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천숙 부산 미래아이 여성병원 산부인과

여느 때처럼 출근준비를 하며 화장대에 앉아 로션을 바르고 있는데, 갑자기 견딜 수 없이 숨이 막힌다. 왜 이러지? 나는 원래 폐가 약하다. 아버지처럼 폐암인가? 덜컥 겁이 난다. 요즘 분만과 수술이 너무 많아서인지 왼쪽 어깨와 목이 너무 아파 어젯밤 잠을 설쳤었다. 혹시 그 탓인가… 갱년기? 뇌종양? 걱정을 잔뜩 하며 지하철을 탔다. 20년 전 - 방향치에다 성격이 급한 나는, 차를 끌고 나간 첫 날 사고를 냈다. 그 이후로 쭉 지하철을 타고 책을 읽으며 출퇴근 한다. 대개는 나 출근할 때 다른 사람들도 다 출근하므로 자리가 없는 건 물론이요, 어쩔 땐 책을 펴기도 민망할 만큼 비좁다. 어라? 근데 오늘은 평소와 달리 텅텅 비어 좌석이 많다. 아! 오늘 토요일이지! 토요일은 평일과 달리 지하철이 텅텅 빈다. 나는 두 자리 차지하고서는 편하게 책을 읽으며 간다. 계속 가슴은 답답한데, 그래도 기분이 좋아서인지 견딜만하다.

‘사람이 무엇을 희구해야만 하는가를 안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결국 우리 존재는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볍다. 그러나 또한 한 번 뿐이므로 너무나 소중하다. 영생과 윤회는 별개의 문제다. 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고통과 행복을 느끼는 생은 지금 생뿐이다.’

읽을 때마다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진다. 그래, 내 생은 한 번뿐이다. 오늘도 하루뿐이고. 토요일 일 하기 싫지만, 오늘도 열심히 살아야지.

지하철에서 내리면 우리 병원까지는 약 5분을 걸어야 한다. 걷는 중에 흙냄새가 훅 풍기며 비가 한 두 방울 내리기 시작하더니, 병원에 도착하자 쏴~ 소나기가 쏟아진다. 가을에 왠 소나기. 근데 참 운이 좋다. 마침 병원에 도착하니까 비가 많이 내려, 다행히 별로 젖지 않았다. 우산도 안 가져왔는데 지하철역에서부터 비가 내렸으면 꼼짝없이 다 젖을 뻔 했다.

진료실에 앉아, 좋아하는 빵인 샤니 꿀호떡을 커피와 먹으며 입원 환자와 분만실을 체크한다. 자, 보자…입원 환자가 12명, 분만실에는 3명이 누워있다. 한 명은 양수가 적어 유도분만중인 초산모이고, 한 명은 태아가 옆으로 누워있어 제왕절개 해야 하는 파키스탄 산모다. 그 둘은 내가 스케줄을 잡아놔서 알겠는데, 한 명은 누구지? 나는 꿀이 듬뿍 든 빵 한가운데를 한 입 베어 물며 나머지 산모의 차트를 펼쳐본다. 달콤한 맛이 입 안 가득 퍼진다. 아! 양수가 터져서 유도분만 중인 경산모 희진씨다. 오늘 새벽에 입원 했구나. 둘째고, 예정일이 다 되었으니 별 일 없으면 잘 분만할 것이다.

다시 화면을 외래로 돌리자 대기환자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아직 진료를 시작하려면 30분이나 남았다. 오늘은 토요일 – 산모들이 남편과 대거 몰려들 예정이다. 또다시 가슴이 답답해진다. 언제 3명 분만 받고, 외래를 다 봐 내나. 갑자기 먹던 빵의 맛이 안 느껴진다. 일단 회진을 돌기 위해 우선 분만실로 올라간다. 근데, 올라가자마자 희진씨가 갑자기 진행이 다 되어 분만을 준비하고 있다. 이 산모는 첫째 아이도 내가 받아주었다. 불평이 많고, 성격도 다혈질이라 첫 아이 때는 다소 나를 힘들게 했다. 하지만, 한 번 마음을 내어주면 전적으로 믿는 성격이라, 둘째 아이 때는 참 편했다. 산모는 당직 선생님께 출산을 하나 했다가 나를 보게 되니 엄청 기뻐한다. 나도 진료 전에 한 명은 해결할 수 있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하하. 다른 날보다 일찍 오길 잘 했네. 게다가 첫째도 잘 낳았던 산모는 둘째도 두어 번 힘 주더니 순풍 낳았다. 태아는 똥바가지를 뒤집어썼으나 건강하게 태어났다.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이다. 얼마나 빨리 분만을 처리했는지, 외래로 다시 내려왔더니 커피가 아직도 따뜻하다. 나는 내가 마치 관운장이라도 된 듯 기뻐 어깨가 으쓱하다. 나 이런 사람이야. 산부인과 의사 십수년이면, 타 놓은 커피가 식기 전에 분만을 끝내고 온다구. 어제 미칠 듯이 아파 잠을 설쳤던 어깨도 거짓말처럼 안 아프다. 나는 남은 꿀호떡 하나를 재빨리 커피와 함께 입안에 우겨 넣고 진료를 시작한다.

다행히 진도가 정말 잘 나간다. 복잡한 질환을 가지고 오거나, 말이 많은 환자를 만나면 계속 시간이 지체되고, 환자들은 2시간 넘게도 기다리게 된다. 그러면 밖에서 기다리는 환자들의 한숨 소리가 들리고 눈총이 따가워, 나는 화장실도 못 가고 진료를 본다. 근데 오늘은 산전검사 온 산모들이 혈압이나 태아 크기나 검사결과들이 좋고, 치료 받으러 온 환자들도 어디 주말여행이라도 가는지 별 궁금한 것도 없이 빨리빨리 자리를 뜬다. 하하 대기환자가 쑥쑥 준다. 2시간쯤 정신없이 진료를 봤을 때쯤, 때맞춰 제왕절개 예정인 산모의 수술준비가 끝났다는 연락이 온다. 나는 수술방으로 가는 와중에 화장실에 들러 참았던 요의를 해결한다. 참 절묘한 타이밍이다.

수술방에 들어가니 척추 마취를 끝내고, 침대를 비스듬히 기울여서 태아에게 산소를 잘 가게 한 상태로, 산모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녀는 파키스탄 사람으로, 아직 한국어를 전혀 못 한다. 어떻게 만나 결혼을 했는지는 모르나, 그녀는 영어를 하고 좀 배운 티가 나는데, 남편은 영어도 못 하고 노동일을 한다. 남편은 그나마 일을 하다 보니, 서툴긴 하지만 한국어로 의사소통은 된다. 산모 입장에선, 어쨌든 말 안 통하는 타국에서 출산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터다. 내가 인사를 건네자 긴장한 산모의 얼굴에 안도의 표정이 떠오른다. 차가워진 손을 쥐자 산모가 꼭 잡고는 놓지를 않는다. 걱정하지 마셔요. 제가 수술 잘 해 드릴게요. 손 씻고 가우닝 하고 수술을 시작한다. 대개 태아가 옆으로 누워있으면 참 꺼내기가 힘들다. 이 태아는 임신 중에 태내에서 바로 누웠다가 거꾸로 누웠다가를 반복하더니 결국 막판에 옆으로 누워버렸다. 이런 자세인 경우, 자궁 절개를 한 후에 태아가 잘 안 나와 곤란할 때가 많다. 한참 꺼내려고 애 쓰다가 T자형으로 더 절개를 해야 되는 경우가 흔하다. 나는 미리 소독된 배 피부를 열고, 지방층, 근막층, 근층, 복막층을 차례로 지나 자궁에 접근한다. 자궁을 절개하자 태아의 오른팔이 쑥 빠진다. 태아는 옆으로 누워 있으면서 머리가 위쪽으로 있다. 팔이 먼저 나왔으므로 엉덩이부터 꺼내기는 힘들다. 머리를 아래로 돌리고, 엉덩이를 위로 밀고, 어깨를 당기고 한 끝에 태아를 무사히 꺼냈다. 생각보다 그렇게 힘도 안 들었고, 애기도 어디 문제없이 나와서 곧바로 잘 운다. 정말 감사하다. 매번 걱정하던 일이 이런 식으로만 풀려주어도 얼마나 좋을까.

수술을 뒷마무리 한 후, 유도 분만중인 초산모를 살펴보러 간다. 그녀는 참 착한 산모다. 산전검사 다닐 때도 별로 말이 없었고, 거의 존재감이 없을 정도로 조용히, 그러나 빠지지 않고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녔다. 정말 희한하게도 그녀에 대해서는 무엇 하나 구체적으로 생각나는 게 없다. 다만, 푸른빛을 띤 맑은 흰자위와 긴 속눈썹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내가 설명을 하면 잘 따랐고, 양수량이 너무 적어 예정일까지 기다릴 수 없다고 하자, 두 말 없이 유도분만을 위해 입원을 했다. 내진을 해보니, 진행 속도가 나쁘지 않아, 저 상태이면 외래 마칠 때쯤 애기가 나올 것 같다. 오늘은 아침부터 운이 좋으니 마지막 산모도 순산 할 수 있겠지. 태아 모니터도, 산모의 생체징후도 정상이다. 자, 두세 시간 후면 애기가 나올 것 같아요. 조금만 더 힘냅시다. 그녀는 긴 속눈썹을 깜빡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다시 두어 시간 외래에 매여 정신없이 환자를 본다. 배란일 잡던 환자가 두 명이나 임신이 되어 뿌듯하다. 지난주 조직검사 한 환자도 결과가 좋다. 일주일의 피로가 가장 많이 누적되는 토요일이고, 분만, 수술로 다른 날 같으면 힘들만 한데도, 오늘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신나서 진료를 한다. 이 참에 외래환자 수 기록이라도 세울 참이다.

근데, 갑자기 분만실에서 전화가 온다. 진통중인 초산모가 거의 진행이 다 되었는데, 갑자기 태아 심장 모니터가 이상하니 빨리 와서 봐 달라는 것이다. 나는 보던 환자를 내팽개치고 바로 분만실로 달려간다. 태아의 심장박동이 이상하게 뚝뚝 떨어지고 있다. 산소를 주고, 수액을 주고, 자세를 바꾸어도 소용없다. 회복되지를 않는다. 무슨 이유인지 태아가 위험하다. 나는 남편과 산모에게 응급 수술을 설명 하고, 바로 수술 준비를 한다. 그 모든 준비를 하는데 채 몇 분이 걸리지를 않는다. 태아에겐 1분 1초가 생명에 직결된다. 급하니 마취약이 하반신에 퍼지도록 기다려야 하는 척추 마취는 할 수가 없다. 마취과에서 전신마취를 하는 동안, 나는 베타딘을 배에 들이부어, 소독 시간을 줄인다. 매스로 피부와 지방층과 근막을 한 번에 절개하고, 손으로 근육을 벌리고 장막을 찢은 다음, 수 초 만에 바로 자궁에 접근하여 태아를 꺼낸다. 태아는 첨에는 쳐지고 피부색도 안 좋았으나, 와서 기다리고 있던 소아과 선생님의 응급 처치 하에, 금방 색깔이 돌아오면서 울기 시작한다. 살았다…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런데… 마취과에서 나를 부른다. 산모가 이상하단다. 나는 순간 이해가 안 되어 웃으며 뭐가 이상하냐고 한다. 산모가 이상할 게 뭐가 있는가. 태아가 잘 나왔는데. 마취 포 건너로 산모의 얼굴을 건너다본다. 그런데…뭔가가 잘못 되었다. 산모의 얼굴 색깔이…얼굴 색깔이 이상하다. 잿빛. 이게 무슨 일인가. 갑자기 산소 포화도가 뚝뚝뚝 떨어지며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한다. 나는 금방 막 태반을 꺼낸 자궁에 수술 거즈를 우겨 넣어 출혈하지 않게 채우고, 자궁과 배를 꼬매지 않은 채 복대로 동여맨 후, 침대위에 올라타고 바로 가슴 압박을 시작한다. 이유는 모르나 산모의 생명이 위험하다.

“빨리, 빨리 응급차 준비해요!!! 빨리 !!!!“

내가 갈라진 목소리로 미친 듯이 소리친다. 마취과는 암부를 짜고, 나는 침대위에서 가슴 압박을 하고, 나머지 사람들이 전속력으로 침대를 밀어 수술방을 나가 엘리베이터로 향한다. 대기하고 있던 남편과 다른 산모의 보호자들이 일제히 우리 쪽을 쳐다본다. 나는 산모의 남편과 잠깐 눈이 마주친다. 일순 의아해하던 그의 눈빛이, 내 표정을 보더니 두려움으로 바뀐다. 뒤따라오던 간호사가 남편의 팔을 잡아끌고 오며 상황 설명을 해준다. 우리는 엠블란스를 타고 요란한 소리를 울리며 출발하였으나 주말의 도로는 극심한 정체상태다. 운전하는 박 실장님은 이를 악물고 중앙선을 넘나들며 아슬아슬하게 곡예를 한다. 마치, 우리가 죽지 않으면 산모가 살 수 없기라도 하는 것처럼. 일단 심장박동은 돌아와, 나는 온 힘을 다해 암부를 짠다. 비교적 가깝다고 여겼던 대학병원은 마치 계속 도망가는 것처럼 쉬 도착해지질 않는다.

마침내, 내겐 영겁의 시간 후에 도착한 대학병원의 응급실 – 밝은 노란색 빛이 마치 천국에 도착한 듯 머리위에 비춘다. 연락을 받고 기다리고 있던 대학의 의료진이 신속하게 산모를 인계 받아 데리고 간다. 산모의 남편과 박 실장은 밖에서 기다리고, 나는 일단 안쪽까지 대학 의료진을 따라가며 상황설명을 한다. 그러나 곧 마취과와 산부인과, 그리고 다른 선생님들이 응급처치를 하는 부산한 움직임에, 나는 조금씩 산모로부터 밀려난다. ‘선생님은 조금 나가 계시죠.‘ 나는 들어 온 쪽의 반대편에 있는 다른 문밖으로 쫓겨난다. 유리문을 통해 내 산모의 침대를 아무리 열심히 바라봐도, 다른 의료진들 때문에 산모를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문득, 아직 수술 모자를 쓰고 수술 실내화를 신고 있는 내 모습이 유리문에 비쳐 보인다. 암부 짜느라 감각이 없어진 손과, 산모의 피가 묻은 수술복을 내려다본다. 두 손이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갑자기 다시 가슴이 답답해온다. 수술 전 혈색이 좋은 산모가 긴 속눈썹을 깜빡이며 웃던 얼굴이 떠오른다. 뒤이어 잿빛으로 변해서 끝내 혈색이 돌아오지 않던 산모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게 다 무슨 일인가…숨이 점점 막히더니, 답답한 가슴의 응어리가 눈물이 되어 왈칵 솟아오른다. 나는 응어리가 터져 나오는 소리를 죽이려고 입을 틀어막는다.

어쩐지 오늘 이상하게 너무 운수가 좋다 했더니….

의사들은 누구나, 가슴에 주홍글씨처럼 잊지 못할 환자를 한 명씩 새기며 살아갑니다. 의사도 인간이고,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직업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때로는 가혹해서, 어째서 의대를 갈 때 '멘탈 테스트'를 하지 않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안으로도 괴로운데 밖에서도 옥죄이니, 후배 의사들은 점점 그런 아픔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과를 선택합니다. 산부인과에서도 신조어로 'pap-er'(파퍼-pap하는 사람)가 생겼더군요. 힘든 분만이나 수술은 하지 않고 간단한 검진만 하겠다는 거지요. 하지만, 아무도 그들에게 좁은 길로 가라고 말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런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번엔 그런 현실과 불가항력 사고에 대해 쓰고 싶었습니다. 사고에 대해선, 아픈 기억이라 사고 자체보다는 우리 일반 봉직의의 일상쪽에 좀 더 초점이 맞춰졌어요.

사람들이 제 글을 읽고 잃었던 꿈을 다시 꾸고, 힘든 마음을 추스리며 '그래도 인생은 살 만하다'라며 다시 힘차게 내일을 시작할 수 있는, 언젠가는 그런 글을 쓰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제 글을 뽑아주시고, 멋진 평도 해주신 심사위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좋은 소식 전해주시고, 매번 애 쓰시는 청년의사에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 글을 여기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아깝게 떨어진 다른 선생님들도 내년엔 꼭 좋은 소식 있으시길 빌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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