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16개 시도醫 “충분한 사전 협의 없이 현실 도외시한 채 상명하달 하듯 배포”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관련한 의원급 의료기관 감염관리지침을 발표하자 의료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정부가 당사자인 의원급 의료기관들과의 충분한 사전 협의 없이 실제 진료환경의 현실을 도외시한 채 일방적으로 지침을 배포했다는 게 그 이유다.

대한의사협회와 16개 시도의사회는 지난 12일 성명을 통해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의원급 의료기관용 코로나19 감염예방, 관리지침의 내용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며서 “정부는 더 이상 의료계의 협조와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말라. 전폭적인 지원이 어려우면 최소한 양해를 먼저 구하고 존중의 태도라도 갖추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단체들은 “질본 지침에 따르면 의원급 의료기관은 감염관리자를 지정하여 감염예방관리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면서 “그러나 대부분 의사 한명을 포함한 소수의 인력으로 운영되는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감염관리자를 별도로 지정해 대책을 수립하고 행정적으로 관리한다는 게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지침은 ‘환자의 대기구역이 과밀하지 않도록 하고 대기 환자의 배치를 관리하라’고 지시하고 있으나 의원급 의료기관의 환자 대기구역은 접수대와 인접해 있고 매우 협소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환자 사이의 거리를 최소 1m 이상 유지하라’는 지침 내용 역시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신고대상에 부합하는 환자가 확인되면 환자를 독립 공간으로 이동시키면서 다른 환자 및 방문객들의 노출을 최소화할 수 있는 동선으로 이동하라’고 하고 있으나 공간이 협소한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이것이 가능하겠냐” 반문했다.

단체들은 질본의 지침이 마련되고 발표되는 과정에서 당사자인 의원급 의료기관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전혀 없었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단체들은 “이러한 지침이 마련된 이유는 신종 감염병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함일 것”이라며 “하지만 정말 감염병 확산을 막자는 것인지 아니면 이제 지침을 발표했으니 이를 지켜지지 않아 발생하는 감염병 확산에 대해선 의료기관에게 모든 책임을 묻겠다는 것인지, 그 의도가 매우 의문스럽다”고 우려했다.

이어 “이와 같은 의구심은 단지 의료계의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라며 “최근 정부는 메르스 사태 당시 감염병 확산의 책임을 삼성서울병원에 묻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하고 있다. 서울고등법원이 ‘메르스 확산의 책임을 삼성서울병원에게 물을 수 없다’고 판결했지만 보건복지부는 이 판결에 불복해 상고를 제기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와 같은 지키기 어려운 지침을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것에 다른 의도가 있는 건 아닌지 합리적인 의심이 드는 건 당연하다”고 했다.

단체들은 “현장의 의원급 의료기관들은 중국으로부터의 감염원 차단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현실과 맞지 않는 사례정의에 따른 혼란을 감수하면서 마스크, 손 소독제 등과 같은 기본적인 위생용품조차도 오직 개별 의료기관의 힘으로 어렵게 조달하면서 버텨나가고 있다”면서 “확진자 발생으로 진료가 중단되면서 피해를 입는 의료기관이 늘어가고 있는데도 정부는 아직까지도 구체적인 보상이나 지원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단체들은 “이런 와중에 일방적인 지침 발표가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이뤄지는 것을 보면서 그나마 갖고 있던 정부에 대한 작은 기대마저도 저버리게 만든다”면서 “민간의료기관은 정부가 상명하달 할 수 있는 공공기관이 아니다. 정부는 더 이상 의료계의 협조와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지금이라도 의료계 의견을 수렴해 비현실적인 지침을 철회해야 한다”면서 “나아가 의료기관에 대한 지원과 보상을 전제로 한, 실현가능한 지침 마련에 즉각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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