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자리 잃는 국내사 염 변경 전략…올초 솔리페나신 판결 후 하급심 선고 속속 뒤집혀

국내 제약사가 오리지널 약물 염 변경을 통해 특허를 회피하는 전략이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올해 초 대법원의 과민성 방광치료제 솔리페나신(제품명 베시케어, 제조사 아스텔라스)에 이어 최근 금연 치료제 챔픽스(성분명 바레니클렌, 제조사 화이자)까지 오리지널의 연장된 물질특허를 폭넓게 인정하며 이전 국내사들의 손을 들어줬던 판결이 뒤집히고 있기 때문이다.

염 변경을 통한 특허회피는 국내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오리지널의 특허 보호 연장에 대항하는 전략이다.

실제로 한미약품은 염 변경 복제약인 '에소메졸', '한미플루' 등으로 수백억원대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솔리페나신에 이어 챔픽스까지 국내 제약사들이 하급심에서 승소했던 제품들이 상급심에서 고배를 마시며, 국내사의 염 변경 특허 회피 전략에 적신호가 켜졌다.

당장 '비리어드'(제조사 길리어드), '포시가'(제조사 아스트라제네카) 등 하급심서 승소했던 제품들도 출시를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솔리페나신 이어 챔픽스까지 판정패, 국내사들 '충격'

챔픽스 특허 소송은 한미약품을 필두로 한 국내사 20여곳이 염 변경 제네릭으로 챔픽스 특허 회피 시도를 하면서 시작됐다.

국내사들은 염을 변경한 복제약은 존속기간이 연장된 챔픽스 물질특허 권리범위에 속하지 않는다며 소극적 권리범위확인 심판을 청구했고, 지난해 1심 격인 특허심판원은 이들의 청구가 성립한다고 심결했다

이 심결은 약 1년 6개월 만에 뒤집혔다. 2심 격인 특허법원은 지난 20일 특허심판원의 심결을 취소한다며 화이자의 손을 들어줬다. 항소심이 벌어지는 와중에 이 소송에 영향을 미칠 만한 상급심 판결이 나오면서다.

지난 1월 대법원은 과민성 방광 치료제 솔리페나신 성분을 둘러싼 염 변경 약물 특허 분쟁에서 제네릭사 손을 들어줬던 원심판결을 깨고 오리지널사인 아스텔라스 승소 취지로 사건을 특허법원으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제네릭사가 선택한 푸마르산염이 오리지널에 쓰인 숙신산염과 함께 흔히 쓰이는 것으로, 통상의 기술자라면 숙신산염을 푸마르산염으로 변경하는 것을 쉽게 선택할 수 있고(염 변경의 용이성), 인체에 흡수되는 유효성분의 약리작용에 의해 나타나는 치료효과나 용도가 다르다고 볼 수 없다(실질적 동일성)고 판단했다.

대법원 판례로 국내사가 염 변경 물질로 특허를 회피하려면 변경된 염이 쉽게 대체할 수 있지 않으며, 치료효과나 용도에서 오리지널과 다른 차별점이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입증해야 하는 상황으로 분위기가 바뀐 셈이다.

이후 대법원 판례를 재확인하는 선고 사례가 줄줄이 나왔다.

특허법원과 특허심판원은 염 변경 제네릭이 오리지널의 연장된 물질특허를 회피할 수 없다며 지난 8월과 9월 항응고제 '프라닥사'와 당뇨병 치료제 '자누비아' 오리지널사인 베링거인겔하임과 MSD 손을 들어줬다.

이 판결로 프라닥사와 자누비아의 염 변경 제네릭은 각각 2021년 7월, 2023년 9월에서야 출시가 가능하게 됐다. 같은 내용으로 2심을 진행 중인 화이자 류마티스 치료제 '젤잔즈'의 경우, 승소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한 일부 국내사들이 1심 승소에도 불구하고 먼저 소송을 취하하기도 했다.

한 때 일각에선 챔픽스 소송은 솔리페나신과는 다른 결론이 날 수 있다는 긍정적인 견해가 나오기도 했다.

솔리페나신 판결에서 대법원은 숙신산염과 푸마르산염 모두 Class1에 속한다는 점을 염 변경 용이성의 근거로 들었는데, 챔픽스의 경우 제네릭에 쓰인 옥살산염(Class2)이 오리지널인 타르타르산염(Class1)과 분류가 다르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이는 등 염변경을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특허법원은 이러한 차이도 인정하지 않았다.

한편, 이날 선고로 국내사들은 챔픽스 물질특허가 만료되는 2020년 7월 19일까지 제네릭을 출시할 수 없게 됐다.

특허 만료까지 남은 기간이 길지 않아 대법원 상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를 토대로 화이자는 국내사를 대상으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챔픽스 제네릭 생산 및 판매를 강행하다 화이자가 제기한 침해금지 가처분 신청으로 생산·판매가 강제 중단된 한미약품이 유력한 손해배상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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