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코로나바이러스 진단키트 물량 한정…전문가들 “무증상자, PCR 검사 필요 없어”
정부-진단업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진단 키트 개발 박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2019-nCoV)’ 감염증인 ‘우한 폐렴’을 둘러싼 ‘잠복기 감염’ 논란에 전문가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근거 없는 주장으로 공포감만 확산시킨다는 지적이다.

설 연휴가 끝나고 진료를 시작한 일선 의료기관에는 우한 폐렴 진단검사를 해 달라며 무작정 찾아오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 중국을 다녀오거나 확진자와 밀접하게 접촉한 적이 없는데도 발열이나 호흡기 증상이 있다는 이유로 검사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의료 현장에서는 이런 환자들에게 우한 폐렴 검사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고 하소연이 쏟아졌다.

한 대학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중국을 다녀온 적도 없고 우한 폐렴 확진자와 밀접하게 접촉한 적도 없는데 무작정 검사를 해달라는 사람들이 있다”며 “설 연휴가 끝난 뒤라 환자들도 많은데 이런 사람들 때문에 진료가 지연되고 현장이 난장판이 된다. 응급실에 그런 환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중국 보건당국이 아무런 근거 없이 우한 폐렴이 잠복기에도 전파될 수 있다고 발표해 혼란을 키웠다고 비판했다.

특히 우한 폐렴을 진단할 때 사용하는 ‘판 코로나바이러스 검사’ 키트 물량이 한정된 상황에서 과한 공포심은 불필요한 검사로 이어져 방역체계를 흔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의료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는 보유한 판 코로나바이러스 검사 키트는 1,000개 정도로 오는 2월 5일경 추가 물량이 확보된다. 검사는 전국 17개 시·도 보건환경연구원에서 실시하고 있다. 초기에는 24시간 안에 검사 결과가 나오는 판 코로나바이러스 PCR 검사만 진행됐지만 얼마 전부터는 실시간 중합 효소 연쇄 반응기(Real Time Polymerase Chain Reaction)도 같이 실시해 검사 속도가 3~4시간으로 빨라졌다.

분당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김홍빈 교수는 “신종 감염병이므로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현재까지 나온 근거 자료로는 무증상 감염, 잠복기 감염 가능성은 없다”며 “호흡기 바이러스는 증상이 나타나야 전염된다. 잠복기에 감염됐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미 증상이 있었는데 몰랐을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폐렴 등 중증이면 바이러스 배출량이 많아 전염력도 강하지만 경증이면 바이러스 배출량이 적어 일상적으로 돌아다니는 것만으로 전염시키긴 힘들다”며 “정부가 감염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우선 순위를 정해야 한다. 역량이 분산되면 중요한 부분을 놓칠 수 있다. 잠복기 감염은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엄중식 교수는 “무증상 감염, 잠복기 감염은 굉장히 위험한 얘기다. 중국 보건당국 관계자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 잠복기 감염 애기를 했는데 무책임한 일”이라며 “상당히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발언이다. 우한 폐렴 확산에 따른 책임을 피하기 위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드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엄 교수는 “검사에 필요한 키트도 한정돼 있다. 무증상인 사람들까지 무작정 검사를 하기 시작하면 금방 동이 날 것”이라며 “검역 과정에서 문제가 없으면 (중국에서 온 사람도) 자가격리로 능동감시를 한 후 증상이 나타난 후 검사를 하고 격리해야 한다. 증상이 없을 때는 PCR 검사를 해도 우한 폐렴 감염 여부를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우한 폐렴 진단 키트 개발에 속도 내는 정부-업체

우한 폐렴 신속 진단법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아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타깃한 진단키트는 개발되지 않는 상태다.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27일 국내 체외진단 기업들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응 관련 간담회를 열고, 국내 신종코로바이러스 진단 시료 및 키트 개발을 독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체외진단업계 한 관계자는 “우한 폐렴 조기잔단과 대응을 위한 간담회였다. 국내 감염 확산 시 발생할 수 있는 검사의 문제점과 해결책에 대해 논의가 이뤄졌다”며 “질본에서 민간에서 진단 키트 생산 및 납품에 대해 협조와 함께 우선 구매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말했다.

질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국내 확산 시 보다 빠른 진단을 위해 맞춤형 진단 키트 개발도 독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 체외진단업체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타깃한 진단키트가 개발돼야 감염이 확산됐을 경우 급증할 검사량을 감당할 수 있고, 진단 속도도 탄력이 붙는다”라며 “질본에서도 이에 대비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용 리얼타임 PCR 진단 키트 개발을 독려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맞춤형 진단키트 개발 시기에 대해 “과거 신종 감염병 발생 후 진단 키트 개발되기까지의 시간을 고려할 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진단 키트 출시까지는) 1~2주 정도 더 지나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다만, 개발 과정에 다양한 변수가 있고, 질본의 승인 등을 거쳐야 하는 만큼 출시 시기를 장담할 수는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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