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이동 제한 효과 없다” 발표에 “중국의 힘 느껴진다”는 말도

세계보건기구(WHO)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2019-nCoV) 감염증에 대해 국제적인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지만 이동 제한은 권고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이를 두고 감염병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나왔다.

WHO는 30일(현지시각) 스위스 제네바에서 긴급위원회(Emergency Committee)를 열고 논의한 결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해 ‘국제공중보건위기상황(Public Health Emergency of International Concern)’을 선포했다.

WHO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은 긴급위원회 이후 브리핑에서 “지난 몇 주 동안 우리는 이전에 알지 못했던 병원체의 출현을 목격했고 그것은 전례가 없는 발병으로 확대됐다”며 “이 바이러스가 보건 시스템이 취약한 국가로 퍼진다면 어떤 피해를 볼지 모른다. 그런 가능성에 대비할 수 있도록 지금 조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국제적 비상사태 선포의 주된 이유는 중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 때문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일 때문”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이동 제한 조치는 권고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국제적인 여행과 교역을 불필요하게 방해하는 조처가 있을 이유가 없다”며 “일반적으로 공중보건 위기상황에서 이동을 제한하는 게 효과가 없으며 필요한 원조와 기술 지원을 방해하는 등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감염병 전문가들 "실망스럽다, 중국의 힘 느껴져" 비판

31일 오전 9시 기준 중국 본토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는 9,720명이며 사망자는 213명으로 늘었다. 한국에서도 7번째 확진자가 발생했으며 2차 감염자(6번째 환자)도 생겼다.

이처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국내에서는 중국인 입국 금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인 입국 금지를 요청하는 국민청원은 이날 오전 10시 기준 59만7,905명으로 60만명에 육박한다.

하지만 WHO가 이동 제한이 필요 없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우리 정부가 중국인 입국 제한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국제적인 근거 없이 입국 제한 조치 등을 취하기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감염병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중국의 힘이 느껴진다”는 말도 나왔다.

중국인 입국 제한에 신중한 입장을 보인 감염병 전문가들도 WHO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이동 제한을 권고하면 우리 정부도 국제적 근거를 갖고 중국인 여행객 입국 제한 조치 등을 취할 수 있다고 말해왔다.

한 감염내과 교수는 “WHO의 비상사태 선포에 주목했던 이유는 이동 제한 문제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부분은 권고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며 “중국의 힘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엄중식 교수도 “실망스럽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물류로 전파되지는 않으니 교역 제한은 하지 않더라도 인적 이동은 제한할 필요가 있다”며 “전면적인 제한을 하자는 게 아니다. 자제하거나 연기할 수 있는 방문이나 여행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WHO가 앞서 선포가 5번의 비상사태에서도 이동 제한을 권고하지 않았다는 부분에 대해 엄 교수는 이번 사태와 상황이 다르다고 했다.

엄 교수는 “에볼라 사태 당시에는 진원지인 나라가 인적 교류가 활발하지 않았지만 외교부에서 여행을 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지카바이러스도 호흡기가 아닌 모기로 전파됐다”며 “WHO가 이동 제한을 권고하지 않는다고 밝힌 만큼 우리 정부가 자체적으로 조치를 취하기는 어렵고 부담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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