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병원의 미래를 그리다…왓슨 효용성 논란에 “도깨비 방망이 아니다” 일축

국내 의료기관 사이에 불던 ‘왓슨(Watson) 열풍’이 시들해졌다. 일부에서는 IBM 인공지능 왓슨의 효용성이 떨어진다며 회의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건양대병원의 평가는 다르다.

건양대병원은 왓슨으로 첨단 정밀의료를 임상현장에 구현하는 게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최근 왓슨을 추가 도입한 이유이기도 하다. 최신, 최상의 항암치료법을 제시하는 국내 최고 병원이 되는 게 건양대병원의 목표다.

3주 걸리던 유전 변이 분석, 왓슨 포 지노믹스는 3분 만에 해결

건양대병원은 지난달 유전적 맞춤형 진료를 제공하는 ‘왓슨 포 지노믹스(Watson for Genomics)’를 도입했다. 지난 2017년 4월 ‘왓슨 포 온콜로지(Watson for Oncology)’를 도입한 지 2년여 만이다.

현재 왓슨 포 지노믹스를 사용하고 있는 의료기관은 한림대성심병원과 가천대길병원, 건양대병원이다. 건양대병원은 중부권 소재 의료기관 중 왓슨 포 온콜로지와 지노믹스를 모두 도입한 최초 기관이기도 하다.

지난해 2월부터 ‘차세대 염기서열분석(Next Generation Sequencing, NGS)’을 시작한 건양대병원은 왓슨 포 지노믹스 추가 도입으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고 했다.

기존에는 NGS 검사로 얻은 데이터를 분석하는데 2주 정도 걸렸지만 왓슨 포 지노믹스는 단 2~3분 만에 유전적 변이 분석 결과를 내놓는다. 그것도 최신 학술 문헌, 약물 정도 등 방대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이며 확인된 돌연변이의 99%를 찾아낸다.

건양대병원 윤대성 암센터장은 “의사들이 모여서 NGS 검사 결과를 분석하고 치료법을 찾는데 2~3주는 걸린다. 하지만 왓슨 포 지노믹스는 2~3분 만에 유전 변이를 분석하고 최신, 최적의 치료법을 찾아내 알려준다”며 “의사들이 환자를 치료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혈액종양내과 최종권 교수는 “왓슨 포 온콜로지를 도입한 병원이나 그렇지 않은 병원이나 비슷한 수준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그래서 왓슨 포 온콜로지가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나왔다”며 “하지만 왓슨 포 지노믹스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망망대해에서 정확히 목표지를 찾아주는 네이게이션 역할을 한다. 종양내과 의사에게 큰 힘이 된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왓슨 포 지노믹스는 이런 돌연변이가 있어서 암이 생겼고 이걸 치료할 수 있는, 지구상에 있는 최신 치료법은 이런 게 있다고 제시한다”고 했다.

건양대병원 암센터에 마련된 '인공지능 암 진료실'에서 IBM 왓슨을 이용해 협진하는 모습(사진제공: 건양대병원).

현지화된 ‘왓슨’…한국 상황에 맞게 업그레이드

왓슨 포 온콜로지도 사용자 중심으로 업그레이드 됐다.

환자 상태에 따라 문헌과 최신 연구논문 등을 분석해 추천하는 치료법을 알려주고 근거자료인 논문 등은 첨부하는 형태였다. 방대한 자료를 분석해 정리한 자료지만 그 자체도 A4 100장에 가까울 정도로 양이 많았다.

하지만 업그레이드 된 왓슨은 이를 시각화해서 의료진이 한 눈에 최신 치료 경향을 파악할 수 있도록 리포트 한 장으로 정리해서 보여준다. 기존처럼 근거자료인 논문 등도 함께 볼 수 있다.

한국 의료 환경에 맞게 현지화도 됐다.

왓슨 포 온콜로지가 분석하는 자료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급여기준이 추가됐다. 왓슨이 최신 치료법을 추천해도 급여기준에 없으면 환자에게 처방하지 못하는 한계를 반영한 것이다. 한국 의료기관에 도입된 왓슨은 지역 지침(Regional Guideline)으로 ‘HIRA(Health Insurance Review and Assessment Service)’를 추가해 관련된 급여기준 등을 한글로 보여준다.

‘강력추천(Recommended)’과 ‘추천(For Consideration)’, ‘비추천(Not Recommended)’을 색깔로 구분해 보여주던 방식도 바뀌었다.

기존에는 강력 추천은 초록색, 추천은 주황색, 비추천은 분홍색으로 표시됐다. 하지만 왓슨이 분석한 결과를 보는 환자는 초록색을 ‘안전한 치료법’으로, 붉은 색 계열은 ‘위험한 치료법’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게 임상 현장의 지적이었다. 더욱이 초록색으로 표시되는 강력 추천 치료법을 심평원 급여기준 제한 등으로 인해 실제로 적용하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하기도 했다.

이에 IBM은 색깔 구분을 없애고 강력추천, 추천, 비추천으로만 표시하기로 했다.

“환자에게 최상의 치료법 선택할 수 있는 기회 주고 싶다”

왓슨에 대한 건양대병원의 만족도도 올라갔다. 인공지능을 발판으로 ‘지방 대학병원’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강해졌다. 암 환자들이 몰리는 서울 대형병원들은 오히려 왓슨을 통한 최신 진료를 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건양대병원 윤대성 암센터장은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왓슨 포 온콜로지에 이어 지노믹스까지 추가 도입한 이유와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사진제공: 건양대병원).

윤대성 센터장은 “빅5병원으로 불리는 서울 대형병원에는 환자뿐만 아니라 의료 인력도 쏠린다. 지방 대학병원과 인적 자원에서도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왓슨으로 이런 격차를 줄일 수 있다. 2~3주 걸리던 유전 변이 분석을 왓슨 포 지노믹스가 2~3분 만에 마치고 결과를 내놓으면 의사들은 더 많은 시간을 환자들에게 쓸 수 있다. 효율성과 정확성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임상 현장에서 AI를 활용하는 건 시대적 흐름이라고 했다. 건양대병원이 AI 분야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이유다.

윤 센터장은 “의사 혼자 하는 시대는 지났다. AI와 협력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며 “그렇다고 AI를 도깨비 방망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의사가 실수하지 않고 정확하게 진료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윤 센터장은 “든든한 안전망과 안전장치를 구축해 실수와 오류가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는 게 건양대병원의 정책이다. 환자 안전과 최신 치료 경향을 유지하기 위한 투자”라며 “현재 왓슨을 이용한 진료를 수가를 받지 못한다. 수익을 내기는커녕 병원이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우리는 환자가 최상의 치료법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의 과감한 투자는 생존전략이기도 하다. 치열한 경쟁에서 병원이 살아남으려면 의료인이 실력을 키울 수 있도록 투자하고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도 했다.

최종권 교수는 “옛날에는 농사를 지을 때 경험이 가장 많은 할아버지의 말이 가장 옳았다. 하지만 요즘은 농약을 뿌릴 때도 드론을 날려 정확한 농도를 파악해 골고루 뿌린다”며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옛날 방식만 고수해서는 안된다. 업데이트 된 최신 정보를 빨리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