 발간된 ‘이슈와 논점’에 기고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응체계현황과 향후 과제’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들은 “신종 감염병 유행 시 신속한 대처를 통해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감염병 발생 시 가용할 수 있는 보건의료자원의 확충이 필요하다”면서 “역학조사관 관리에 있어서는 각 시·군·구에도 자체적으로 역학조사관을 배치할 수 있도록 하고, 역학조사관으로서의 비전과 명확한 역할을 제시해 우수한 역학조사관이 확충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개선과 민간 전문가 그룹 활용에 대한 방안 등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피력했다.

역학조사관 A씨는 보건소의 진료 기능을 줄이는 대신 공보의들을 역학조사관으로 투입하는 방안이 더 효율적이라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A씨는 “정부나 시도에서 역학조사관 채용을 위해 공고를 계속 내기는 하지만 보수 등 처우문제가 있다”면서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공보의를 활용하는 게 더 좋을 수 있다. 시도에 (역학조사관으로)공보의가 한 명씩 배치돼 있는데 이 정원을 조금 더 늘려주는 방안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A씨는 이어 “보건소가 질병 예방 등에 초점을 맞추고 진료 기능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면서 “(보건소에서의) 공보의 진료도 조금씩 줄고 있다. 공보의 역학조사관을 늘리면 역학조사관 업무도 조금씩 원활해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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