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진료하면서 세계적 코호트 구축
"더는 못버틴다"며 인력 충원 요청
유족 "모난 돌로 보여, 암 진료했다면 달랐을까"

고원중 삼성서울병원 호흡기내과 교수가 숨졌다는 소식에 의학계는 슬픔에 잠겼다. 대한민국 의학계의 별이 졌다는 탄식이 쏟아졌다. 그가 그동안 이뤄 놓은 업적도 대단하지만 앞으로 내놓을 연구 성과에 대한 기대도 컸기 때문이다.

진료와 연구에 대한 열정이 그 누구보다 뜨거웠던 그였기에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은 믿기 힘들었다. 18년간 몸담았던 삼성서울병원을 떠나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던 차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지쳐있었다. 18년간 쉼 없이 달려와 결핵과 비결핵항산균 분야 권위자가 됐지만 의료 환경과 제도는 그를 뒷받침해주지 못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빅5병원’ 소속 교수이면서 탁월한 연구업적에 학술상을 휩쓸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현실에서는 연구 잘하는 교수보다는 ‘실적 좋은 교수’를 원했다. 그의 전문 분야인 결핵(Tuberculosis, TB)은 소위 말해 ‘돈이 안되는 분야’였다. 비결핵항산균(Nontuberculous mycobacteria. NTM)도 마찬가지다.

지난 8월 21일 숨진 고원중 삼성서울병원 호흡기내과 교수(사진 제공: 유족)

TB·NTM 진료 혼자 했던 고원중 교수 “더는 못 버티겠다” 하소연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병원에서 내과 전공의 수련을 마친 고 교수가 삼성서울병원에 둥지를 튼 이유는 결핵과 비결핵항산균 분야 임상연구에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삼성서울병원을 떠나기로 결심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가 지난 1월 24일과 2월 16일 삼성서울병원 권오정 병원장과 호흡기내과장에게 보낸 이메일에서도 나타난다.

유족이 청년의사에 공개한 이메일에는 의학자, 임상의사로서의 고뇌가 담겨 있었다.

“오래전부터 말씀드린 것처럼 (삼성서울)병원도 (호흡기내)과도 제가 예전에 알고 있던 곳이 아닙니다.…(중략)…세상 일 잘 모르고 TB, NTM만 알았던 사람, 그래도 TB, NTM 만큼은 열심히 했던 사람으로 기억해 주시기만 바랄 뿐입니다.”
(1월 24일 이메일)

“더이상 혼자서는 TB, NTM 진료와 연구를 지속하고 발전시킬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더는 버티지를 못하겠습니다.…(중략)…최근에는 TB는 가능하면 다른 병원으로 보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TB 전문가라고 일하면서 받아들이기 힘든 얘기입니다.”
(2월 16일 이메일)

삼성서울병원에서 결핵과 비결핵항산균 환자를 진료하는 교수는 고 교수 한명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 분야에서 탁월한 연구 업적을 내 왔다. 환자들이 몰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고 교수는 생전에 “서울아산병원은 이미 수년 전 TB, NTM을 전공하는 교수가 2명이고 서울대병원은 최근 주니어 교수를 1명 더 뽑았다. TB, NTM 환자 수는 삼성서울병원이 훨씬 많고 NTM 환자 수는 2개 병원(서울아산병원과 서울대병원)을 합친 것보다 훨씬 더 많다”며 전담 교수 증원 필요성을 강조했다.

고 교수의 부인 이윤진 씨는 “퇴근한 후 집에서도 항상 일을 했다. 주말도 마찬가지였다. 주당 80시간은 넘게 일했다. 허리 디스크 질환이 심해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아픈 날도 병원에 업혀가서 진료를 볼 정도로 열심히 했다”며 “몇 년 전부터 TB, NTM 분야 담당 스태프(교수) 한명을 충원해 달라고 했지만 제대로 수용되지 않아 마음고생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인력 충원을 두고도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2년 전 호흡기내과 교수 1명을 충원했지만 업무 범위를 두고 고 교수와 병원 측 입장이 달랐다. 병원 측은 결핵·비결핵항산균과 함께 폐암 진료도 하길 원했다. 하지만 고 교수는 약속과 다르다고 항의했다. 삼성서울병원에서 결핵과 비결핵항산균 분야 진료를 하는 줄 알고 온 교수에게 오히려 폐암 진료를 더 많이 하게 한다는 지적이었다.

“사직서를 내고 이 병원을 떠나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더이상 이 병원에서 TB, NTM 업무량을 감당할 수 없어서였습니다. TB, NTM이 중요하고 국제적인 센터라고 하면서 교수 2명을 둘 수 없는 국제 센터가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병원을 떠나기로 한) 두 번째 이유는 제가 그만 두어야 A선생이 폐암 일을 줄이고 저 대신 TB, NTM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 때문에 본인 인생을 변경한 아끼는 후배인데 본인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 괴로워하는 것을 계속 보기 힘듭니다.”(병원장과 호흡기내과장에게 보낸 이메일 중)

고원중 교수 "국제경쟁력 가진 전문가 키우려면 10년은 걸려"

고 교수가 전담 인력 충원을 꾸준히 요구했던 이유는 삼성서울병원이 결핵과 비결핵항산균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을 유지하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이는 병원장과 호흡기내과장에게 지난 2월 16일 보낸 이메일에서도 드러난다.

“그동안 경험으로 비추어보아서 5년 후, 10년 후 삼성서울병원 호흡기내과가 진료량이 아니라 임상연구로 국내 학회에서 그리고 국제 학회에서 무엇으로 인정받고 존경받을 수 있을지 생각하면 답답하고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임상연구에 대한 생각도(진료와 달리 연구는 잘하자고, 열심히 하자고 잘 되는 것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키워내는 것도(국제경쟁력을 가진 해당 분야 전문가가 되려면 짧게는 5년 적어도 10년이 걸리는 일입니다) 선생님들과 저의 생각은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부인 이윤진 씨는 “남편은 삼성서울병원에 대한 애착이 많았다. 18년 동안 근무하면서 결핵과 비결핵항산균 분야에서 세계적인 코호트도 만들었다”며 “그런 삼성서울병원을 떠나겠다는 결심을 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씨는 “결핵 환자를 줄였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자괴감을 느꼈다. 진료 실적 압박도 있었다고 한다”며 “남편이 결핵이나 비결핵항산균이 아닌 암을 진료하는 의사였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고 씁쓸해했다.

이 씨는 “지난 16일 열린 추모식에서 남편이 병원에 요구하는 사항들이 많았다는 말이 나왔지만 원하는 건 딱 하나였다. 결핵 및 비결핵항산균을 전공하는 교수를 뽑아 달라는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이 씨는 “남편은 남들이 관심 갖지 않고 하지 않으려는 질환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해 왔다. 그리고 결핵이나 비결핵항산균에 관심을 보이는 후배가 있으면 논문 작성도 적극적으로 도왔다”며 “하지만 지도교수를 맡아서 논문 작성을 도왔던 후배 의사들 중 상당수는 다른 분야를 선택했다. 그래서 상처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고원중 교수는 지난 2014년 제12회 화이자의학상을 수상했으며 2018년에는 결핵퇴치에 헌신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고원중 교수만의 일이 아니다…번아웃 상태인 교수들 많아”

고 교수는 사직을 결심한 뒤 병원장과 호흡기내과장에게 몇 차례 보낸 이메일에서 “욕심을 버렸다,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했다. 그리고 삼성서울병원을 떠나 아주대병원에서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주대병원에서는 9월 1일부터 근무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지 못했다. 지난 8월 21일 저녁 삼성서울병원 호흡기내과 의료진과 환송회를 가진 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씨는 “남편이 마음에 무리가 와서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면서 환자 취급하는데 사실과 다르다”며 “삼성서울병원에 대한 애착이 많았고 세계적인 코호트를 두고 떠나야 하니 우울한 마음이 들었겠지만 그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지 심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 교수의 아들인 성민 씨는 지난 16일 열린 추모식에서 삼성서울병원에 대한 섭섭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존경받는 아버지이자 다정한 남편이자, 친근한 동료였던 고 교수는 정작 본인의 직장에선 모난 돌로 보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며 “병원 이름이나 당장의 위치보다 당신의 환자와 연구를 더 위하셨던 아버지는 지난 겨울 사직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위로와 힘을 주시는 많은 분이 있어 감사하지만 정작 삼성서울병원에서, 이 삶에서 아버지의 등을 떠밀었던 손들은 저를 더욱더 짓누르고 있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던 아버지의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풀어내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 아버지가 겪으신 고통을 다른 누군가가 겪지 않기를 바라며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고 교수의 죽음은 의학계는 물론 의료계 전체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고 교수와 함께 근무할 날을 기다리고 있던 아주대병원 박해심 첨단의학연구원장(알레르기내과)은 “대한민국 의학계의 커다란 손실”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지난 16일 삼성서울병원이 주최한 고 교수 추모식에 참석한 박 원장은 “앞으로도 고 교수와 같은 의학자는 나오기 힘들 것이다.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빅5병원 중 하나인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교수는 “남의 얘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환자들이 쏠리는 대형병원에 근무하는 교수들 중 상당수가 번아웃 상태일 것”이라며 “진료 실적 압박도 피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아무리 연구업적이 좋아도 진료 실적이 떨어지면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고원중 교수의 연구업적>
비결핵항산균 폐질환 분야 국제 전문가…SCI급 논문만 180여편

고(故) 고원중 교수는 결핵과 비결핵항산균 분야에서 탁월한 연구업적을 남긴 권위자다. 그가 삼성서울병원에서 결핵과 비결핵항산균 환자를 진료하면서 만든 코호트는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규모다.

서울대병원 호흡기내과 임재준 교수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의사-연구자 중의 한 명이며, 비결핵항산균 폐질환 분야의 국제적인 전문가”라며 “비결핵항산균 폐질환 연구에 집중했는데, 특히 ‘마이코박테리움 압세수스(Mycobacterium abscessus)’의 감염으로 인한 폐질환의 치료가 왜 어려운지에 대해 밝혀낸 것이 대표적인 업적”이라고 강조했다.

비결핵항산균 폐질환은 국내에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09년 인구 10만명당 9.4명이었던 비결핵항산균 감염 환자는 2016년 36.1명으로 4배 가까이 증가했다.

특히 마이코박테리움 압세수스 폐질환은 매크로라이드 항생제가 유일한 치료제이지만 성공률이 30% 미만으로 낮다. 이는 다제내성결핵(multidrug-resistant tuberculosis, MDR-TB) 치료성적보다 훨씬 낮다.

고 교수는 마이코박테리움 압세수스로 인한 폐질환에서 특정 유전자가 발현되면 항생제 내성이 생겨 치료 예후가 좋지 않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고 교수는 이 논문으로 지난 2014년 대한민국의학한림원으로부터 제12회 화이자의학상(임상의학 부분)을 수상했다. 고 교수는 결핵 분야에서도 논문만 400편 이상 발표하는 등 많은 연구 업적을 냈다. 국내에서 종양괴사인자(Tumor Necrosis Factor, TNF) 길항제 사용 환자에서 잠복결핵감염의 접근과 치료법을 처음으로 제시한 것도 고 교수였다.

고 교수는 다제내성결핵과 광범위내성결핵(Extensively drug-resistant tuberculosis, XDR-TB) 환자에게 적극적으로 폐절제술을 시행하면 치료성공률을 80%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지난 2009년 제42회 유한의학상을 받았다. 또 지난해 3월에는 결핵 퇴치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그 외에도 2009년 4월 국무총리 표창, 2010년 2월 제12회 SBRI 우수논문상, 2013년 12월 제15회 함춘내과 학술상, 2015년 12월 제19회 서울의대 동창회 함춘의학상, 2018년 2월 성균관대 의과대학 연구업적 우수교원 등을 수상했다.

고 교수는 SCI(E)급 저널에 게재한 논문만 180여편이며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 SCI(E)급 논문도 130여편이나 된다.

정부 산하 각종 위원회와 학회에서도 많은 활동을 했다. 고 교수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진페정도관리실무위원회, 산업재해보상보험심사위원회, 대한결핵및호흡기학회, 결핵퇴치 공공·민간협력위원회, 질병관리본부 검진기준 및 질 관리반, 진폐요양의료기관평가위원회, 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본부 의약학단 등에서 위원,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