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노동위 ‘보건의료위원회’ 위원장 위촉된 서울의대 김윤 교수
“의료 인력난, '수'와 '분포' 문제…적정배치 가능한 대책 함께 논의해야”

최근 2기 출범을 알린 대통령 직속의 자문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의료계 이목을 끌고 있다. 근로자, 사용자, 정부가 노동·경제·사회 정책을 협의하기 위해 설립된 경사노위가 보건의료 분야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소매를 걷어 올렸기 때문이다.

병원 내 강압적인 조직문화의 대명사로 거론되는 ‘태움’의 근본 원인이기도 한 인력부족과 열악한 노동환경 문제에 노·사·정이 공감대를 형성함에 따라 지난달 31일부터 경사노위 내 ‘보건의료위원회’가 발족됐다.

의료계 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공공의료기관, 대학병원, 민간 중소병원 소속 노사 관계자 8명을 비롯해 보건복지부 등 정부 대표 2명, 공익위원 5명을 포함해 총 16명이 참여한다.

특히 경사노위 보건의료위원회가 주목 받는 데는 보건의료 정책의 핵심인물로 알려진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가 위원장으로 위촉된 이유도 있다.

의료계 고질적인 문제로 지목된 인력부족과 열악한 노동환경을 타파하기 위한 뾰족한 대안을 찾지 못한 채 악순환만 되풀이 하고 있는 상황에서 합리적인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지 기대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지난 5일 서울의대에서 김 위원장을 직접 만나 경사노위 보건의료위원회가 갖는 의미와 위원회에서 논의하게 될 의제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 보건의료 분야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물었다.

- 미국 다트머스 대학에서 6개월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이후, 공식적인 행보로 보건의료위원회 위원장으로 복귀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경사노위와는 미국 가기 전 사회안전망개선위원회 산하 건강보험 제도개선 기획단 일을 하며 인연을 맺었다. 보건의료위원회도 사실 오래 전부터 이미 발족하기로 돼 있었지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참여 문제로 지연되다 뒤늦게 구성됐다. 위원장도 인연이 닿아 시작하게 됐다(웃음).

- 지난달 31일 발족과 더불어 보건의료위원회 1차 전체회의가 진행됐다고 들었다. 위원회에서 다루기로 한 주요 의제는 무엇인가.

1차 전체회의에서 결정된 것은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일하기 좋은 노동환경 조성 방안, 임금실태 파악 및 개선방향, 보건 의료 인력의 업무범위 조정 협업체계 구축 방안 등 3가지 의제다. 그 중 의료인력 확충 및 협업체계 구축 논의를 우선순위로 둔 것은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절실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문제지만 해결책을 뚜렷하게 찾지 못하고 있다. 현재 단계에서는 인력에 대한 문제들을 폭 넓게 조망해 보고 그 중 경사노위가 할 수 있는 성격의 일을 찾으려고 한다. 논의의 중요성 등을 고려해 기본적인 내용과 방향을 협의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3가지 주요 의제를 돌아가며 안건으로 다루고 별도 소위원회를 만들어 논의가 성숙될 수 있도록 운영할 예정이다.

- 의료계 일각에서는 ‘태움’ 등 내부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들이 인력난으로 인한 결과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인력 충원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보나.

의료계는 수가 아닌 분포의 문제로 보고 있다. 간호사들도 수가 부족하다고 저항하진 않지만 간호사 수가 부족하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늘려야 한다고 이야기 하지는 않는다. 수와 분포, 두 가지가 복합돼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분포 문제를 를 개선할 수 있는 대안 없이 수를 늘리면 분포로 인해 왜곡되는 시스템에 의해 문제가 더 확대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수를 늘리더라도 분포의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대책과 함께 가야 한다.

간호 분야는 환자 대 간호사 배치 수준을 어떻게 늘릴 것인지 고려해야 한다. 지금 공급과잉 돼 있는 병상 문제와 연결시켜 과잉공급 혹은 과잉배치 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보고, 그 다음 병원 이외의 다른 분야에서 간호 인력 수요에 대해 어떻게 적정 추산하고 추상적인 수요가 아닌 시장에서 실제 작동하는 유효 수효가 될 수 있도록 어떻게 정책을 만들 것인지가 과제일 것이다. 병상과 사람, 장비가 함께 움직이는 의료 시스템 중 인력만 떼어 놓고 이야기 할 수는 없다. 그런 상황에서는 논의 자체가 의미 없다. 적정 배치 할 수 있는 대책과 함께 논의를 해야 수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 의료인 간 업무범위 조정 문제는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도 민감한 문제이기도 하다. 특히 PA(Physician Assistant)로 직역 간 갈등도 첨예하다. 이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또 이견을 어떻게 조율해 나갈 생각인지 궁금하다.

문제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있기 때문에 병원 노동자의 시각, 사용자의 시각, 정부의 입장 또 당장 논의 테이블에 참여하고 있지 않지만 각 직능 단체들의 입장들까지 폭 넓게 의견을 청취하고 합의 가능한 방안을 모색하는 게 더 중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PA 문제의 경우 전 세계적인 경향이 전통적으로 의사가 하던 업무를 다른 인력들에게 위임하는 게 일반적이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기술은 발전하고 환자들은 중증도가 높아지니 의사의 할 일도 과거보다 늘어났다. 그렇다보니 의사가 해야 할 일들 중 일부 다른 직종에 위임하는 게 전 세계적인 경향이 됐다. 그런데 PA 문제를 다른 나라들이 어떻게 풀고 있는지 잘 살펴봐야 한다. 직종 간 역할을 구분할 때 A는 의사가, B는 간호사가, C는 간호조무사가 하도록 나눌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의료에서도 팀 어프로치(Team Approach)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경직되고 딱딱한 방식으로 역할을 나누는 게 아니라 공동의 책임 하에 환자를 위해 어떻게 하면 서비스를 잘 해줄 수 있을까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병원의 의사와 간호사 등 다양한 직종들이 환자를 더 잘 보기 위해 어떻게 협력할 것인지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협업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보려는 것이다.

하지만 단 기간에 해결책을 내놓겠다는 욕심보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인식의 차이를 좁혀 합의할 수 있는 방향이 무엇인지 모색할 계획이다. 설령 합의가 안 된다고 하더라도 경사노위 보건의료위원회 활동을 통해 성과가 나오면 그대로 의미가 있다고 본다. 기간을 연장해 논의할 수도 있지 않겠나. 인력문제는 앞으로 보건의료체계에서 병상·전달체계 문제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문제로 떠오를 거다. 때문에 어려운 문제인 만큼 서두른다고 해결될 일은 아닌 것 같다.

- 인력과 더불어 병상, 전달체계 문제가 중요해 질 것이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보장성 문제, 지불제도 문제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가 바로 인력, 병상, 전달체계 문제다. 사람, 병상, 장비는 사실 시설로 따라오는 거고 이를 기능적으로 묶는 전달체계가 하드웨어적인 요소라고 한다면 지불제도, 평가제도, 인센티브, 수가는 일종의 소프트웨어다. 하드웨어가 갖는 규정력이 훨씬 크다.

이제까지 우리는 자원을 늘리는데 주로 집중해 왔다. 병상과 장비가 늘었고, 인력도 그간 부족하기는 했지만 사실 부족함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상태로 왔다. 반면 지금은 자원이 공급 과잉된 상태에서 전달체계는 없고 인력은 부족한데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은 안 갖춰져 있는데 더해 전달체계와 맞물려 있으니 문제다. 아무리 지불 제도를 만들고 바꿔도 병상이 공급과잉 돼 있으면 불필요하게 입원한 환자가 많을 수밖에 없다. 또 지불제도가 잘 갖춰져 있어도 취약지가 있다면 그 지역 사람들은 의료 서비스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다.

- 앞으로 보건의료위원회를 어떻게 꾸려 나갈 계획인지 궁금하다. 또 경사노위에서 보건의료위원회가 갖는 의미에 대해 한말씀 부탁드린다.

이끌어 나간다기 보다 솔루션을 찾을 수 있도록 교통정리를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사회적 합의라는 게 타협 아닌가. 내가 원하는 것과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을 협상 테이블 위에 내놓고 서로 주고받거나, 서로 양보하고 절충하는 것 말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합의에 이르는 것이 내 것을 주장하다가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것에 비해 낫다고 생각한다. 과거 의료전달체계 개선 협의체에 참여하며 느낀 점은 사회적 합의, 대화, 타협을 하는데 있어서 우리 사회가, 그리고 우리 의료계가 서투르다는 것이다. 논의를 통해 사회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그런 타협 능력이 만들어지고 쌓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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