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들 "고육지책으로 아이디 도용까지…신입 간호사 벼랑 끝으로 내모는 일"
병원 "2~3시간 일찍 출근하던 관행 개선해 보겠다는 의지… 보상체계 마련"

주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수련병원들의 근심이 깊어졌다. 특히 간호사 조기출근에 대한 초과근로수당 미지급 문제로 논란이 됐던 수련병원들은 근무시간에 제한을 두기 위해 고심하고 있지만 뾰족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17년 국정감사에서 간호사 조기출근에 대한 초과근로수당 미지급 문제로 일부 수련병원들이 도마위에 올랐다. 당시 간호사 초과근로수당으로 논란이 됐던 수련병원은 서울대병원, 고대안암병원, 건국대병원, 동국대일산병원, 울산대병원, 부산의료원 등 6곳이다.

특히 병원들은 전산시스템 자료를 근거로 미지급된 초과근로수당이 책정되면서 억 단위의 금액을 밀린 수당으로 지급해야 했다. 서울대병원이 지난 2014년 6월부터 2017년 8월까지 임용된 742명을 대상으로 지급한 초과근로수당만 8억5,000여만원에 달한다.

결국 일부 수련병원들은 간호사 조기출근에 대한 초과근로수당 지급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처방전달시스템(Order Communication System, OCS)과 의료정보전산시스템(Hospital Information System, HIS)에 근로시간 이후에는 접속하지 못하도록 제한을 뒀다.

하지만 해법이 되기보다는 곳곳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병원 측의 탁상행정 결과라는 것이다. 제대로 된 수당을 지급 못 받는 것은 물론 오히려 환자안전에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게 간호사들의 주장이다.

본지가 초과근로수당 미지급 문제가 있었던 수련병원 일부를 확인한 결과, 서울대병원과 고대의료원은 근무시간 외에는 병원 전산시스템에 접속하지 못하도록 차단했다.

서울대병원은 근무시간 전·후에 해당하는 연장근로 사유를 수간호사에게 제출하도록 했다. 이후 해당 내용이 수간호사를 통해 결재돼 인사팀에 전달되고 타당한 사유로 인정될 경우에만 시간외 수당을 산정해 주기로 했다.

고대안산병원은 근무시간 이후 초과근무를 해야 하는 경우 병원 전산시스템에 접속신청을 하면 자동으로 접속시간이 연장되도록 했다. 또 간호사가 인사관리시스템(HRM)에 기록한 초과근무시간은 부서장 승인을 거쳐 추후 수당으로 지급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1~2시간 정도 조기출근 하더라도 전산시스템에 접속하지 못해 환자파악 등 업무에 반드시 필요한 제반사항 준비를 못 하고 있다는데 있다.

이에 ‘환자안전’을 위해 조기출근을 할 수밖에 없었던 간호사들은 출근이 두렵다고까지 호소했다.

서울대병원 A간호사는 “간호사 1명당 환자 15~17명을 돌보고 있다. 1명당 5분씩 환자 파악하는데 걸린다고 하더라도 1시간이 훌쩍 넘는다. 근무시간 중 환자파악을 위한 여유시간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일찍 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대안산병원 B간호사도 “신규 간호사나 경력 간호사 모두 환자 파악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며 “출근해 약품이나 물품 카운트 하고 투약준비, 환자파악 없이는 근무 시작조차 어렵다. 환자마다 병력이나 투약, 금기사항 등을 미리 파악해야 업무로스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계가 끝나면 2시 50분인데 3시에 당장 수술실로 환자를 보내라고 전화가 올 때가 있다. 수술실 보내기까지 2~3분 안에 모든 게 준비돼야 하는데 환자파악이 안 돼 있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며 “신입 간호사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현장에서는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조기출근 하더라도 병원 전산시스템 접속이 불가능해지자 간호사들은 임시방편으로 ‘아이디 도용’을 택했다. 상사로부터 다른 간호사의 아이디를 도용해 쓰라고 ‘지시’를 받은 경우도 적지 않았다.

고대안산병원 C간호사는 “다른 간호사 아이디로 접속해 환자를 파악하고 있다. 신규 간호사들은 2시간 전에 출근해 다른 간호사 아이디로 접속해 이 컴퓨터 저 컴퓨터 메뚜기처럼 옮겨 다니며 근무하지만 결국 근무시간으로 인정되지 못해 수당은 못 받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간호사들이 의사 아이디로 처방 내는 것도 문제지만 이제는 간호사들끼리 아이디를 도용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며 “불법을 줄여나가야 하는 판국에 조장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서울대병원 D간호사도 “아이디를 서로 빌려 주고 공유한다. 나쁜 짓 하는 것도 아닌데 떳떳하지 못하게 여기저기 빌리고 있는 상황이 안타깝다”며 “병원에서도 (이런 상황을) 다 알면서도 초과근무수당을 주지 않기 위해 이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급기야 서울대병원은 전산시스템 차단이 실제 간호사들의 근무환경 개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기 위해 자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서울대병원 간호사 358명이 참여한 실태조사 결과, 전산시스템 차단에 따른 근무시간 단축 효과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환자안전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많았다.

설문에 참여한 간호사 95.81%인 343명은 전산시스템 차단이 환자안전과 근무시간 단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불과 4.19%에 해당하는 15명만 긍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전산시스템 차단 전 조기출근 한 간호사는 343명인 95.81%에 달했으며, 차단 후에도 84.36%에 해당하는 302명이 여전히 조기출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근무시간 단축 효과는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산시스템 차단 후에도 30분 일찍 출근한 간호사수는 178명(58.94%)이었으며, 30분에서 1시간 사이가 96명(31.79%), 1시간 이상이 28명(9.27%)으로 뒤를 이었다.

조기출근한 간호사들은 주로 투약준비, 환자파악, 물품·약품 인계, 수술·마취, 바이탈 체크 등의 업무를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간호사들은 병원 전산시스템 차단이 근무환경 개선을 위한 근본적인 방안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수련병원들이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하지 않으려고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기출근을 근절하겠다며 무조건 근무시간을 제한할 게 아니라 근본적인 개선방안 마련을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대병원 D간호사는 “조기 출근시간에 대해 수당을 산정해 주기 싫어 꼼수를 쓸 게 아니라 출근시간을 차라리 30분~1시간 앞당겨 그 시간까지 근무시간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고대안산병원 C간호사는 “초과근무수당이 비싸기 때문에 안 주려는 것 같다. 노사협의회에서도 이 문제가 안건으로 올랐는데 병원 측에서는 간호부에서 아무 불만이 없다고 보고 했다고 무마했다”고 전했다.

그는 “전산시스템 로그아웃 할 때 연장근무 사유를 입력 하는데 수간호사 눈치 받는 일도 스트레스다”라며 “연장 근무 했다 하더라도 정당하게 보상 받을 수 있는 절차는 아니라고 본다. 간호사들의 목소리가 반영된 개선안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편, 서울대병원은 주52시간 시행에 따라 간호사 근무환경 개선을 위해 병원 전산시스템을 차단키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간 관행적으로 2~3시간 일찍 출근하던 간호사 근무시간을 제도시행에 따라 개선해 보겠다는 의지에서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주52시간을 지켜 제 시간에 근무할 수 있도록 근로환경 개선을 권장하는 차원에서 실시했다”며 “병원에서 발생한 응급상황 등 연장근로 사유를 기재해 수간호사가 결재하면 인사팀으로 전달돼 시간외 수당을 산정해 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관행적으로 간호사들이 아침 7시부터 근무인데 새벽 5시 30분에 나와 근무했다고 한다”며 “제도적으로 강하게 고쳐보자는 의도가 있다”고 말했다.

고대안산병원도 불필요한 업무를 차단하고 보상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고대안산병원 관계자는 “간호사들의 불필요한 업무를 줄여주고 수당지급도 제대로 책정해 주기 위한 조치”라며 “병원에서도 근무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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