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홍콩 공공의료조합인 ‘Hospital Authority Employees Alliance’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폐렴의 확산을 막기 위해 중국 본토와 국경을 폐쇄하라는 대정부 요구를 했다. 그리고 이 요구가 지켜지지 않을 경우 공공의료기관의 파업을 단행할 것을 선언했다. 이런 주장은 급속히 확산하는 신종 전염병의 확산력을 감안할 때 홍콩이 보유하고 있는 인력이나 격리시설, 방호복 등이 이를 감당할 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홍콩을 새로운 전염병으로부터 차단하고 방어하는 길은 중국과의 교통을 막는 조치가 시급히 필요하다는 전문가 집단의 주장으로 풀이된다. 이후 실제로 파업은 진행되었고, 다수의 공공기관 근무 의료인들이 파업에 동참했다. 물론 필수 의료에 종사하는 인력은 파업에 동참하지 않고 있으나 홍콩 정부가 중국과 국경폐쇄를 하지 않을 경우 파업은 필수의료도 포함될 수 있다는 엄중한 입장이다.

우왕좌왕하는 정부와 여당 되레 전문가단체에 “정치적 판단”이라며 매도

우리나라 역시 대한의사협회가 새로운 감염성 질환에 대한 우려와 중국과의 지리적 근접성에 의한 엄청난 규모의 인적 교류를 걱정하여 중국 출발 외국인의 입국을 통제하도록 이미 수차례 요구했다. 정부가 내놓은 조치보다 더 엄격한 대응을 요구하고 있는데 정부는 여전히 중국인의 입국 통제에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입국제한도 ‘후베이 성 출발인’으로 한정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감염 병이 등장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문재인 대통령은 재빨리 국립중앙의료원을 방문하여 전염병 대처에 과하다 싶을 정도의 과감한 조치가 필요다고 역설했고, 방역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주장하는 대로 과하다 싶을 정도의 조치는 아직도 제시된 적이 없고 중국의 눈치를 보는 것인지 아니면 중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경제적 손실이 우려되는지, 중국 발 외국인의 전면 입국금지에는 매우 소극적이다. 이런 가운데 여당은 한술 더 떠 대한의사협회의 주장이 정치적 판단이라고 거친 톤으로 비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전문가집단의 위치는 관료를 능가하지 못한다. 전문가가 모인 전문가를 대표하는 집단에서 내린 판단을 관리들과 정치인이 모여 정치적 판단을 내리고 이런 판단이 전문가 집단의 판단보다 언제나 우월적이고 우선적이다. 관료주의와 통제주의에 바탕을 둔 사고는 대통령이 국립의료원을 방문하여 의료인의 노고에 대한 감사의 말 보다는 우한폐렴의 확산이 마치 의사의 잘못된 감염병 검역조사인 것처럼 처벌까지 운운했다.

홍콩 의료인단체 국경폐쇄 요구 VS 우리나라 의사단체 정부 압박에 가위 눌려

대통령과 간담회를 했다는 전문가 집단도 정권의 진영논리에 부합하여 보인다. 속칭 자기편이라고 생각하는 편리한 소집단을 상대하고 그들의 제언을 바탕으로 제한된 중국인 입국 허용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제 23명의 확진 환자(2월6일 오전 기준)가 현실이 되고 얼마나 빠른 속도로 새로운 환자가 발생할지 예측을 불허하고 있다. 홍콩의 의료인들이 국경폐쇄를 요구하는 파업에 임하고 있는 상황에 비춰본다면, 우리나라 의사단체는 국가적 차원의 긴급 위기 상황에 대해 정부정책과 정부 대응에 대해 매우 조심스럽고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처럼 보인다.

홍콩은 잘 알다시피 오랜 기간 동안 영국의 지배를 받아왔고 영국식 사회규범을 많이 도입하고 정착시켰다. 익히 영국의사회의 영향을 받아 의사회의 단체적 성격도 잘 규명되어 있다. 의사단체가 회원의 이익을 위한 조합의 형태와 의학적 전문 직업성을 위한 자율규제단체로 구분되어 있다. 의사의 파업도 알고 보면 영국의사회로부터 잘 전수받은 의료인의 권리에 대한 사회적 이해도와 수용도가 높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홍콩의 민주화로 사회 전반이 어수선한데 중국과의 국경 폐쇄 문제로 정부와 다시 긴장의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그래도 중국이나 우리나라처럼 파업의 주동자 색출과 연행, 그리고 공안기관의 의사단체에 대한 위협은 찾아보기 어렵다.

WHO 정치적 행보 속 우리 정부 ‘해야 하는 조치’보다 ‘하고 싶은 대응’에 힘 쏟아

중국은 우한에서 근무하는 비교적 젊은 의사진이 지난 1월 초 변종 바이러스에 의한 새로운 전염병 가능성을 언급했다가 공안에게 붙들려 반성문을 쓰고 풀려났다고 한다. 지금은 상황이 역전되어 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고 전해진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1970년대 수준으로 보이는 공안의 과도한 개입현상을 ‘소환’하여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 정권 역시 ‘응답하라 1987’ 수준이어서 중국보다 조금 낫기는 해도 아마도 의사단체의 파업에는 정부와 여당은 의사집단에 대한 ‘반사회적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기획, 증폭시켜 사회적으로 매장시킬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감염병이 문제가 되고 있는 시국에서 의사집단이 반사회적 행동을 한다는 줄거리를 들고 나올 것이 뻔해 보인다. 그럼에도 언제부터인가 세계보건기구(WHO)의 입장에 따라 아직 감염 병이 위협적으로 창궐하지 않고 있으니 불안에 떨지 말고 반가운 마음으로 우리의 이웃인 중국인들을 맞이할 것을 설파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는 세계보건기구가 권장하는 많은 사안에 대해 지키지 않는 것들이 비일비재한데, 위급한 상황에서 유난히 사람과 물적 자원의 자유로운 이동과 교역 문제만큼은 선제적으로 나서서 충실히 지키려고 노력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의사단체가 지니는 파업의 권리는 의사가 갖는 노동자적 신분의 속성을 존중하고 노동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전염병이 확산되어 기존의 인력이나 시설로 방역이 불가능할 때 당연히 의사나 다른 의료인은 자신들의 건강 확보와 노동 환경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위기 상황의 국가 방역 시스템에 어떤 국익도 우선할 수 없어

감염병 확산의 과감한 차단이 진정 국민을 위한 길이라면 어떤 국익보다도 우선하여 과감히 국경폐쇄도 단행할 수 있어야 한다. 확실한 증거에 입각한 정책을 주장한다면 아직 확실하지 않은 새로이 경험하는 질병에 대한 ‘사전 예방주의(혹은 사전주의 주의: principle of precaution)개념’의 도입과 실행이 타당할 것이다.

항공기가 추락하고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으면 종종 동일기종의 항공기에도 운항 중단을 적용시킨다. 추후 원인이 명확히 규명되고 나머지 동일 항공기의 비행이 위험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하면 다시 운항을 재개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새로운 전염병 확산에도 아직 충분한 증거나 근거가 없을 경우 당연히 항공운항의 안전을 위한 정책과 동일한 개념의 정책이 도입되어야 한다. 새로운 질병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축적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사전 주의’에 입각한 입국자 통제는 당연한 정책임에도 애써 우리의 지도자는 “이웃 나라의 아픔이 우리나라의 고통”이라는 식으로 성금과 곁들여 구호물자를 꾸려서 보내는 성스러운 행동도 보여준다. 신종 우한 폐렴과 관련하여 이미 우리나라에도 방역을 위한 제반 물품이 모자라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정책 덕인지는 몰라도 호주에서는 호주 정부의 단호한 조치로 한국 학생이 기숙사에서 나가야만 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여하튼 이웃인 중국과 북한 덕에 우리나라 국민의 우방국 입국금지 조치도 곧 취해질 지도 모르는 아득한 상황이다.

부실 관리체계 개선하지 않는 한 임진왜란 겪고도 정신 못 차리는 ‘무능 상황’ 반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폐렴의 초기 충분한 검사시설이 없는 관계로 검사 대상자를 까다롭게 선별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도 솔직히 밝혀야 했었다. 아마도 불필요한 사회적 공포심에 대한 우려와 충분한 방역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한 진솔한 인정이 마치 ‘정권의 무능’으로 비추어질 것에 대한 자신감 없는 걱정으로 진실을 밝히지 않은 채 그냥 넘기려한 것으로 미루어 짐작된다. 지금의 여당이 불과 몇 해 전에 야당일 때 거세게 질타하고 분노했던 내용들이 막상 정권을 잡고 나니 과거사에 집착하여 미래사를 다루지 않은 결과로 현 정권의 정치적 특성을 잘 나타내는 듯하다. 2020년 현재의 국제 교류가 지난 1980년대와는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폭증한 현대의 세상이 보여주는 각종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이미 메르스 사태로 한번 경험한 유사한 사태를 맞이하는 정부와 정치권이 보여주는 관료주의 우선 행보는 마치 임진왜란을 겪고도 병자호란에도 정신을 못 차렸던 관리중심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재현하고 있는 모습이다.

필자는 예전에 3년간 경험했던 야전 전투부대에서의 군의관 시절을 떠올리며 ‘실전은 훈련과 같이, 그리고 훈련을 실전처럼’이라는 구호를 생각한다. 정부는 각종 재난에 대비하여 위기관리 훈련과 방재 방역 훈련을 실제 상황과 유사하게 하는 제도를 실행할 필요가 있다. 항생제의 발달로 미생물을 정복하여 마치 전염병 시대의 종말처럼 여겨졌던 것이 신종 전염병의 지속적 출현으로 이제 화생방 전쟁에 준하는 국가위기에 대한 훈련과 대응이 필요한 세상이 되었다. 치밀한 사전 계획과 준비에도 항상 생각이 못 미친 부분이 경험적으로 나타난다. 전염병 방역에서도 완벽한 준비란 사실상 가설에 가깝다. 치밀하게 작전계획을 세워 임하는 전투 역시도 모든 게 계획대로 될 수만은 없다. 전투의 초기에 계획적 수행을 하던 전투도 곧 무계획의 몸과 몸의 1차원 적인 원초적 전투로 바뀔 수 도 있고, 무계획적이고 즉흥적인 싸움으로 변질될 개연성은 오히려 더 현실적이다. 이미 우리는 멀지 않은 과거에 조류독감 사태에서 ‘타미플루 투여 원칙‘이 무너짐에 따라, 결과적으로 원칙과는 무관하게 의사의 판단만으로 투여될 수 있었던 것과 매우 유사하다.

뉴지구촌 시대 신종 감염병 출현 사전 대비 ‘선택’ 아닌 ‘필수’ 영역

새로운 감염병에 대한 속성이 아직 확실하지 않은 가운데 확실하지 않은 것에 대한 전문가들도 속출하고 있다. 전문가가 많아 좋은 현상인지, 미지의 사안들이 시시때때로 발생하여 아직 잘 몰라서 전문가들이 많은 것인지 혼란스럽다. 각기 자신의 전공분야의 시각에서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 하는데 위기관리를 위한 올바른 의사소통 방식과는 거리가 있어 매우 위험해 보인다. 본질을 잘 모르니 본질보다 외연이 더 커지는 형국인 것이다. 정부의 통제도 어디가 중심인지 전투에서 지휘체계의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이제 불완전한 방역체계와 위험인자 차단을 위한 정부의 소극적 정책에서 생각이 미치지 못한 방법의 전염병 전파와 이로 인한 확산과 충격에 대하여 국민 각자가 마음의 준비라도 단단히 할 필요가 있다. 의협의 판단이 정치적이었는지 현 정권의 판단이 정치적인지는 곧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결과야 어떻게 되든 다시 한 번 이번 사태를 잘 점검하여 새로운 감염병이 출현했을 때 초기 대응이라도 잘 해보는 겸손한 목표를 세우고, 사전 훈련과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은 이제 선택사항이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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