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의료인 폭력 문제 설문조사’ 결과 발표…‘월 1회 이상 폭언‧폭행 경험’ 12.8% 달해
반의사불벌죄 삭제‧진료거부권 명문화‧허위 의무기록 요구자 처벌 등 요구

의사 10명 중 7명 이상이 최근 3년 내에 환자나 그 보호자로부터 폭언이나 폭행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의료계는 ▲의료인 폭행에 대한 반의사불벌죄 삭제 ▲의료법에 진료거부권 명시 ▲진료실 내 대피공간 및 대피로 마련을 위한 정부의 재정 지원 ▲진단서 등 의학적 소견증명서 허위로 작성하도록 강요하거나 요구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 마련 ▲안전한 진료환경 조성을 위한 협의체 구성 등을 정부와 국회에 요구할 방침이다.

대한의사협회는 13일 용산 임시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최근 회원들을 상대로 진행한 ‘의료인 폭력 문제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닥터 서베이를 통해 진행된 이번 설문은 총 24개 항목으로 구성됐으며, 의사 2,034명이 참여했다.

의협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진료실에서 환자·보호자 등으로부터 폭언 또는 폭력을 당한 회원은 응답자의 71.5%인 1,455명에 달했다. 이는 응급실 등을 제외한 외래진료실에서만 발생한 수치다.

이 중 폭력을 경험한 비율은 약 15%였으며 신체적인 피해, 즉 부상에 이른 비율이 10.4%에 이르렀고, 봉합이나 수술, 단기간의 입원, 심지어는 중증외상이나 골절로 인하여 생명을 위협받은 경우도 있었다.

문제는 이러한 폭언이나 폭행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것.

응답자의 54.4%는 ‘진료실에서의 폭언과 폭력을 1년에 한 번 이상 경험한다’고 답했으며, ‘매달 한 번씩은 겪는다’는 비율도 9.2%에 달했다. 또 드물지만 매주 1회 이상 또는 거의 매일 겪는 의사들도 각각 43명, 12명으로 나타났다.

폭언 또는 폭력이 발생하는 이유로는 ‘진료결과에 대한 불만’이 가장 높았고, 이외에도 ‘긴 진료 대기시간’과 ‘비용’ 관련한 불만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진단서와 소견서 등 서류발급과 관련한 불만’도 16%로 확인됐다.

하지만 폭언이나 폭행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에 대한 고소·고발 등 적극적인 대응을 하는 의사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폭언이나 폭력을 당했을 때 ‘경찰에 신고하거나 법적으로 대응했다’는 응답자 468명, 전체의 28%에 머물렀으며 이 가운데 실제 실질적인 처벌에 이른 경우는 10%에 불과했다.

그 이유는 ‘경찰이나 사법 관계자의 설득 또는 권유로 인해 의사 본인이 고소, 고발 등을 취하했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으며, ‘피의자의 사과나 요청에 의한 취하’, ‘사법 절차 진행에 따른 부담감으로 인한 취하’ 등도 그 이유로 작용했다.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을지병원 가해자와 같이 실손보험 청구나 장애등급 판정 등을 위해 의사에게 허위 진단서 등을 요구하는 환자도 많았다.

실제 환자의 상태와는 다른, ‘허위 진단서 발급이나 이미 발급된 서류의 내용을 허위로 수정하도록 요구 받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2,034명 가운데 무려 1,254명인 61.7%로 나타났다.

이에 응답자 99.4%(매우필요 85.4%, 필요 14%)가 ‘진단서의 허위발급을 요구하는 사람에 대하여 처벌할 수 있는 법규가 필요하다’는데 공감했다.

의협 최대집 회장은 “의료기관 내에서 주로 의료인을 대상으로 벌어지는 폭력사건은 이미 오랫동안 사회적인 문제로 지적돼 왔다”면서 “피해자가 받는 일차적인 충격과 손상 그 자체도 문제지만 피해자가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인이기에 폭력으로 인해 진료를 받아야 할 환자에게까지 피해가 돌아간다는 점에서 의료기관 내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단순한 개인의 피해를 넘어 매우 심각한 공익의 저해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최 회장은 “지난해 말 임세원 교수 피습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의료계와 국회 등의 노력으로 의료인 폭행에 대한 처벌을 상향했지만 이번 사건을 보면 실효적 대책을 충분히 마련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면서 “이번 설문조사에서도 반의사불벌죄 삭제와 진료거부권 확보의 필요성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의협은 의료인 폭행에 대한 반의사불벌죄 삭제를 비롯 ▲의료법에 진료거부권 명시 ▲진료실 내 대피공간 및 대피로 마련을 위한 정부의 재정 지원 ▲진단서 등 의학적 소견증명서 허위로 작성하도록 강요하거나 요구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 마련 ▲안전한 진료환경 조성을 위한 협의체 구성 등을 추진할 방침이다.

최 회장은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 번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또 다시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경우가 상당수 있고 이 때 의사는 진료에 상당히 큰 장애를 받게 된다”면서 “현재 복지부 유권해석으로 진료거부 사유를 정하고 있지만 이를 의료법에 명문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번 정형외과 의사 피습 이유처럼 진단서나 장애진단서에 불만을 품고 의사에게 부당한 요구를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진단서 등 의학적 소견증명서를 허위로 작성하도록 강요하거나 요구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 마련을 국회와 정부에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현장에서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의료진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은 대피로나 대피공간 마련이 그나마 실효성이 있다”면서 “하지만 이를 모두 개인이 할 수는 없다. 국가에서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정부에 재정 대책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의료인 폭행을 예방하는 방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의협, 대한병원협회, 복지부가 함께하는 회의체를 다시 가동해야 한다”면서 “복지부에 협의체 구성을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최 회장은 “대국민 홍보를 통한 환자 인식 개선도 중요하다”면서 “국민들도 의료진에 대한 폭언이나 폭행이 의사에게만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 다른 환자를 위해 절대 해선 안 되는 행위라고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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