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 악몽 되풀이 우려하는 홍콩 의료진…벤자민 소 "의료 인력·자원 부족 시달려"
의협 최대집 회장 "해외 감염원 차단 안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2019-nCoV) 감염증 확산으로 중국 인근 국가들의 우려가 점점 커지면서 중국과의 접경을 봉쇄하거나 중국인의 입국금지를 요청하는 의료인들이 늘고 있다. 감염증 확산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만큼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홍콩에서는 일부 의사들이 파업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며 홍콩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누적 사망자와 확진자는 각각 563명과 2만8,018명을 넘어서면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5일 하루 동안에만 사망자는 73명, 확진자는 3,694명, 중증환자는 640명으로 늘었다.

이에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 곳곳에서 중국인 입국금지 등 ‘중국 봉쇄’으로 문을 걸어 잠궜다. 우리나라도 중국 전역은 아니지만 후베이성 방문 외국인의 입국을 금지시켰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중국 전역으로 확산된 가운데 후베이성에 국한해 내린 입국금지 조치는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외국인 입국금지 조치를 중국 전역으로 넓혀 감염증 확산을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감염증 확산 속도가 빨라지면서 이에 대한 조속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촉구하고 있다. 감염증 차단을 위한 ‘골든타임’을 넘겨서는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은 “감염병 사태 해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첫 번째는 해외 감염원 차단”이라며 “그 다음으로 국내 지역사회 감염 확산 방지 및 방역 강화, 세 번째가 조기진단과 치료가 중요하다. 조기진단과 치료는 의료계가 최선을 다해 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국내에서 아무리 환자 관리를 하고, 확산 방지를 하고, 조기진단 치료를 한다고 해도 해외에서 계속해서 수많은 의심환자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사스’ 악몽 재연될까…‘파업’ 초강수 둔 홍콩 “막아야 산다”

사스(SRAS) 당시 대규모 사망자가 발생했던 홍콩도 충격에 빠졌다. 사스의 악몽이 되풀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홍콩 의료진들은 중국과의 접경을 전면 봉쇄할 것을 촉구하며 지난 3일 총파업에 돌입하는 초강수를 뒀다.

홍콩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는 하루 새 3명이 늘어 총 한국시간 6일 기준 21명이 됐다. 더욱이 지난 4일 이로 인한 첫 번째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불안감이 증폭된 상황이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기자회견을 열고 선전만 검문소와 홍콩, 주하이, 마카오를 잇는 강주아오 대교 등 2곳을 제외하고 중국 본토와 연결되는 모든 검문소를 폐쇄하겠다고 밝혔으나, 사망자가 나온 데다 확진자가 빠르게 늘면서 ‘전면 봉쇄’를 향한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홍콩 공공의료노조의 파업 규모도 커지고 있다. 3일 3,000여명이 부분 파업에 참여한데 이어 4일에는 간호사들과 응급실 근무 의료진들도 참여해 7,000여명까지 늘어났다. 공공의료노조는 홍콩 정부가 본토와의 검문소 14곳을 전부 폐쇄할 때까지 파업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홍콩 의료진이 파업에 나선 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됐다. 의료 인력 부족 문제를 겪고 있는 데다 방호복을 착용하고 확진자를 진료했던 의료진 감염 사례가 발생하면서 국경을 막는 것 이외에 차단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홍콩 의료진 파업을 주도한 벤자민 소(Benjamin So)는 중국과의 접경을 차단 결정을 조속히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미 대규모 확산 전조가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벤자민 소는 홍콩의 퀸매리병원(Queen Mary Hospital) 내과에서 근무하고 있는 의사다. 우한을 방문하고 돌아와 확진된 환자 2명을 치료한 후 추가 감염을 막기 위해 호텔에서 숙박하며 자가 격리를 하고 있다.

소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본토에서 온 관광객이나 홍콩 사람 중 중국 본토를 방문했던 사람들로부터 신종 코로나가 확진되고 있으나 현재 사람 간 전파 전조가 발생하고 있다”며 “때문에 홍콩에서 신종 코로나가 확산되지 않을까 공포에 떨고 있다”고 말했다.

소는 “신종 코로나가 확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활동을 홍콩 정부가 하지 않고 있어 정부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파업 전에도 홍콩 공공의료노조가 람 행정장관과 협상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며 “정부가 중국 본토와의 접경을 폐쇄하도록 만들기 위해 의사는 물론 간호사 등 의료 인력들이 파업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도 했다.

스스로 자가 격리를 하게 된 이유에 대해 “감염됐을 때 가족이나 친구들, 지역사회, 그리고 다른 환자들에게 추가 확산을 막기 위해서”라며 “중국에서도 보호 장비를 착용한 의사들 중 감염 된 케이스가 보고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는 중국 본토와의 검문소 14곳을 전부 폐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유입 자체를 차단하는 게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소는 “대부분 확진환자는 중국 본토로부터 유입된 사람들”이라며 “홍콩 의료진들과 세계적으로 유명한 전염병 전문가들이 말하는 가장 좋은 예방법은 중국 본토로부터 유입되는 입국자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라며 “무증상 환자들의 입국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홍콩 의료진들이 ‘중국 봉쇄’라는 선제적 예방책을 꺼내든 데는 대규모 확산으로 이어질 경우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위기감이 배경에 깔려 있다. 의료 인력과 자원이 부족하다는 게 그 이유다.

소는 “홍콩의 공공헬스케어 시스템은 최근 인구 고령화로 인해 수년 간 인력과 자원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며 “일반 병동 점유율이 100%를 초과하는 일도 빈번하고 140~150%까지 증가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홍콩에는 인증된 격리시설이 부족해 본격적으로 감염증이 확산될 경우 처리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그렇기 때문에 의료진들도 중국 본토와의 접경을 폐쇄해 대규모 확산을 막는 게 유일하게 효과적인 방법이 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고 했다.

소는 중국 본토와의 접경을 폐쇄하는 ‘골든타임’을 지나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소는 “국경 폐쇄는 시간 제약이 있다. 늦어지면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며 “계속 확진자가 발생한다면 의료진은 환자를 돌보기 위해 병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부가 의료진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홍콩 전체의 손실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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