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이가 부모의 말을 안 듣고 막무가내로 생떼를 쓰거나 투정을 부르는 것을 흔히 ‘뗑깡부리다’고 말한다. 여기서 ‘뗑깡(てんかん)’은 일본식 한자어 ‘전간(癲癎)’을 일본말로 발음한 것이다. ‘전간’은 간질병이나 지랄병을 가리키는 일본식 표기로 우리 의학용어사전에도 실려 있었다.

그러다 대한뇌전증학회는 간질 자체가 잘못된 용어는 아니지만 사회적 편견이 심하고, 간질이라는 용어가 사회에서 받는 부정적 낙인이 심하기 때문에 2012년 6월부터 ‘뇌전증’으로 바꿔 부르고 있다.

뇌전증은 뇌졸중, 치매와 더불어 3대 뇌질환으로 비교적 흔한 질환이다. 유병률은 전체 인구의 0.8~1%다. 2012년에 조사했을 때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있는 뇌전증 환자 수는 20여만명이었다. 드러나지 않고 있는 환자 수는 이보다 더 많아 국내 뇌전증 환자는 30만~50만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뇌전증은 예측할 수 없는 시간에 갑작스러운 의식 소실 또는 경련이 반복되는 병이다. 우리몸 뇌신경세포는 컴퓨터 회로처럼 평상시 정상적으로 전기를 띠며 뇌세포들 간의 미세한 전기신호를 주고 받는다.

이러한 평상시의 안정된 전기적 질서가 다양한 원인으로 깨지면, 뇌신경세포는 과도하게 흥분하거나 억제되어 몸 전체가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경련을 보이거나 의식을 잃게 된다. 신경세포의 일시적이고 불규칙적인 이상흥분현상에 의해 발생하는 증상을 발작이라고 한다.

교통사고로 인한 뇌손상과 분만 중에 아기의 뇌에 산소 공급이 안 되었을 경우, 뇌염이나 수막염을 앓고 그 후유증으로 뇌의 신경세포가 망가진 경우, 뇌종양 등 뇌전증을 일으키는 원인은 다양하다.

한편 부모들은 뇌전증을 앓고 있는 자녀들에게 유전적 요인으로 원인을 돌려 심각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뇌전증의 원인 가운데 오히려 유전적 요인은 매우 드물다고 전문의들은 입을 모은다.

대부분의 뇌전증 환자는 발작이 없는 시기엔 정상적인 생활을 한다. 발작을 억제하는 항경련 약물 투여나 증상을 유발하는 뇌의 병변을 제거하는 수술로 치료가 가능하다. 최근에는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에 직접 작용해 발작을 억제하는 새로운 기전의 약물이 개발되는 등 치료제와 치료 방법이 발전하고 있다.

뇌전증 환자가 갑자기 근육 강직이 오는 대발작을 일으켰을 때 발작은 수분에서 대부분 5분 이내에서 멈춘다. 이때 주위 사람들은 놀라기 쉽지만 침착하게 넥타이와 허리띠를 풀어 숨을 편하게 쉴 수 있도록 하고, 유리를 치워 2차로 다치는 것을 막아 주는 게 좋다.

이대목동병원 신경과 이향운 교수는 건강정보 유튜브 <나는의사다 753회-멍 때리는 게 아니라 뇌전증이라고요?>편에 출연, “발작이 멈춰도 의식은 금방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병원으로 데려가는 게 좋다”며 “예전 인기드라마 ‘응답 1988’에서 보여줬던 덕선이와 친구들의 침착한 대응을 참고할 만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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