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19.12.10 화 07:46
상단여백
HOME 기획·특집 DEEP DIVE
[기획]"피가 모자라"…피 없어서 수술 못하는 병원들혈액 부족 탓에 타 병원 전원은 물론 수혈해줄 사람 있어야 수술도 가능
헌혈 인구 감소·인구 고령화 탓…적십자사 "해결책 찾기 위해 노력 중"
  • 곽성순 기자
  • 승인 2019.12.02 06:00
  • 최종 수정 2019.12.02 06:00
  • 댓글 0

서울 모 종합병원 흉부외과 전문의 A씨는 요즘 수술 전 신경써야 하는 일이 하나 늘었다. 수술할 환자가 지정 헌혈자가 있는지 여부를 체크하는 것이다.

지정 헌혈이란 대상을 미리 정해놓고 헌혈을 하는 것으로 쉽게 말해 환자를 위해 수혈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인데, 이유는 수술에 필요한 혈액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수혈용 혈액공급은 대한적십자사 중앙혈액원에서 혈액을 보관하고 있다가 의료기관에서 혈액원에 혈액공급요청을 하면 혈액원이 공급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의료기관의 수혈용 혈액 부족사태는 혈액원에서 안정적으로 혈액을 공급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전문의 A씨에 따르면 모 종합병원 흉부외과는 현재 지정 헌혈자가 없을 경우 수술이 불가능한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흉부외과 외 타 과도 수술 시 응급상황이 터졌을 때 자체 해결보다는 흉부외과 전문의를 호출하고 있다. 자체 해결을 시도하다 혈관이 터지기라도 하면 대량의 혈액이 필요한데, 현 상황으로는 이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정헌혈자 없으면 수술 못하는 병원

A씨는 “현장에서 한두달 정도 전부터 혈액이 모자르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었고, 요즘은 (중앙혈액원을 통해 혈액을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아예 지정헌혈자를 찾은 후 수술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A씨는 “지금 (우리 병원 흉부외과의 경우) 지정헌혈자를 찾아 수술하는 환자가 100%다. 지정헌혈자가 없으면 수술이 안되는 상황”이라며 “원내 혈액관리 담당 교수가 중앙혈액원과 통화했는데 실제 공급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A형과 0형은 아예 없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A씨는 “이같은 상황이 이어지자 비뇨기과 등 수술과들은 수술 중 혈관이 터지는 등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자체 해결하기 보다는) 흉부외과 전문의들을 호출한다”며 “흉부외과 전문의를 불러 혈관을 잡는 것이 혈액을 덜 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A씨는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면 상급종합병원 등 대형병원은 이런 상황을 아예 모르는 것 같다"며 "개인적으로 (정부가 혈액 부족 사실을 숨기기 위해) 입막음으로 일단 대형병원 중심으로 혈액을 우선 배정하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도 든다”고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특히 A씨는 혈액부족 사태가 응급환자 진료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A씨는 “우리 병원의 경우 종합병원이긴 하지만 사실상 상급종합병원과 비슷한 중증환자 수술을 하고 있다”며 “때문에 응급환자들도 수술해야 하는데, 지금은 응급실을 통해 혈액이 많이 필요한 환자가 오면 어쩔 수 없이 다른 병원으로 전원시키는 사례까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대목동병원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ㅍㅍㅅㅅ'에 게재한 '병원에 수혈할 피가 부족하다'는 글에 따르면 A형 피가 모자라 응급실에 실려온 창상 환자를 타 병원으로 보내야만 했다.

남궁인 전문의는 이 글에서 "얼마 전 병원에 A형 혈액이 없었다. 우리는 제발 수혈 가능성 있는 A형 환자가 오지 않기를 빌었다. 그때 가슴에 칼을 맞은 환자가 왔다. 그는 손으로 피가 흐르는 가슴을 움켜잡고 중환 구역에 누웠다. 치명상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깊은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며 "검사를 진행할 동안 상태가 악화할 수 있었다. 그에게 가장 먼저 물은 질문은 어떻게 찔렸냐는 것이 아니라, 혈액형이었다"고 당시 긴박한 상황을 전했다.

남궁인 전문의는 "그러나 그는 A형이라고 답했다. 수혈 가능성이 있어 처음부터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 안 되는 환자였다. 상황을 설명하고 즉시 다른 병원에 가도록 권유했다. 방금 칼을 맞고 누운 그는 어이가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와 나 모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는 가슴에 손을 얹은 채 다른 병원으로 향했다"고 말했다.

서울 소재 또다른 종합병원인 B병원도 최근들어 혈액 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

이 병원 관계자는 “우리병원도 추석 이후 계속 혈액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더욱 꼼꼼히 관리하고 있다”며 “혈액 2개를 신청하면 1개만 승인되는 식인데, 그러다보니 임상현장에서 여러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B병원은 내부적으로 환자혈액관리 프로그램을 통해 적정수혈, 최소수혈시스템을 가동하기 있지만 혈액부족 사태를 피해가지는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 흉부외과 전문의인 A씨는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알게 모르게) 의료전달체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지금 상급종합병원 환자 쏠림이 심각하다고 하는데 종합병원에서 진료할 수 있는 환자도 혈액이 모자라 더 큰 병원으로 보내고 있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적십자사 "혈액 부족 사태 인지…해결책 찾기 위해 노력"

한편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는 의료기관 혈액 부족 사태를 인지하고 있으며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혈액 부족 사태 원인으로는 헌혈 인구 감소, 고령화 등을 꼽았다.

혈액관리본부 관계자는 “올해 9~11월 의료기관 혈액 수급 어려움에 대한 상황은 인지하고 있다”며 “저출생 등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헌혈 참여 인구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반면 고령화로 인해 혈액수요는 증가되고 있는 상황이다. 헌혈자 중 10~20대가 70% 이상을 차지하는 우리나라에서 동・하절기 방학기간, 시험기간 및 명절 등 특정 시기에는 헌혈자가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올해는 말라리아 제한지역 확대 및 9월 이후에 몇차례 내습한 태풍 등으로 인해 의료기관에서 원하는 만큼 혈액을 공급하는데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며 “그러한 상황에서 제한된 혈액을 여러 의료기관에 공평하게 배분하기 위해 응급상황 등을 고려해 공급했다”고 덧붙였다.

혈액부족 문제 해결 방안에 대해서는 “혈액수급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대책회의를 통해 비상상황반을 운영하고 혈액관리본부 및 혈액원 주관 이벤트 실시, 헌혈의집 및 헌혈버스 운영 확대 등을 통해 헌혈자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의료기관에도 혈액보유량 관리를 통한 적정혈액 보유를 당부했으며 더불어 응급혈액 요청 시 즉시 대응, 대처하고 있다”고 피력했다.

이 관계자는 “최대한 많은 헌혈자를 확보하는 제도적 대책 마련을 위해 정부부처와 다양한 헌혈증진 방안을 지속적으로 협의하고 있다”며 “학생봉사점수 개선 및 헌혈교육 강화, 예비군 및 민방위 헌혈 가능을 위한 제도개선, 군인 헌혈가점제도 확대, 헌혈참여 우수기관 성과평가 가점 적용, 공공기관 헌혈 공가제도 확대, 해외여행 문진 판정기준 완화, 말라리아 제한지역 항시 해제 등이 그 예”라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국민 생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안정적인 혈액수급을 위해 혈액을 관리하는 범정부기관이 필요하고, 이를 통해 여러 정부부처가 참여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과제에 선정되는 등 적극적인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헌혈 점유율 73% 이상을 차지하는 10~20대 헌혈자 감소에 대비해 중장년층이 헌혈에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헌혈광고 등을 제작해 헌혈자 저변 확대를 통한 혈액수급 안정화를 도모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적십자사에 따르면 올 9~11월 월별 적혈구제제 평균 보유일 수는 9월 3.5일, 10월 3.4일이었지만 11월 들어 4.0일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곽성순 기자  kss@docdocdoc.co.kr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곽성순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카드뉴스
  • [카드뉴스] 바이오의약품 주식에 계속 투자해야 할까?
  • [카드뉴스] 의료데이터도 꿰어야 정보다
  • [카드뉴스] 개 키울 자격 6가지는 무엇일까?
여백
쇼피알 / 라디오
  • 1
  • 2
  • 3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