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의협 “한의사를 Medical Doctor라고 표현하는 건 허위 내용”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이 세계의학교육협회(World Federation of Medical Education, WFME)에 ‘한의사는 대한민국에서 의사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낸 서신이 공개돼 논란이 일고 있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17일 박 장관이 세계의학교육기관(World Directory of Medical Schools, WDMS)에 한의대가 등재되도록 이같은 서신을 작성해줬다며 파면과 처벌을 요구했다.

지난 2018년 10월 한 토론회에서 당시 대한한의사협회 부회장은 한의대의 세계의학교육기관(WDMS) 등재를 위해 복지부 장관이 ‘한의사는 대한민국에서 의사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내용의 서신까지 작성해 줬다고 밝혔다.

이에 병의협은 정부가 나서서 의료법에 규정된 의료인의 면허범위를 부정하는 서신을 보냈다며 같은해 11월 6일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정보공개를 거부했고, 이의신청에도 기존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결국 박 장관이 보낸 서신 공개는 법정 공방으로 이어졌다. 병의협은 2018년 12월 24일 서울행정법원에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고 이듬해인 2019년 9월 5일 1심 재판부는 복지부가 내린 정보공개거부처분을 취소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복지부는 항소했지만 지난해 12월 12일 서울고등법원은 ‘1심 판결이 정당하다’며 기각했다.

이에 복지부는 해당 서신을 공개했다. 복지부가 세계의학교육협회에 서신을 보낸 건 2018년 6월 7일이었으며, 서신은 몇 가지 이유를 들어 한의대를 WDMS에 등재시켜달라고 부탁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또 서신 서두에는 지난 2010년 복지부가 WHO AVICENNA에 ‘한의사가 의사의 한 종류로 분류된다는 내용의 문서를 전달한 바 있다’고 돼 있다.

병의협은 “한의사가 의사의 한 종류라는 허위 사실을 적시한 건 의료법 제2조의 의료인 면허 범위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더욱이 해당 서신에는 한의사를 ‘Medical Doctor of Korean Medicine’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Medical Doctor(MD)는 국제적으로 의사를 지칭하는 단어로 한의사를 Medical Doctor라고 표현하는 건 허위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또 “복지부 장관은 서신을 통해 한의대의 WDMS 등재를 4가지 이유를 들어 부탁하고 있는데 그 첫 번째로 ‘한의사가 독립적인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합법적인 의사(legitimate medical doctors)이고, 한의대 커리큘럼은 과학의 원칙에 기초한다’고 했다”면서 “하지만 한의사는 한의학적 원리에 기초해 교육받고 있고, 한방 의료만을 독립적으로 실행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두 번째 이유로 ‘한의사 면허를 정부가 관리한다는 점’과 ‘한의사가 일차 의료에 종사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출생증명서 등의 정식 의료 서류를 발행할 수 있는 자격’이 있으며, ‘군의관이나 지역 보건소의 공중보건의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들었다”면서 “이러한 두 번째 이유 역시 전혀 설득력이 없고, 왜곡된 내용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중의대는 WDMS에 등재가 돼 있는데 한의대가 등재 돼 있지 않다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서신 내용에 대해서는 “서신이 발송된 지 몇 개월 지나지 않은 2019년 1월에 중의대도 WDMS에서 퇴출돼 주장의 근거가 사라졌다”고 꼬집었다.

이와 함께 “서신에는 ‘한의학 교수들과 연구원들이 증거에 입각한 의학의 원칙에 따라 논문을 발표해 왔다’고 했지만 정부가 연구 용역을 준 경우에도 한의학 교수나 연구자들은 증거에 입각한 의학 원칙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전혀 설득력이 없다”고 했다.

이에 병의협은 이러한 서신을 보낸 박 장관의 즉각적인 파면 및 처벌과 친한방 정책 폐기 등을 요구했다.

병의협은 “WDMS에서 한의대와 중의대의 퇴출이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면서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의학의 기준은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서 효과와 안전성이 검증돼야 하고, 그 결과가 인류의 생명을 보호하고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는 학문이어야 한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러한 국제적인 기준과 공감대는 선진국이라면 누구나 따르는 것인데, 이에 역행하는 나라가 대표적으로 중국과 대한민국”이라며 “국가가 진정으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과학적으로 효과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학문은 보건 의료의 영역에서 모두 퇴출시켜야 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한의학의 과학적인 검증을 통한 퇴출 작업을 시작하면서 의료에 있어서 국제적인 흐름을 따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병의협은 “복지부 장관이란 사람이 국내 의료제도의 근간인 의료 이원화를 부정하면서까지 허위 사실에 근거한 서신을 세계의학교육협회에 보냈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라며 “박 장관의 즉각적인 파면 및 처벌과 부작용만 양산하면서 세계적인 흐름에 역행하는 친한방 정책을 폐기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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