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권을 맴도는 추위가 기습했던 지난 16일 오후. ‘한약급여화협의체 3차 회의’가 열린 서울 서초동 국제전자센터 앞은 첩약 급여 시범사업을 반대하는 한약사들과 한약학과 학생 100여명으로 시끌벅적 했다.

한약사들과 한약학과 학생들은 ‘한방분업 안 할 거면 한약사제도 폐지하라’, ‘아무나 한약조제해도 보험적용 해준단다’, ‘안전성과 유효성 없이 보험적용 웬 말이냐’, ‘분업약속 팽개치는 보건복지부도 폐지하라’ 등의 구호를 연신 외치며 정부를 향한 불만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빌딩 사이를 가르는 칼바람에도 바닥에 앉아 목소리를 높이던 한약학과 학생들에게는 비장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날 경희대를 비롯해 원광대, 우석대에서 모인 한약학과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시위에 참여했다고 했다. 직접 이유를 들어보니 다름 아닌 불안한 미래 때문이었다.

이날 시위에 동참했던 한 한약사는 “한약학과를 졸업한 선배들은 앞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겠지만 현행 제도 하에서 후배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길이 더는 없다”며 “정부가 한약사 제도에 책임을 져야 한다. 노력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한약사는 지난 1993년 한의사와 약사 간 한약 조제권 분쟁으로 탄생한 직종이다. 당시 3년 이내 한약분업을 시행한다는 조건으로 만들어졌고, 1996년 경희대를 포함한 원광대에 한약학과가 설치되면서 본격적으로 한약사 양성이 시작됐다.

하지만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약분업은 지지부진한 상태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에서도 한약 조제권이 한의사들에게 주어지면서 한약사들이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길은 요원해졌다. 더욱이 한약의 안전성·유효성 문제도 한약사들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

사회 첫발을 내딛기 전부터 시위현장에 내몰려 ‘차라리 한약학과를 폐과하라’고 외치는 한약학과 학생들을 보고 있자니 안타까운 마음이 앞섰다. 더욱이 전통의학 부흥과 첩약의 과학화를 꿈꾸며 한약학과에 입학했을 그들이 정부의 말 바꾸기 정책으로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제라도 복지부는 정부를 믿고 묵묵히 따라온 그들에게 신뢰를 주기 바란다. 그들에게 잘못이 있다면 정부만 믿고 따라온 것 밖에 없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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