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지난 4월 우리나라 의학교육계는 16년 만에 재개된 세계의학교육연합회(WFME) 학술대회를 서울에서 성공적으로 개최함으로써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번 서울 국제 학술대회는 그야말로 오랜 공백을 깨고 내용면에서도 알차고 짜임새 있는 대회였다는 호평과 함께, 우리나라 의학교육계의 잠재력을 마음껏 보여준 계기가 되었다고 WFME 집행진은 물론 대회 관계자들 역시 한 결 같이 입을 모았다. 대회에 임하면서 학술대회의 성공과 더불어 우리나라 의학교육이 한층 더 도약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은 모두가 하나였다. 이제 의학교육에도 국제화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때가 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특히 이번 학술대회에는 우리나라 의과대학생들도 상당수 초빙됐다. 거의 무료등록으로 부담 없이 개방했기 때문이다.

지난 2003년에 개최된 세계의학교육연합회 학술대회에서는 세계의과대학생연합회 학생들이 참여하여 다양한 형태의 지원 활동을 벌인 바 있다. 우리나라는 당시만 해도 경제적인 여유와 국제화에 대한 인식의 결여로 단 한명의 학생도 참여시키지 못한 아쉬움을 감내해야 했다. 그러나 세상은 바뀌고 지속적인 경제 성장으로 마침내 2012년에 우리나라 의과대학생들도 당당히 세계의과대학생연합회의 회원국 자격으로 참가하게 됐다.

국제화 물결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의협 집행부 등 의료계도 글로벌 역량 높여야

3차 산업혁명 시기 후반부에 등장하기 시작한 소위 ‘국제화’에 대한 세계적 기류 속에서 우리 의학교육계의 국제화 문제는 아직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해 갓 출범한 40대 집행부를 대표하여 1차적으로 우리나라와 지리적으로 비교적 가까운 태국과 인도네시아의사회와 의사면허기구를 접촉하여 현지 방문을 통한 견학을 기획했으며, 이어서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의 면허기구, 독일의 면허기구와 의료감정원,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면허기구와 캐나다 의학회, 미국 평생교육인증원 그리고 미국의사회 대의원총회를 방문하여 국제화에 대한 감각을 익혔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로서 사회적 관계 속에 성장하듯이 기관도 기관 간의 교류를 통해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다. 각 나라에 하나 밖에 없는 유일한 의사협회는 다른 나라의 의사협회와 돈독한 관계를 갖도록 국제 교류에 힘쓰고, 국제적 감각을 배양하고 키워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해외 단기연수를 통해 협회의 임원들이 느꼈듯이 우리 협회가 갖고 있는 국제화에 대한 역량은 아직 보충하고 개선해야할 점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협회의 국제화에 대해 역량을 꾸준히 높여나가야 하는 것은 현 집행부 뿐 만 아니라 미래의 집행부가 짊어지고 나가야 할 중요한 숙제 중 하나일 것이다. 국제화를 위해 많은 의사관련 단체에 관한 탐사가 필요하다면 직접방문 또는 이러한 전문직 내에서의 우리의 자격과 신분, 교육 등을 다루는 모임에 협회 임원 또는 협회 회원들에 대한 참가 독려와 지원을 해야한다. 그 중 차세대에 대한 지원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WMA, 미래의사도 관심 대상…‘젊은 의사 글로벌 네트워크’ 통해 전문가 식견 확장

현재 세계의사회는 의사나 미래의 ‘예비의사’의 연령에 따른 단체적 구분을 하고 있는데 세계의과대학생연합회, Junior Doctor Network(이하 JDN), 그리고 의사회 등 3단계로 구별되어 있다. 세계의사회나 또는 이와 관련된 세계의학교육연합회 등에서 보여주는 세계의과대학생, JDN이 보여주는 매우 성숙하고 수준 높은 공중보건, 의학교육에 대한 식견 등은 우리나라 의사들이 빨리 도달해야 할 목표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나라도 젊은 의사들에 대한 체계적이고 짜임새 있는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의 의과대학, 학회 등 어떤 기구에서도 젊은 의사들의 국제화를 위한 지원 기구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의과대학생들의 연합체 성격의 지원모임에서는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참여인원도 적고 자비를 통해 참가하는 반면, 대부분의 다른 국가에서 참여하는 나라들은 모두 기관이나 다른 공적인 기금에 의한 지원으로 참가한다. JDN도 마찬가지고 그 나라에서 소속한 의사회, JDN이 소속한 기관에서 이들의 국제화를 위해 아낌없이 후원하고 있다. 현재 젊은 의사라고 통칭 할 수 있는 집단은 의과대학학생협회, 공중보건의사회, 전공의협의회 등 3개 단체에 소속되어 곧 의사가 될 사람들과 이미 의사가 되어 바로 의업(醫業)에 나설 젊은 연령의 의사로 구성되어 있다. 최근에는 이들 세 단체가 중심이 되어 ‘젊은의사포럼’을 결성, 점차 활동의 폭을 넓히고 있어 향후 이들에 대한 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다.

한국도 ‘젊은의사포럼’ 결성 자발적 활동 폭 넓혀…외연 확장으로 국제 안목 키워야

세계의학교육연합회에 실행위원으로 참가하고 있는 세계의과대학생연합회 회장의 발언을 듣고 나서 솔직히 우리나라 복지부 고위관료 보다 더 넓은 식견과 보건 정책에 정통하다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회장직의 책임 완수를 위해 학교 수업을 1년 정도 쉬면서 역할을 수행하는 학생도 있고, 학업과 병행하는 멀티 플레이어형 학생도 있다. 이들은 국제적으로 매우 잘 조직된 연결망을 통하여 보건의료에 관한 국제적인 정보망 형성과 자신들의 역량을 키우나가고 있다.

이에 반하여 이제 세계의과대학생 연합회에 참가한 지 몇 년 안 되는 우리나라의 젊은 의사들에게 아직은 스스로 국제화를 위한 해외 탐사 또는 해외기구 벤치마킹, 해외의 각종 연구토론회에 참여할 재원과 역량이 충분치 않아 보인다. ‘젊은의사포럼’에 대해 대한의사협회가 직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들이 국제적으로 개최되는 교육, 의료규제, 의사단체 모임 등에 참가하도록 하여 국제적인 견문을 넓히고 우리나라의 대표성을 강화한다면 장차 이들이 의료계 리더로서 의사협회의 위상을 끌어 올리는데 좋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젊은 의사들에게 참여를 지원할 수 있는 모임은 자신들의 모임인 세계의과대학생연합회, 지역별 의과대학생연합회, JDN, 세계의사회, 세계의학교육연합회 관련 활동, 세계보건기구와의 연계 활동, 기타 저명한 세계의학교육 학술대회 등으로, 예를 들자면 유럽연합의학교육 학술대회와 미국 의과대학협회 학술대회 등을 꼽을 수 있다.

개인과 기관 모두 국제교류 확장해야 ‘우물 안 개구리 식견’서 벗어날 수 있어

젊은 의사들에게 국제화 감각을 연마하도록 지원해야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의사협회 임원들이 단기 해외연수를 통하여 느낀 점을 연령적으로 훨씬 더 앞당겨야 하는 것이다. 현재나 과거의 세대에서 보여주는 의사단체의 국제화 결여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의사의 신분과 경제적 보상의 획득에서 예산의 지원을 받는 관변단체나 관료단체보다 여러 가지 보건의료 사안에 대한 시대적 동시성이 뒤떨어지기 때문이다. 의과대학과 졸업 후 교육, 그리고 개원이나 취업에서 환자진료에 대부분의 시간이 투입될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 의사직업의 특성상 국제화에 대한 시간 투자 여력조차도 힘들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인지는 몰라도 일부 회원은 체력적으로도 그렇고, 상대국의 일정 조율도 쉽지 않은 말 그대로 소화해내기 힘든 빡빡하게 기획된 일정의 국제단기연수에 대해 ‘호화해외유람’으로 폄훼해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21세기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의사직군에 있다는 것이 엄연한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세계의학교육연합회 실행위원회에 참가하는 의과대학생이나 JDN대표의 국제적 안목이 유난히 높아 보이는 것은 상대적으로 우리나라 젊은 의사집단의 국제화 수준이 아직 초보 상태이기 때문이다. 의과대학에서 별도로 리더십을 학문적으로 교육하는 과정도 있는데, 실제로 가장 좋은 리더십 교육은 실제로 리더십을 갖는 조직을 만들어 능동적으로 학교의 주요 사안에 직접 참가하도록 하는 것이다.

자치권 부여 등 해외 선진 의과대학의 끊임없는 혁신 우리도 받아들여야

우리나라 의학교육의 문제점 중 하나는 의과대학생에 대한 적절한 자주결정권이나 학생단체에 대한 제한된 권력을 부여하지 못한다는데 있다. 유난히 수직적 인간관계의 사회에서 학생의 정당하고 일리 있는 제안들이 전달되지 못하거나 무시당하고 있다. 물론 연령적으로 성숙하지 못하여 일부 반교육적 요구도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학생들의 자치권이나 자주결정권을 부여하지 못한다면 결국 다른 과정 보다 긴 의과대학을 졸업하여도 인간적인 성숙도나 사회적 판단력은 성숙하지 못할 것이다.

2년 전 세계 교육우수의과대학 선발 심사를 한 경험이 있다. 이미 우수의대 선정에 신청한 대학은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독일의 의과대학이었다. 우수대학으로 가장 핵심이 되었던 내용은 의학교육의 혁신을 의과대학생이 주도적으로 참가하여 이루어 냈다는 놀라운 사실이었다.

전통적으로 의학교육에 대한 자부심과 평판도가 높은 의과대학이어서 오랜 기간 동안 내려온 고유의 의학교육 방식을 고수하고 있던 차에 학교 측은 의과대학생들이 의학교육 개혁의 필요성과 이에 대한 내적인 욕구도 매우 강하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학생회를 중심으로 학교와의 협력구조 속에서 전통적인 강의중심 의학교육에서 현시대의 의학교육 원리를 반영한 혁신적 의학교육 과정으로 개편하고 정착하여 성공한 사례였다.

의과대학생은 의과대학의 교육위원회에 정식 투표권을 갖고 위원으로 참가하고 교육과 평가 등 중요한 학사일정에 반드시 학생대표가 참가한다. 이런 제도를 의과대학은 규정으로 정하여 지원하고 있다. 일부 놀라운 규정 중 하나는 학생의 평가가 교수의 승진과정에 반영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학생부학장의 임용에 학생의 거부권이 작용할 수 있어 실제로 학생부학장의 임용이 학생들에 의해 거절당하기까지 했다. 그 이유는, 평소에 학생에 대한 관심이 없고 활동 경력도 없는 교수에 대한 보직 임용을 학생의 힘으로 좌절시킨 것이다. 우리에게 과감하고 문화적으로 수용 불가능한 듯 보이는 학생에 대한 최대의 존중과 권력 분할로 이 대학은 유럽의학교육협회가 수여하는 영예의 ‘ASPIRE 우수교육대학’으로 선정됐다.

의협도 젊은 의사 국제 역량 개발에 관심 둬야 달라진 미래 보장받을 수 있어

대한의사협회는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와 회장단대 회장단의 연석회의를 개최한 바 있다. 2012년 이후 결성되고 국제적 활동을 시작해서 그런지 과거의 의과대학생 단체와는 매우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자체 조직도 잘 갖추었고 회의에 임하는 임원진의 모습도 매우 진지했고, 나름 전문성도 갖추어져 있어 보였다.

이 자리에서 학생대표는 세계의과대학생연합회가 매년 2회의 대의원총회, 그리고 1회의 지역회의를 개최한다고 설명한 후, 연 3회 회의에 학생대표의 파견이 요구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대한의사협회의 적극적인 지원과 도움을 정중하게 요청했다. 학생대표들은 회장단 회의를 통해 학생단체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소개하고 홍보했다. 일종의 체계적이며 짜임새 있는 작은 의사회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내심 흐뭇함을 느낄 수 있었다. 현재까지의 조직 운영 방식은 일부 자발적으로 납부하는 회비에 크게 의존한다는 부연 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학생들이 요구하는 의학교육에 대한 개선 사항은 의사실기시험이 갖는 시간적 특성으로 임상실습이 파행적으로 운용되는 것에 대한 지적과 의사시험에 대한 부족한 국고지원이었다. 의과대학생으로서 당연히 요청할 수 있어야 하고, 정당하게 요청할 만한 사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대한의사협회가 의과대학생을 위해 별도의 사업계획과 예산을 편성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이제는 어떻게 하면 젊어서부터 세상에 눈을 뜨고, 의료에 대한 가치 수호와 의사로서의 정당한 직업적 대우와 권리 획득을 위한 국제적인 상황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안내하고 지도해야 한다. 전문직이 갖는 위치는 전문직이 스스로 찾아 형성해 나가는 것이고 정부와 사회에 대한 시각도 익혀 이들과 적절한 균형 속에서 긴장을 유지해 나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젊은 의사들의 높고 넓은 시야와 역량으로 잘 무장된 미래의 의사협회를 상상해 본다. 이들에게 우리나라 의사의 집단적 전문직업성 형성의 미래가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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