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호 교수, ‘환자결정권 부족’ 지적…입원‧응급실 방문 시 ‘의향서’ 작성 여부 확인해야

시행 2년 '연명의료결정법’에 대한 개정 요구가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개선이 요구되는 부분은 ‘부족한 환자결정권’과 ‘환자의 정확한 의사 확인 방안’ 등으로 연명의료결정법의 핵심사항이 대부분이다.

더불어민주당 원혜영·맹성규, 바른미래당 김상화 의원과 (사)한국여성변호사회는 17일 오후 국회에서 ‘연명의료 중단에 과난 입법적 개선방안’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연명의료결정법과 웰다잉 정책’을 주제로 발제한 서울의대 윤영호 교수는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지 2년이 되고 있지만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등이 여전히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국내 어느 병원에서도 환자의 의식이 있고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을 때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대해 설명하고 작성하게 하지 않는다”며 “현재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려면 환자가 스스로 이에 대해 알고 등록기관을 찾아가는 방법 뿐”이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이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을 본인 스스로 해야 한다고 방관하는 것”이라며 “환자가 의료기관에 입원하거나 응급실을 방문할 경우 (의무적으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여부를 확인하게 하고 (작성하지 않았을 경우) 설명 후 작성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법에 명시하는 방향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 교수는 “병원입원시나 응급실 방문 환자에게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여부를 확인 후 의무기록에 남기고 없는 경우 설명해 희망하는 경우 작성하도록 하는 방안이 현실적이며 실효성 있는 대안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지금 법으로)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보장되는지도 봐야 한다. 지금은 환자 입장이 아닌 가족입장이 반영되는 상황”이라며 “환자와 가족의 의사는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연명의료결정과 관련해서는) 당연히 가족 대리 결정보다는 환자 의사를 정확히 물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확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 교수는 이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연명의료결정법을 넘어 ‘웰다잉 문화조성에 관한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윤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웰다잉 문화가 정착되지 않는 이유로 ▲심각한 간병 부담 ▲독거노인 및 고독사 급증 ▲병원 객사 증가 ▲장기기증자 감소 ▲제한된 호스피스 대상 질환 ▲낮은 호스피스 이용 ▲심각한 장례문화 ▲정착되지 않은 연명의료결정제도 ▲저조한 한국형 유산기부 ▲웰다잉에 대한 사회적 합의 부재 등을 꼽았다.

윤 교수는 이같은 문제해결을 위해 ▲웰다잉에 대한 국가·사회적 합의 ▲사전연명의료결정 활성화 보험 적용 ▲말기환자 가족 간병지원센터 운영 ▲말기환자 간병가족 수입과 직업 유지 ▲초중고대학 교과과정에 죽음 교육 ▲웰다잉문화 캠페인 개최 ▲국가적 웰다잉 자원봉사 활성화 ▲유산기부제도 정착 ▲웰다잉 사전설계 전문가 양성 및 활성화 ▲웰다잉기금 및 문화재단 조성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민·관 합동 범부처웰다잉위원회 설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윤 교수는 “범부처웰다잉위원회를 통해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존엄과 가치를 가진 노후 인생을 설계해 삶을 잘 정리하고 기억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호스피스, 연명의료결정 등 협의의 웰다잉을 넘어 노후생활, 장기기증, 유산기부, 생전장례식 등 다양한 요구와 웰다잉을 위한 여건 조성을 해결할 수 있는 광의의 웰다잉 법제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윤 교수는 ▲노인복지법 또는 노후준비지원법 개정 ▲연명의료결정법 등의 전면 개정을 통한 웰다잉문화조성에 관한 법 제정 ▲연명의료결정법과 별도로 웰다잉문화조성에 관한 법 제정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연명의료결정법의 문제점과 개정방향’을 주제로 발제한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김천수 교수는 연명의료 보류·중단 결정을 법원 등 조직이나 기관에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연명의료결정법을 만든 배경에 따라) 자연사를 향한 환자 본인의 뜻을 존중해야 하며, 가족의 역할은 본인의 평소 언행을 진술하는 것에 그쳐야 한다”며 “그런데 대행 결정까지 연명의료결정법이 나아간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연명의료 중단·보류) 판단 책임을 담당의사 개인에게 지우기에는 부적절하고 이를 판단할 일정한 조직이나 기관으로 법원이나 위원회를 상정할 수 있다”며 “이런 입법으로 법정대리인·가족 대행결정을 대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또한 김 교수는 법정대리인이나 가족 대행 결정이 필요한 대표적인 사례인 미성년자의 경우도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김 교수는 “연명의료 보류·중단은 행위능력이 아니라 동의능력이라는 점에서, 동의능력이 있는 미성년자도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놓을 수 있고, 단독으로 담당의사에게 요청해 설명을 듣고 이해 여부를 확인 받는다면 연명의료계획서도 작성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그런 능력이 있는 시점에서 표명된 미성년자의 뜻은 가족들의 진술로 연명의료 보류·중단의 근거로 인정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김할머니사건에 대해 연구를 진행했던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노태헌 부장판사 역시 현 연명의료결정법이 자살방조죄를 넘어 좀 더 폭넓게 논의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 판사는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은 대법원 판례에 갇혀 있는 것 같다. 사실 대법원의 고민은 자살방조죄와 연명의료 중단을 구분하는 것에서 시작된 고민”이라며 “우리나라에서 자기결정권은 이미 확립된 법으로, 자기결정권이 있더라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모두 하고 모두 도와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은 (김할머니 사건을 넘어) 폭넓게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노 판사는 “동의능력과 행위능력이 다르다는 김천수 교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다만 동의능력을 인정하는 (나이) 기준을 일률적으로 정하는 것이 문제인데, 일률적으로 해야 한다면 장기이식법과 같은 17세로 하는 것이 맞다. 이에 따라 현행법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삭성 기준 나이를) 19세로 규정한 것은 반드시 개정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