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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을 위해 싸운 간호사·간호학생 34인을 기리다간협, 16개 시·도 간호사회와 '기억합니다' 캠페인…“고귀한 정신 본받아 간호역사 만든다”
  • 김은영 기자
  • 승인 2019.08.15 06:00
  • 최종 수정 2019.08.15 06:00
  • 댓글 3

대한간호협회가 일제강점기 엄혹한 시기 뜨거운 민족의식과 기개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운 간호사와 간호학생을 기리기 위한 캠페인에 나섰다.

간협은 전국 16개 시·도 간호사회와 공동으로 제74회 광복절을 기념해 ‘독립운동가 간호사·간호학생 34인을 기억합니다’ 캠페인을 전개한다고 지난 14일 밝혔다.

독립운동가 간호사들의 자랑스러운 이름을 기억하고 고귀한 정신을 본받아 위대한 간호역사를 계속 만들어 나가기 위해 기획된 캠페인이다.

간협에 따르면 독립운동가 간호사 34인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독립만세운동을 비롯한 군자금 모집, 적십자활동, 사회운동, 첩보활동, 비밀연락, 독립군 규합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며 일본을 압박했다.

‘군대해산 항전’ 간호 구호활동으로 항일전 의지 키워

일제가 고종을 퇴위시키고 한일신협약을 강제 체결하면서 부속 밀약으로 군대해산을 단행하자, 시위보병 대대장 박성환이 한국군대 지휘자로 책임을 통감하고 자결했다.

당시 군대해산 항전에서 세브란스병원과 보구여관의 간호사들은 몸을 아끼지 않고 부상병 간호에 힘썼다. 이는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일제강점기 간호사들의 항일전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키워준 계기가 됐다.

조선 여성 자주독립 의지 보여준 ‘대한민국애국부인회’

1919년 3·1운동 직후부터 상해 임시정부를 후원하고 독립전쟁을 준비하기 위한 각종 활동을 전개할 목적으로 비밀리에 조직된 ‘대한민국애국부인회’는 3·1운동으로 투옥된 애국지사들의 옥바라지와 가족 구호를 위해 모급활동을 전개했다.

이 모금활동의 중심에 섰던 간호사들은 전국 규모의 지부를 설치하고 군자금 모금활동을 활발히 전개하다 서울과 대구에서 일제히 검거되기도 했다.

당시 체포된 간호사는 결사대장 이성완, 적십자부장 이정숙, 김태복 등이었다.

간호사 주도의 독립운동 ‘간우회 사건’

일제 식민지 보건의료정책의 심장부인 조성총독부의원에서 일어난 독립운동인 ‘간우회 사건’의 중심에도 간호사 박자혜가 있었다.

박자혜의 주도로 조선총독부의원 간호사들이 모여 시작된 독립운동은 주요 병원의 간호사들이 일제에 대항해 파업과 태업을 하도록 이끌기도 했다.

세브란스병원 간호사들의 만세시위

세브란스병원 학생들은 3·1운동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3월 5일 남대문광장에서 대대적인 만세시위운동을 펼쳤다.

이날 세브란스병원 간호사 10여명이 군중 속에 섞여 부상당한 사람들을 치료하다 일본 군경에게 체포되기도 했다. 이어 12월 2일 세브란스병원 노순경, 박덕혜, 이도신, 김효순 간호사가 서울 훈정동 종묘 앞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했다가 옥고를 치렀다.

독립 열기 속 여성 권리 찾기 운동 전개한 ‘근우회’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민족해방운동조직인 ‘근우회’는 여성의 경제·사회적 지위 향상, 인간으로서의 권리 찾기 등의 활동을 추구했으며 독립운동에도 적극 개입해 일제의 탄압과 견제를 받기도 했다.

근우회 소속 간호사는 초대 중앙집행위원장을 지낸 정종명, 평앙지회 집행위원이었던 김태복, 근우회지 창간호에 ‘근우운동과 재정방침에 대하야’를 투고한 한신광 등이 있다.

해외로 뻗어나간 독립 열기, 러시아·만주·상해에 닿아

간호사들의 뜨거웠던 독립 열기는 러시아 연해주와 만주 용정, 상해 임시정부 등 해외로 확산됐다.

3·1운동 이후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을 비롯한 연해주 각지에서 독립운동이 고조됐으며, 대한부인회의 중심 인물 중 간호사였던 채계복이 있다.

만주 용정에서 활동하던 간호사들은 부상병을 치료하고 독립운동 활동을 돕는 활약을 펼쳤다. 만세운동으로 속출한 사상자가 제창병원으로 옮겨지면서 간호사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치료와 간호에 매진했다. 또 3·1독립운동선언서와 개최통지서를 등사하는 작업에도 참여했다.

중국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내무부총장 안창호의 명의로 1919년 8월 29일 대한적십자회 설립을 공포했다.

이어 1920년 1월 31일 상해 프랑스 조계지 내 대한적십자회 총사무소에 ‘적십자간호원양성소’가 설치돼 개학식이 열렸으며, 독립항쟁을 대비해 독립군 부상자의 치료와 간호를 위해 간호사 양성교육에 힘써 간호사 위상을 높여주기도 했다.

하와이에서는 대표적인 여성한인단체인 ‘대한부인구제회(Korean Women's Relief Society)가 1919년 4월 1일 창립됐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때까지 조국 독립 지원 및 조국 난민 구제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1920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다이뉴바(Dinuba)에서도 한인들이 모여 3·1운동 1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행사를 열었으며, 1921년에는 한인적십자단을 구성했다.

김은영 기자  key@docdocd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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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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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호사샘들필독3 2019-08-16 22:24:21

    세상 무조건 아름답게 보면 안됩니다.

    군대는 아주 무식한 조직임.

    전쟁에서 이기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면, 간호사같은 성직도 그렇게 할 수도 있는 조직임...

    그런 일이 꼭 일어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일어날 수도 있음...

    여성 간호사 선생님들은 국방부에 자신들이 위안부로 악용될 수 없도록 하는 확실한 방안을 내놓으라고 강력히 요구해야 합니다.   삭제

    • 간호사샘들필독2 2019-08-16 22:11:28

      "전·현직 군장성-미군 간부도 '별장 접대' 대상이었다"
      http://mnews.jtbc.joins.com/News/Article.aspx?news_id=NB11782853
      이런 놈들이 있습니다.

      간호장교를 나중에 보낸다며 간호사들을 먼저 보내고, 간호사들을 전사 또는 실종처리.
      야전병원이 위안소로 쓴다면?

      이미 각오를 하고 위안소로 들어온 병사들은, 간호사임을 말해도, 지 상관들이 직업여성들이라 했다며 양심을 물리칠 거임.

      간호사 같은 성직한테 어떻게 그럴 수?
      이메쿠라란 업소에 전쟁터,병원 컨셉이 있는 세상임..   삭제

      • 간호사샘들필독 2019-08-16 21:43:44

        독립을 위해 싸운 의사는 왜 안올리냐?

        는 농담이고.

        http://m.docdocdoc.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71212
        댓글 참고하세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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