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 "삭제 인정하나 증거인멸죄 해당 여부는 의문…자료와 분식회계 관련성, 검찰이 입증해야"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수사와 관련된 증거인멸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삼성 임직원들이 "분식회계 관련 여부는 증거인멸에 해당하는 자료를 특정해 검찰이 입증해야 할 것"이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소병석 부장판사)는 26일 오전 11시 증거위조·증거인멸 및 증거인멸교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삼성바이오로직스 보안담당 직원 안모씨와 삼성바이오에피스 양모 상무, 이모 부장, 삼성전자 김모, 이모, 박모 부사장 등 총 8명 임직원에 대한 3차 공판준비기일을 열었다.

이날 피고 측 변호인들은 자료를 삭제하거나 삭제를 지시한 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대체로 인정했지만 해당 행위에 증거인멸죄 혹은 증거인멸교사죄를 적용하는 것이 적법한지 여부는 다툴 여지가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면서 검찰에 삭제한 자료가 무엇인지 특정하고, 어떤 점에서 분식회계와 연관된 것인지 증명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삼성 측 변호인들은 "검찰은 직원이 삭제했다는 파일 목록 2,560개 중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파일이 증거인멸에 해당하는지 특정해야 하며, 실제로 삼성바이오 분식회계와 관련된 증거인지 입증해야 한다"면서 "공소장에 특정된 6개 전화통화 파일조차도 어떤 내용에 대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달 23일 2차 공판준비기일에서 "검찰의 공소사실이 막연하므로 증거인멸에 해당하는 자료가 무엇인지 특정해달라"는 요구를 재차 제시한 것이다.

재판부도 "컴퓨터 내 어떤 파일을 삭제했다는 목록을 만드는 등 내용을 특정하면 더욱 명확해질 것"이라며 변호인 주장에 동의했다.

하지만 검찰은 여전히 수사 중인 사안이라 당장 구체화가 어렵다고 밝혔다.

변호인들의 주장에 대해 "어느 정도 내용이 특정됐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변호인이 생각하는 부분을 반영해 전체적으로 구체화할 생각이다. 다만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사건이 계속 수사 중이고 추가 관련자들이 있어 지금 단계에서는 내용을 특정하기 어려우므로 추후 재판을 진행하면서 구체화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수사가 장기화되고 있어 증거인멸죄와 관련된 자료를 특정할 수 있는 시점도 늦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삼성 측 변호인들은 증거인멸죄 구성요건 해당 여부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했다.

변호인들은 "기소된 관련자들이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형사사건에 있어서 주범에 해당할 텐데 그렇다면 자기 사건에 대한 자료를 삭제하는 것이므로 범죄 구성요건이 성립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형법상 증거인멸죄는 '타인의 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 은닉, 위조한 자'에 한해 적용된다. 따라서 자기범죄에 대한 증거인멸죄는 성립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검찰은 "이 사건에 기소된 피고인들은 대부분 삼성바이오 분식회계와 관련없는 제3자의 행위인 것으로 법리검토를 마쳤다"고 말했다.

이날 재판에서는 타인의 형사사건인 삼성바이오 분식회계에 대한 심리도 진행할지 여부도 다뤘다.

검찰은 "법리적으로 타인의 형사사건 혐의가 유죄일 필요까지 없고 수사가 개시된 단계면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면서 "아직 수사 중인 부분이 있어 이 부분까지 심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냈다.

반면 변호인들은 타인의 형사사건이 무죄로 판결 날 경우 양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일정부분 심리가 이뤄지거나 심리 결과를 재판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호인들은 "삼성바이오 분식회계가 무죄로 날 경우 최소한 양형에라도 영향을 미쳐야 한다고 본다"며 "성립되지 않는 증거를 인멸했다는 이유로 높은 양형을 받게 된다면 피고인 입장에서는 납득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변호인들이 요구한 증거인멸에 해당하는 삭제 자료를 특정할 수 있는지 여부를 검토해 달라고 검찰에 요청하는 동시에 아직 입장을 밝히지 않은 피고인 측에게도 사실관계 의견서를 제출할 것을 주문했다.

이들에 대한 4차 공판준비기일은 9월 6일에 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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