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의사 구속 규탄 궐기대회’에 의사 400여명 참석…의료사고특례법 제정 등 요구

20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산부인과 의사 구속 규탄 궐기대회'에 참석한 의사 400여명은 '불가항력 의료사고 법정구속 웬말인가? 무과실 국가배상, 소신진료 보장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법원 판결에 항의했다.

산부인과 의사들이 거리로 나왔다. 사산아 유도 분만 중 산모가 사망한 사건으로 동료 의사가 실형을 선고받자 불가항력 의료사고였다며 법원 판결의 부당함을 호소하기 위해서다.

(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와 대한산부인과학회, 대한모체태아의학회가 20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개최한 ‘산부인과의사 구속 규탄 궐기대회’에는 산부인과 전문의 등 의사 400여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흐린 날씨에 우비를 입고 자리를 지키며 “전과자를 양산하는 부당한 의료판결로 산부인과 없어진다. 사법부는 각성하라”고 외쳤다.

이들은 진료 결과로 유죄 여부를 판단한다면 의료현장에서는 위험한 진료를 기피하는 현상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특히 불가항력적 분만사고가 발생하는 산부인과를 전공하려는 의사는 줄어 분만환경이 파괴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이날 궐기대회에는 분만 중 태아 사망 사건으로 1심에서 금고형을 받았다가 대법원까지 가는 법정 다툼 끝에 무죄 판결을 받은 인천 산부인과 의사 이모 원장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이 원장은 이날 단상에 올라 “의료사고는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내 일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그리고 불합리한 일이 생겼을 때 어디에 도움을 요청할지 막막했다. 동료 의사들의 도움으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며 울먹였다.

이 원장은 “산부인과 의사들은 태아와 산모를 위급한 상황에서 구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도 중대한 의료소송에서 법정 구속 같은 형사상 책임을 묻는다면 이 나라에서 더이상 산부인과 의사를 하기 어렵다”며 “안전한 사법적 환경에서 산부인과 의사를 계속할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소신진료'라고 적힌 모자를 쓰고 20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산부인과 의사 구속 규탄 궐기대회'에 참석한 의사들.

“결과 나쁘다고 구속하면 누가 산부인과 하겠는가”

궐기대회에서는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는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직선제산부인과의사회 김동석 회장은 “이 사건의 본질은 의사가 산모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이 아니라 의사가 위급한 산모를 살려내지 못한 게 감옥에 가야 할 사유라는 판결”이라며 “이번 판결이 두려운 이유는 분만하는 산부인과 의사라면 태반조기박리는 언제든지 갑자기 발생할 수 있고 더구나 사산 분만유도의 은폐형 태반조기박리 출현은 아무리 경험이 많은 의사도 그 진단과 처치가 극도로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의료행위에는 통계적 위험도가 있음에도 의료행위의 나쁜 결과로 의사가 구속된다면 언젠가는 누구든 구속될 수밖에 없다”며 “불가항력적 상황에서 환자를 100% 살리지 못한다고 실형을 받는다면 어떻게 진료를 하라는 것이냐. 산부인과 의사들은 무서워서 더이상 분만을 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이어 “이해할 수 없는 판결로 산부인과 의사들이 분만실을 떠나는 것을 막아 달라”며 “전과자가 되려고 산부인과를 선택한 게 아니라 산모와 태아의 건강권을 수호하기 위해 선택했다. 힘들지만 천직이라고 생각하는 산부인과 의사로 국민 곁에 남아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 김동석 회장은 20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산부인과 의사 구속 규탄 궐기대회'에서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산부인과학회 김승철 이사장은 “대한민국 의료현실은 산부인과 의사의 자부심에 찬물을 끼얹고 재를 뿌리고 있다”며 “임상 현실에 대한 몰이해와 의사 직군을 향한 근거 없는 배척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객관적이고 공정해야 할 사법부에 이르렀다”고 비판했다.

김 이사장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이고 100번 설명해도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는 게 산부인과다. 이런 산부인과 특성이 무분별한 의료분쟁과 포퓰리즘적 형사처벌의 먹이감이 돼 버렸다”며 “환자를 치료하고 살리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해도 결과가 나빴다고 구속돼 감옥에 간다면 누가 산부인과를 하고 누가 분만을 하겠느냐”고도 했다.

모체태아의학회 김윤하 회장은 “분만 인프라가 감소하면 분만 취약지가 늘고 모성 사망률 증가 등의 문제점이 발생한다. 고위험 산모는 꾸준히 늘고 있다”며 “이들이 안전하게 분만할 수 있는 의료환경을 만들기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 법적, 제도적, 사회적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발생에 대한 의료분쟁 개선과 무과실 보상제도와 같은 적극적인 개입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최대집 회장 “의료사고특례법 제정, 반드시 이뤄내겠다”

의료개혁을 요구하며 2주간 단식투쟁까지 감행한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은 의료사고특례법 제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최 회장은 “선한 의도로 시행되는 모든 의료행위에서 불가피하게 나쁜 결과가 나타났다고 해서 의사를 구속한다면 모든 의사가 전과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위험한 진료를 기피하게 될 것”이라며 “저출산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현실에서 산부인과의 분만포기 현상은 막기 힘들다”고 우려했다.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은 이날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궐기대회에 참석해 '의료사고특례법' 제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이어 “의료개혁쟁취투쟁위원회가 추진하는 6대 의료개혁 과제에 ‘의료사고특례법 제정’도 포함돼 있다. 이번과 같은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뤄내겠다”며 “의사들이 풍찬노숙하면서 거리로 나와 규탄대회를 열지 않아도 되도록 의료사고특례법을 제정해 달라. 그렇지 않으면 한국 의료는 정상화되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의협 대의원회 이철호 의장은 “예측 불가능한 나쁜 결과가 나온다고 의사를 구속한다면 진료를 하지 말라는 것 아니냐”며 “안전한 의료환경을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 마련에 힘을 보태달라”고 했다.

국회의원 중 유일하게 궐기대회에 참석한 무소속 이언주 의원은 “집에 가지 못하고 밤낮 수술해야 하는 외과 분야 의료인이 최선을 다해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인지를 봐야 한다”며 “아이 낳을 곳이 없어서 서울까지 올라오는 상황이 되지는 않을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 홍옥녀 회장은 “산부인과 의사들이 처한 어려움에 공감을 표하고 고통을 함께 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며 법원 판결에 유감을 표했다.

홍 회장은 “이번 판결에는 간호조무사도 포함돼 있다. 의사와 함께 의료현장에서 묵묵히 소임을 다하고 있는 간호조무사의 허탈과 상실감이 클 수밖에 없다”며 “향후 상급심에서 합리적인 판결이 나올 수 있도록 간호조무사협회도 관심을 갖고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날 결의문을 통해 의료사고특례법 제정과 불가항력 의료사고 국가책임제 시행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분만을 집도한다는 이유로 과실이 없는데도 배상 책임을 지라는 정부의 비뚤어진 인식은 산부인과 의사들의 자긍심을 무참히 짓밟는 폭력이며 분만 인프라 붕괴를 자초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의사 전과자를 양산하는 형사입건을 당장 중단하고 진료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특례를 법으로 정하는 의료사고특례법을 조속히 제정하라”고 했다.

이들은 “증거수집과 형사고소, 구속 수단으로 전락한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즉각 해체하라”고도 했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