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우리나라도 본격적인 고령사회로 접어들었다. 장례식장에 가보면 90대 임종은 이제 흔하고, 80대에 돌아가신 분은 “본전을 했다”고 위로하고, 70대에 돌아가시면 “젊어서 돌아가셨다”고 애석해한다.

정부는 점차 심화되는 고령사회 대책으로 일본식 커뮤니티케어를 내놓고 시범사업을 하고 있다. 일본보다 먼저 고령화에 진입한 유럽의 부유한 나라들은 80년대 이후 서서히 나라마다 각각의 정책을 만들고 추진하고 있었고 2000년 이후는 본격적인 정책 시행단계로 진입했다.

나라마다 대처하는 방식이 달라도 결국 고령화에 따른 공통된 사회 현상은 현대적 노인은 나이가 들어도 자신의 거주지에서 최대한 오래 살기를 희망하고 요양원이나 양노원 등 시설에는 가기 싫어 한다는 사실이다.

시설에 들어가면 여러 사람과 같이 지내고 심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장점이 있기는 하나 수용시설의 규칙을 따라야 하는 것이 원칙이어서 자주적 삶은 희생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의지대로 살고 싶고 각 개인의 자주성과 독립성에 대한 존중이 더욱 중요한 시대로 바뀌고 있다.

고령화는 이제 글로벌 화두…모두 Well-aging, dying 원해

수용 시설에 가기 싫은 것은 동, 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한 것 같다. 프랑스의 노인학 전공 교수와 면담할 기회가 있었는데 프랑스 노인들도 속칭 양노원이나 요양원 같은 은퇴자 거주시설에는 가기 싫어한다고 한다. 최대한 자신의 거주지에서 평생을 살고 싶어 한다고 하는데 일단 거동이 불편하기 시작하고 치매 증세가 확인되면 선택의 여지없이 시설로 가야한다.

프랑스의 은퇴자를 위한 시설은 전국적으로 잘 되어 있고 이곳에서 제공되는 모든 돌봄의 조정을 위해 ‘의무조정관(Coordinating doctor)’이라는 독특한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즉, 프랑스 법으로 정하여 요양원과 같은 시설에는 반드시 의무조정관을 두고 있어야 한다. 의무조정관은 의사이면서 특이하게도 원칙적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가 아니다. 이들은 요양원의 침상 수에 비례하고 전업으로 일하는 의사도 있고 다른 일을 하며 동시에 겸업으로 근무하기도 한다.

프랑스, 모든 요양원에 의무조정관 두고 돌봄의 핵심 역할 담당

임상의사에게 환자진료는 본업인데 규모가 큰 은퇴자 거주시설은 전업으로 근무하는 의무조정관을 두고 있다. 환자치료를 하지 않고 시설에 있는 고령자의 모든 돌봄에 관한 협업을 주도한다. 마치 교향악단의 지휘자와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의무조정관은 시설에 근무하는 간호사, 약사, 물리치료사, 운동처방사, 영양사, 치과의사 등 재소자 개개인에 대한 돌봄의 계획을 세우고 이에 따른 다양한 보건의료인의 직무를 조정하여 종합적인 돌봄의 계획과 실행을 감독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고령자를 위한 시설은 나름대로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는데 인지능력의 저하로 인한 입주자에 대한 사기나 학대 등 여러 가지 부정적인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고 요양원에는 촉탁의가 있어 이들을 돌보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대부분이 민간시설이고 시설에 거주하는 고령자들이 적절한 돌봄을 받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프랑스는 민간이나 공공이나 요양원은 반드시 의무조정관을 두고 있고 이들에 의하여 요양원의 돌봄에 대한 질적 제고에 기여하고 있다. 이런 제도는 프랑스가 주장하는 의사의 확장된 전문직업성 개념에서 사회정의와 의료에 대한 도덕적 감독 기능의 전통에 기원한다.

프랑스 의사들, 주변국에 비해 낮은 대우 불구 의료문화 질적 수준 탁월

필자는 최근 프랑스 의사와의 면담을 통해 프랑스에서 점차 가정의(일반의) 기피현상이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의과대학 진학열은 아직도 매우 높아 상위권 10%내의 학생만이 의과대학 진학이 가능하다고 한다. 특히 프랑스는 주변 부유한 유럽의 다른 나라에 비하여 의사대우가 가장 낮은 나라라고 자평하고 있었다. 프랑스 의사의 평균연봉은 우리나라 돈으로 약 1억 정도다. 그러나 정부와 계약을 하지 않는 소수의 자유계약의사 중에는 상당한 수입을 올리는 의사도 간혹 있다고 한다. 극히 일부의 유명한 성형외과 의사가 80인승 규모의 자가용 비행기도 소유할 수도 있는 다원적 사회이나 프랑스 사회에서 의사는 통상적으로 높은 급여를 받는 직종은 아니다.

프랑스 의사 소득이 높지 않다는 것은 의과대학병원이나 의과대학의 주차장을 가보면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의사가 타고 다니는 수준의 차량은 거의 볼 수 없다. 물론 좋은 차량이 사람의 신분과 무관하고 부의 상징도 아니라는 문화적 배경도 있으나 대체로 검소한 차량을 소유하는 게 대부분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적은 봉급에도 우리와 확연히 다른 것은 근무와 휴무의 명확한 개념, 그리고 전문직 생활과 가정생활의 엄격한 구분이 설정돼 있다는 것이다. 휴가문화는 우리와 비교도 되지 않는다. 공무원 신분의 의사는 연간 9주의 법정 휴가를 보장받고 있으며, 의과대학 교수는 보통 연간 5주의 휴가일수를 사용할 수 있다. 해외 학회출장은 당연히 휴가일수에 포함시키지 않는다고 한다.

의사 공무원 연간 9주 휴가일수 보장, 일과 휴무 경계선 분명

프랑스 정부는 사례조정자(case coordinator)나 관리자(manager)를 통한 고령 환자의 대처에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지 못했고, 이런 방법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많아 다 직종 팀에 의한 환자 거주지 방문 진료를 시도하는데 이것 역시 쉬운 해결 방안은 아니라는 것이 프랑스 노인학과 교수의 견해다. 방문 진료에 소요되는 시간과 진료의 어려운 조건 등이 의사의 방문 진료를 기피하는 요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보장성 강화와 고령사회에 대비한 여러 가지 정책으로 보건의료 예산의 증가는 불가피하게 보인다. 프랑스는 노인을 위한 급성기 병동이 병원마다 배정되어 있고, 노인의학 전문의가 배출되고 있다. 과거 일반의나 내과를 전공하고 나서 노인의학을 별도로 2차 전공하던 제도에서 이제는 노인의학의 자체적인 교육과정에 따라 노인의학 전문의가 1차적인 전문의로 변화했다고 한다. 교육과정은 응급의학, 재활의학 등 타과 파견수련이 혼합된 과정으로 더 이상 내과전문의 과정이 선행하는 제도는 없어졌다고 한다.

의사에 대한 대우의 문제인지 일차 진료를 담당하는 가정의(일반의) 수요가 감소하고 구하기가 어려워지면서 선진국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은 응급의학과가 점차 일차 진료의 게이트키퍼 내지 첨병역할을 담당해내고 있다. 우리나라 응급의학과도 예외는 아니다. 일반의나 가정의가 복잡성과 복합질환을 갖고 있는 노인환자를 기피하는 경향은 결국 주중 진료시간 외에는 모두 응급실로 책임회피성 진료를 의뢰하는데 이로 인하여 프랑스 응급의학과 의사의 파업도 있었다고 한다.

프랑스도 전문의 진료수요 급증으로 응급의학과 업무 로딩 팽창

프랑스나 독일은 영국과 달리 의료전달체계에 가정의에 의한 전문의진료 통제가 없다. 프랑스 노인학 교수의 표현에 의하면, 프랑스 사람들은 이제 신속하지 않은 진료에 대한 참을성이나 인내가 없어지고 즉각적인 전문의 진료를 원하는데 결국 응급실만 바쁘게 만들고 있다고 한다. 아울러 영국이나 북유럽과 같이 의사의 대우 특히 가정의에 대한 대우가 좋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의사들이 볼 때 영국이나 북유럽의 의사가 훨씬 좋은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한다.

의료보험이 가장 잘 되어 있는 프랑스도 나름대로의 고민이 많아 보였다. 그럼에도 자기 주머니에 돈 한 푼 없어도 안심하고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자국의 사회 안전망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다. 영국과 달리 프랑스는 아주 비싼 신약이라고 임상적 자율권에 의하여 환자에게 제공이 가능하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아무리 신약이라도 약물의 효용에 대한 증거나 근거가 확실히 있어야 보험에서 처리하여 제공할 수 있고, 아주 고가의 약은 다수의 이득을 위하여 제공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례로 프랑스 노인의학 교수의 설명에 의하면, 프랑스의 사망원인 1위는 암인데, 이들 중 절반 이상의 환자가 평균 65~79세에서 확진되어, 이들이 원하면 비싼 신약이라도 주치의가 결정하면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노인의학의 세부 전문 과정으로 ‘노인암(geriatric oncology) 세부전문의’로 분화되어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인간중심 진정성 있는 배려 문화 속 과거-현재 공존 의료 문화 특징

프랑스의 병원문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병원 운영에 있어서 사람에 대한 진정성 있는, 그리고 진심어린 배려가 엿보임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일부 대형 병원들처럼 사치스럽거나 요란한 장식의 인테리어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인간 중심의 과거로부터 흘러 내려오는 구시대의 우직한 전통과 신시대의 첨단과학이 함께 호흡하며 공존하는 시공간적 특성을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프랑스 의료 문화의 특징적 요소는 수수함과 검소함이 배어 있는 듯하다. 임상과별로 보여주는 다국적 연수생과 교환 학생, 그리고 병원에 부속한 연구시설은 가히 세계최고 의료국가라는 이름에 조금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언제부터인지 프랑스어에 집착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어떤 나라의 연수생이 와도 영어로 지도 가능한 점을 내세우는 모습이 불필요한 과거의 영광과 언어적 국수주의의 집착 보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국제적 언어인 영어에 앞장서 적응해 나가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중국은 과거 선교사에 의한 불어의과대학을 세운 지 오래 되었고 아직도 상해의 교통대학 의과대학 안에 불어의과대학이 존재한다. 이런 연유인지 프랑스병원에 중국인 학생과 연수생들이 유독 눈에 많이 띄었다. 중국의과대학의 평가에 참여했을 때 중국에서 공부한 교수들이 종종 볼 수 있었는데 이번 프랑스 방문을 통해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미국 일변도인 우리나라 정서와 문화에 중국의학교육의 국제화 정책도 한번쯤 눈여겨 볼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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