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대한의사협회 종합학술대회가 지난 11월 1일부터 3일까지 사흘간의 일정으로 개최됐다. 36회째를 맞은 이번 대회는 사회와의 교감을 이루며 속칭 ‘배운 직업; learned profession’으로서 의사가 갖는 평생학습자 본연의 모습을 동시에 담아내기 위해 ‘의학과 문화의 만남’을 주제로 마련됐다. 의사는 오로지 학문연구만을 직업으로 삼지는 않는다. 그러나 직업의 속성상 장기간 수학기관과 보수교육이 필수적인 직종으로 ‘종신학습(life long learning)’이 요구되는 특화된 전문 분야이다. 그리고 환자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한 독특한 직업임에는 틀림이 없다.

학술대회가 개최된 동대문 디자인플라자(DDP)는 건축물 자체에서 묻어나오는 풍부한 문화적 감성과 감각만으로도 학술대회 주제와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동질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다만 순수 학술대회 행사장과 문화적인 행사나 주된 행사장 간에 거리 상 분리 된 느낌은 아쉬움을 남기게 한 대목이다. 그러나 이것도 한편으로는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가 갖는 장점이기도 하고 예술적 건축물이 갖는 특성을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할 부분이기도 했다.

선진 면허관리기구 소개 장된 자율규제 국제 심포지엄

대회 첫날인 11월 1일 종합학술대회 첫 행사로 진행된 자율규제 국제심포지엄은 애당초 의사회원을 주요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나라 의사의 근무 환경을 고려해 보았을 때 금요일 오후에 심포지엄에 참가할 수 있는 의사는 대학교수 중 그나마 외부 활동이 비교적 자유로운 대학에서 가능했을 것으로 예측됐다. 금요일 오후 행사로 정한 것도 법조인을 비롯한 의사가 아닌 일반인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우리나라에 법정 의사자율규제 단체 혹은 쉽게 말해 선진화된 면허기구가 존재하지 않아 이런 현대적인 제도의 홍보와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의사집단 이외에 법조인, 환자단체, 언론이나 시민단체의 참여와 협조가 매우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조인 역시 금요일 오후에 별도로 시간을 내어 참가한다는 것이 쉽지 않아 보였다. 변호사 역시 개업에 묶여 있는 전문 직업인으로서 일상에서 자유롭지 못하기는 의사와 비슷했다. 다행히 우리나라에 외국 면허기관이 직접 방문하여 전문직 주도의 자율규제에 관한 내용을 소개하는 자리의 가치를 인지, 한국의료법학회와 의사출신 변호사 그리고 법학자, 법조인들이 바쁜 시간 중에도 시간을 내어 어렵게 마련한 국제 심포지엄은 성황리에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해외 연자들과 현실감 있는 질의응답 시간 언론의 뜨거운 관심

무엇보다도 가장 뜨거운 관심을 보여준 직종은 보건의료 분야 전문 언론과 종합일간지 보건복지전문기자 등 해당 분야 언론인들이었다. 의사면허기구로 잘 알려진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면허기구와 전 세계 면허기구의 연합체와 미국 면허기구 연합체 대표가 발표한 현대적인 면허기구의 역할을 진지하게 듣고 배우며 우리나라에 없는 선진국의 의사면허 전문기구 제도에 대하여 비로소 현실감 있는 깊은 이해가 가능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실상 면허기구와 자율규제에 관한 내용은 간간히 기고문이나 토론회 등을 통하여 전문지에 꾸준히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국제 심포지엄에는 외국연자의 강의가 끝나고 곧바로 이어서 별도로 연자들이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애초에 기획된 질의응답 시간이면 충분할 것으로 생각됐으나, 관심이 고조되면서 참가한 기자들의 적극적인 요청으로 외국인 연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연장된 시간 속에서 기자들과 매우 진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선진국 의도적 범죄 이외 어떠한 의료 활동에도 의사 인신구속 사례 없어

이날 기자들이 가장 임팩트 있게, 그리고 믿겨지지 않는 듯 다소 충격적 사실로 받아들인 핵심적인 내용은 선진국에서는 통상적인 의료 활동으로 의사를 형사 처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기자단은 다시 재차 이런 사실에 대한 확인을 요청했고, 외국 연자들은 한 결 같이 명백한 의도를 갖고 있는 범죄행위라면 몰라도 환자 치료 중에 발생한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인 장애 또는 사망이라는 이유로 의사를 인신구속을 하거나 ‘형사처벌’ 하지 않는다고 확인해줬다. 한 법학자는 우리나라 형사법이 과도하게 적용되고 있어 전문직이나 기업인 등 형사법의 적용대상의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음에도 형사구속과 처벌을 남발하여 전과자 과잉 생산국이 되었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환자단체 대표는 이것은 불충분한 의료사고 배상제도에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즉, 몇 년 지난 사건이라도 검찰은 배상액이 적을 경우 의사를 구속하고 압박하여 배상액을 올리는 작업을 하는 셈인데, 법으로 의사를 인질로 삼고 있다는 ‘야만적인 법체계’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우리사회는 의료사고에 의한 배상의 성격을 정확히 다시 한 번 정리하고 사회적으로 합리적인 배상 제도를 다시 구축할 수 있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의료인 ‘법적 인질’ 삼는 야만적 법체계 우리나라 의료계 개탄

얼마 전 내시경 중에 발생한 장 천공으로 발생한 사망사고에 대해 의사에게 구속과 실형이 집행되었다는 최근 우리나라 실상에 대해 이야기하자 캐나다와 미국에서 온 연자들은 똑같은 반응을 보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거꾸로 우리나라에서 수술이나 처치에 대한 사전 동의서는 받고 있는지 물은 뒤, 비록 동의서에 사고가능성이 표기되거나 설명을 했어도 치료 결과 장애가 발생했거나 사망했을 경우 형사처벌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에 캐나다나 미국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더구나 예기치 못한 치료 결과로 인하여 이에 따른 배상도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 이유는 동의서를 통해 환자 자신도 익히 부정적 사고의 가능성에 대해 사전에 충분히 인지한 상태이고, 내시경은 의학적 필요와 환자 스스로 판단한 ‘자기결정’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여하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선진 외국의 의사자율규제는 의료계에 신선한 충격이 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일부 법조인의 반응은 아직도 현장 확인을 하지 못해서인지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그러나 연사 중 한사람이 변호사라는 점은 사회나 법조인에게 우리나라 법체계나 문화에서 보지 못하던 새로운 것을 접한 ‘문화적 충격’이 눈에 선하게 드러난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해외 사정 인지 못하는 낮은 국제화지수 ‘의료 형사범죄화’ 주 원인

일부 변호사는 의사의 형사처벌은 우리나라 법이 독일의 법체계를 계승하여 그렇다는 황당한 주장도 했다. 세계 법학계의 추세는 속칭 독일을 위시한 ‘대륙법’과 영미를 중심으로 한 판례 중심의 ‘보편적 법’ 두 체계가 합치점과 수렴의 현상을 위하여 접근한다는 사실과 독일도 의료 활동으로 의사에게 형사처벌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변호사는 우리나라 법조계는 의사와는 달리 해외의 사정에 잘 알지 못하고 외국어 실력도 떨어지며 외국에서 수학한 사람도 많지 않다는 점이 의료의 형사범죄화로 몰고 가는 주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피력했다. 국제화의 문제는 의료계 뿐 아니라 많은 전문직의 과제이기도 한 것이다.

이튿날인 11월 2일에 개최된 자율규제심포지엄 두 번째 행사는 토요일 오후로 일정을 잡아 의사 회원의 많은 참여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개최했다. 다뤄진 내용은 전날 국제 심포지엄과 유사했다. 그럼에도 의사회원의 참여는 그리 많지 않았다. 다만 대회 개최를 위해 애쓴 조직위원회가 체면치레 할 정도는 되었다. 그리고 금요일 행사의 목표였던 법조인 참여나 비 의사 직종 참여 유도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기에 이번 학술대회에서 의사면허기구를 위한 필요성이나 당위성에 대한 홍보나 교육의 효과는 충분히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충분치 않은 준비기간 ‘의학과 문화’ 기획의도와 사회 접목 시도 본래 목적 달성

의사의 전문 직업성 강화를 위한 보수교육과 감정원을 위한 전문적인 행사도 회원들의 호응이 매우 높았다. 주 행사장에서 개최된 문화행사는 많은 관람인들이 참가했다. 특히 체험관은 미래의 세대인 어린이들이 부모의 손을 잡고 행사참여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젊은이들이 많아 참여했던 도전 골든 벨 프로그램도 참가자들의 열기가 높았다. 그리고 의사가 자신의 전공분야에서 만들어낸 예술관도 많은 사람들의 방문이 있었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준비한 행사가 ‘의학과 문화’라는 제목에 걸맞게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였고 원하는 방향으로 잘 진행된 것으로 판단됐다.

그럼에도 다소 아쉬운 점은 종합학술대회가 의학과 문화의 만남으로 의사와 사회의 만남의 연장선으로 확대되기를 바랐으나 아직은 그 분위기가 시기상조로 보였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의사협회의 집행부와 학술대회 조직위원회를 이끌어 가는 의사회원이 당연히 주축이 되었으나 다른 일반 의사회원의 참여는 많지 않았고 이것은 의사협회 종합학술대회의 통상적인 모습으로 받아들여졌다. 사회와 만남에서 미래세대인 어린이와 젊은 층의 참여는 있었으나 정작 젊은 의과대학생이나 전공의 등 여전히 경직돼 있는 의사양성 교육제도가 갖는 한계가 그대로 반영됐다.

달리 표현한다면 대한의사협회의 종합학술대회이기도 하며 의사협회의 회원인 의사들의 축제와도 같은 행사가 되기를 바라는 심정이었으나 집행부와 일부 직원 이외에는 의사회원 자체의 참여가 부족한 의사들의 학술대회이며 축제인 것이다. 대한의사협회가 모든 의사단체의 유일한 법정단체로 위치와 규모에 부합한 행사로 자리 잡아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우선 의사협회 산하기관의 참여가 절실해 보인다. 의사협회는 집행부의 협회가 아닌 대의원회, 광역시도의사회와 다양한 다른 산하단체가 포함되는데 향후 행사 조직 단계부터 산하기관의 협력으로 산하 단체의 역할 분담이나 자체 기획 행사도 포함이 되어 진정한 의사단체의 축제로 거듭나야 하는 과제를 남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기 대회는 전 직역 동참 유도로 국민과 함께 호흡하는 대회로 거듭나야

의사협회 산하의 다양한 단체가 힘을 합하여 기획하는 3일 간의 학술과 축제의 행사에서 광역 시도의사회와 대의원회 등이 열정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공히 의사들의 단합을 위한 ‘축제의 한마당’을 생각해보는 것은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과 동떨어진 지나친 기대인지 반추해 보았다. 의사회원의 친목 골프나 산행은 흔하다. 인구 200만 명이 안 되는 작은 에스토니아는 전 국민이 참여하는 합창대회를 매년 열어 국민 모두가 참여하는 문화행사로 국민의 단결과 화합을 이끌어내고 있다. 우리도 한번쯤 참고해 볼만 한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한사람이 아닌 여럿이 모여 화음을 만들어 내는 유쾌하고 즐겁고 가족적인 행사도 가상해 보는 것이다.

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하는 장점도 많다. 그러나 시도의사회나 대의원회의 참여를 높이기 위 하여는 종합학술대회를 최소한 격년제로 서울이 아닌 시도 의사회 단위에서 개최하는 것도 하나의 방편으로 보인다. 대한의사협회는 사안별로 갈래갈래 찢어진 기관이 아닌 기능별로 다양한 전문직단체의 연합체로 회원과 직원 모두가 서로 뜻을 모아 국민과 함께 참여하는 학술문화적인 행사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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