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대전협 공동기획] 젊은 의사가 말하는 ‘한국의료의 민낯’①
3·4년차 전문의 시험 준비 들어가면서 내과 인력 반토막…“이대목동 사건 떠오른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으로 국민들의 의료접근성은 높아졌다. 하지만 왜곡된 의료전달체계, 저수가 구조 등 고질적인 문제들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의료 현장에서는 그로 인한 부작용을 호소한다. 전공의들은 그 부작용을 최전선에서 체험한다. 그들은 환자들의 의료 이용량은 늘고 있지만 과연 최선의 진료를 받고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에 청년의사는 대한전공의협의회와 함께 한국의료의 실상을 알아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12월이 무섭습니다.”

내과 1년차인 A씨는 최근 들어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을 자주 떠올린다.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지난 2017년 12월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을 담당하던 소아청소년과는 극심한 의료 인력난을 겪고 있었다.

이대목동병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는 총 14명으로, 당직 근무는 1일 평균 5명이 맡았다. 당직 근무자 5명 중 2명은 신생아중환자실과 소아병동 2개를, 2명은 소아응급실을 담당했다. 나머지 1명은 4년차로 총괄 관리를 한다.

이같은 체계는 전문의 시험 준비 기간에 일부 전공의가 이탈하면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소아청소년과 4년차 전공의 3명은 전문의 시험 준비로 2017년 11월 1일부터 근무에서 빠졌다. 그런데 하필 이 때 이탈자가 발생했다. 열악한 근무 여건 등을 이유로 같은 해 12월 12일 전공의 5명(1년차 1명, 2년차 4명)이 집단 이탈해 근무하는 전공의 수는 6명까지 줄었다.

결국 전공의 2~3명이 당직 근무를 하면서 신생아중환자실, 소아병동, 소아응급실을 모두 담당하게 됐다.

신생아 4명이 사망한 2017년 12월 16일에는 3년차 전공의 1명과 1년차 전공의 1명이 당직 근무 중이었다.

교수들 사이에선 환자 줄이기 위해 휴가 쓰자는 말까지 나와

2년이 지난 2019년 12월, 내과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내과 전문의 수련기간이 4년에서 3년으로 단축되면서 ‘2020년도 전문의 자격시험’은 3년차와 4년차가 동시에 본다. 예년보다 2배 많은 전공의가 전문의 시험 준비로 근무에서 빠지며 이 기간 내과 전공의 인력이 반으로 준다는 의미다.

전공의법 시행으로 근무시간이 주당 80시간으로 제한되면서 4년차(혹은 3년차)에게 주어지던 ‘근무 열외’ 관행은 사라진 지 오래다. 지금은 휴가를 쓰지 않고 모아 놨다가 전문의 시험 준비 시간으로 쓴다. 2020년도 전문의 시험은 내년 2월 3일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지난 10월 23일부터 29일까지 내과 전공의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수련병원별로 차이는 있지만 3,4년차 전공의들은 보통 오는 12월말부터 5~6주 동안 전문의 시험 준비를 위해 휴가를 내고 근무에서 빠진다.

이미 예고된 일이었지만 현장은 무방비 상태다. 인력 공백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 업무 분배가 진행되고 있다는 응답은 30%뿐이었으며 나머지 70%는 대책 논의도 하지 않거나 논의는 하지만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병원이 마련한 대책도 교수나 전임의(펠로우)가 당직을 서고 다른 과에서 일부 업무를 분담하는 ‘임시방편’이 대부분이다. 입원과 외래 환자 수를 줄이려는 움직임도 있다. 한 대학병원 내과에서는 교수와 전임의들이 1월에 일주일씩 휴가를 내자는 의견이 나왔다. 외래 진료를 보지 않으면 입원 환자도 줄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12월이 ‘현실 공포’로 다가오는 내과 1·2년차

무엇보다 내과 1,2년차 전공의에게는 12월이 공포로 다가올 만큼 현실적인 문제다. 단순히 업무량이 증가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3,4년차 없이 환자를 책임져야 한다는 데서 오는 부담감이 더 크다.

내과 1년차인 A씨는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도 전공의 집단 이탈 후 인력 공백이 생기면서 발생했다”며 “3,4년차가 시험 준비를 위해 다 나간 상태에서 아직 모르는 게 더 많은 1,2년차끼리 환자를 봐야 하는 상황이 온다. 나는 그 기간이 너무 무섭다”고 토로했다.

그는 “내과 1,2년차 전공의 중에서 환자 상태가 급속히 나빠졌을 때 능숙하게 기관삽관을 하고 중심정맥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3,4년차가 했다”며 “지금도 병원에서 당직 근무를 하다보면 동시다발적으로 응급 상황이 발생한다. 3,4년차가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대전협 서연주 부회장은 “환자 수와 업무량은 그대로인데 아주 많은 능력치를 갖고 있는 3,4년차가 빠지는 것이어서 환자 안전도 걱정된다”며 “내과 전공의 인력이 반으로 줄면서 당장 12월 당직 일정을 짤 수도 없다는 병원도 많다. 현재는 마땅한 대책이 없다”고 지적했다.

서 부회장은 “3,4년차가 동시에 시험을 보는 올해만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내과가 3년제로 줄면서 인력도 4분의 3으로 준 셈이다. 앞으로는 그 상태로 쭉 운영돼야 하는데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움직임도 없다”며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 같은 일이 또 벌어질 수도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서 부회장은 “전공의뿐만 아니라 교수와 전임의(펠로우)도 고생하고 있다. 누군가는 업무 공백을 메워야 하기 때문에 교수와 전임의까지 포함해서 당직표를 짜는 병원들의 많다”며 “뭔가가 잘못됐다. 교수와 전임의는 당직을 선 다음 날에도 환자를 진료해야 한다. 결국 의료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 부회장은 “애초부터 병원 시스템을 개선해 입원전담전문의 등 추가 인력을 고용했어야 한다. 정부도 병원이 고용을 늘릴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며 “무엇보다 코앞에 닥친 상황을 무사히 넘기려면 환자 수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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