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 지적 후 ‘의료인 업무범위 논의 협의체’ 만들어졌지만 PA논의는 배제
협의체 참여 각 단체, 업무범위 놓고 '동상이몽'…논의 제대로 이뤄질지 의문

의료현장에 PA(Physician Assistant)로 내몰린 간호사들이 절규하고 있다. 의료기관들이 인력부족 문제를 PA로 풀고 있는 동안 이들은 ‘불법 보조인력’으로 낙인찍힌 채 스스로를 ‘유령간호사’로 부르고 있다.

정부에서도 PA 문제 해결을 위해 손을 걷었다.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이 국정감사에서 PA 문제 해결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만들어진 ‘의료인 업무범위 논의 협의체’가 지난 달 첫 회의를 연 것.

하지만 이 협의체에서 PA 문제를 다루지 않기로 최종 협의함에 따라 실질적으로 무산된 것이나 다름없게 됐다. 복지부가 ‘의료법 상 존재하지 않는 직역’이라는 이유로 협의체에서 PA 문제를 논의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협의체는 우선 의사와 간호사 간 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업무행위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계획이다. 법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의사와 간호사 업무를 조정할 방침이다.

그러나 문제는 협의체에 참여하는 구성원들 간 이해관계가 크다는 데 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의료인 업무범위 논의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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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PA가 사라졌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국립대병원들은 곤혹을 치뤘다. 수술 보조 인력으로 PA가 참여한 사실이 공식적으로 문제제기 됐기 때문이다. '수술 보조 인력의 불법성 문제'로 지적 받은 국립대병원들은 국정감사 지적에 따른 개선방안을 내놨다. 이들은 PA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국정감사결과 시정에 대한 조치결과보고서에 따르면 국정감사에서 PA 문제를 불러온 강원대병원은 ‘수술실 근무환경 개선 TF’를 구성해 대책과 개선방안 마련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강원대병원은 PA 대신 ‘진료지원간호사’로 명칭을 변경해 현행법에 맞게 운영하고 있다. 또한 향후 협의체 논의에 따라 수술 중 의사와 간호사의 업무범위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내려지면 해당 의료진에게 이에 대한 충분한 교육을 실시해 불법 진료를 하지 않겠다는 복안이다.

충남대병원은 호스피탈리스트로 인력부족 문제 해결에 나섰지만, 한계가 있다고 봤다. 인력부족 문제를 풀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 사실상 없다는 판단에서다. 충남대병원은 정부 차원의 개선 대책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충남대병원은 ‘국정감사 지적에 대한 조치결과 및 계획’에서 “우선적으로 호스피탈리스트 모집 및 엽무 조정을 통해 적정 인력으로 운영하고 전공의 부족 인원 내에서만 배정하려는 원칙을 지키려 노력하고 있다”며 “국립대병원 차원에서 전공의 부족에 의해 파생되는 문제해결을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고자 교육부에 전공의법 관련 재정지원 및 전공의 모집제도 개선을 위한 건의문을 지난 3월 제출했으며 앞으로도 국립대병원 차원에서의 노력을 계속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병원 차원의 노력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운영 현실과 제도의 일치를 위해 관련법 개정 등 국가적 차원의 개선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고도 했다.

서울대병원은 의사의 엄격한 지휘·감독 하에 의료법상 간호사의 역할인 ‘진료의 보조’ 업무만 수행하도록 했으며, PA 문제를 풀기 위해 ‘전담간호사(가칭)’ 제도로 개편에 나선 상황이다.

하지만 PA들은 병원들의 이 같은 노력이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한 대형병원은 국정감사에 PA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자 PA라는 명칭 대신 '데이 간호사‘로 바꿔 부르기로 했다.

이 병원 PA들은 “PA를 고용한 병원도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으니 이름을 바꿨지만 업무는 그대로 남았다”며 “부르는 이름만 바뀌었을 뿐 유령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게 가장 어렵다. 우리는 병원이 철저히 숨겨야 하는 존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의협, PA 제도화 절대 불가

대한의사협회 의료기관 내 무면허의료행위 근절을 위한 특별위원회는 PA 제도화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지난 2014년 의정합의를 통해 의협과 대한전공의협의회의 사전 합의 없이 PA 합법화를 재추진하지 않기로 명문화 한 바 있다.

무면허의료행위 근절 특별위원회 관계자는 “PA는 우리나라에서 불법이다. 존재하지 않는 제도인데 이를 근절해야 할지 논의하겠다는 이야기는 자칫 잘못하면 합법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어 처음부터는 논의하지 않기로 협의했다”고 말했다.

특별위원회 관계자는 “의료인 업무범위 협의체라기보다는 간호사 업무범위 논의가 맞다”며 “의료법상 의사는 모든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데 현재 합법적인 선에서 간호사가 할 수 있는 게 정리돼 있지 않으니 유권해석을 내리는 보건복지부가 간호사의 업무범위에 대해 논의해보자고 마련한 자리”라고 말했다.

법적으로도 반드시 의사가 해야 하는 의료행위지만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PA에게 암묵적으로 위임된 업무에 대해서는 협의체 내에서 논의가 분명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법원 판례나 복지부 유권해석에는 정맥혈 체혈을 간호사가 통상적으로 해도 된다고 인정돼 있다”며 “어느 정도는 동의하지만 추가적으로 간호사에게 의사의 업무를 위임하는 것은 매우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정말 의사가 해야 하는 일임에도 간호사에게 넘어가는 업무에 대해서는 첨예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병협, 인력부족 ‘어떻게’ 해결하나

대한병원협회는 오히려 PA를 간호사뿐만 아니라 더 넓은 직종으로 넓혀 나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병원협회 의료인력 비상대책위원회 정영호 위원장은 “전공의법 이후 절대적으로 일할 시간이 부족하다. 전공의들이 일을 못 하니 보조 인력이라도 환자를 돌봐야 병원이 돌아가지 않겠냐”며 “당장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정 위원장은 “환자들에게 제공해야 할 서비스 총량 대비 의사 수가 너무 부족하다”며 “교수들도 당직을 서는데 연로한 교수들이 당직 몇 번 서면 체력소진이 너무 심하다. 결국 피해를 보는 건 환자”라고 말했다.

병원들은 진료 보조 인력을 간호사로 한정하지 않고 의사의 감독 하에 보조 행위를 한다면 의료기사, 간호조무사 등으로 넓혀가도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현재 의료법 상으로 명시된 보건의료 직능 간 업무범위를 유연하게 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 위원장은 “병원 인력 부족 현상을 그대로 인정하고 현실을 봐야 한다”며 “진료 보조 인력이 꼭 간호사여야만 할 필요는 없다. 의료기사라고 의사를 보조하지 못 하라는 법은 없지 않나. 의사 감독 하에 의료기사나 간호조무사 등도 보조 인력으로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의사 수가 늘어나는 것보다 보건의료 직능 간 높게 쳐진 울타리를 유연하게 할 필요가 있다”면서 “의사의 지시 감독 하에 진료 보조 업무를 폭 넓게 인정해 준다면 PA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간협, 협의체 껍데기에 불과해

대한간호협회는 협의체에 대해 회의적으로 평가했다. 국정감사에서 복지부 장관의 말 한 마디에 만들어진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는 것.

때문에 협의체에 참여해 의사와 간호사 업무를 조정한 다음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간협 관계자는 “PA는 병원마다 모두 다르게 부른다. 병원에서도 (진료부와 간호부 사이) 끼인 존재로 간호사들도 싫어한다”며 “승진이라는 것도 없고 소속감도 없이 힘들다. 어떤 방향으로든 PA 문제가 해결돼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없는 제도이기 때문에 협의체에서 논의하는 게 맞지 않다고 협의했다. (PA 문제는 논의하지 않기로) 결국 다 짜놓고 하는 거 아니겠나”고 말했다.

PA 문제 해법? 결국 ‘의료전달체계’ 개선

PA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인력부족 문제를 먼저 풀어야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대형병원으로 몰리는 환자쏠림에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즉, 의료전달체계를 손 봐야 PA 문제 해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이승우 회장은 대형병원에서 PA를 고용하게 된 데는 환자 쏠림현상이 원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의료전달체계 개선으로 환자가 대형병원으로 집중되지 않도록 제어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외과 전문의가 매년 배출되는데 수술 한 번을 못 해보고 미용 병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그들이 대형병원에서 외과 의사로 일하지 못하는 이유는 병원이 고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의사들을 고용하면 되지만 의사 한 명 고용하는 것보다 PA를 2~3명 고용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모든 게 수가와 연결된다. 저수가 체제이기 때문에 적은 인력을 고용해 많은 이익을 만들고 싶은 게 병원 입장일 것”이라며 “현재 병원 운영현실이 어렵다고 PA를 합법화 하면 수 년 후에는 더 큰 문제를 양상할 수 있다. 병원들이 정부에 의사인력 고용 시 수련비용 지원을 요구해 선순환 할 수 있는 구조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젊은 의사인 전공의 입장에서 간호사에게 술기를 시키고 전공의들에게 초음파 기계를 나르라고 하는 현실을 두고 볼 수 없다”며 “대형병원에서 왜 의사인력이 부족해졌는지, 경증환자들이 대형병원으로 몰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려해 궁극적으로는 의료전달체계 개선과 함께 풀어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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