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불법 보조인력으로 낙인찍힌 PA들…“법 테두리 안에서 일 하게 해 달라”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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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강원대병원에서 집도의 없이 PA(Physician Assistant)가 환자 수술부위를 봉합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며 수면 위로 떠오른 PA 문제. 국정감사에서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이 "전문간호사제도를 통해 PA를 제도화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답변하며 해결될 기미를 보였지만 지지부진하다.

더욱이 PA 제도화를 비롯한 의료인 업무범위 조정을 논의할 ‘의료인 업무범위 논의 협의체’가 지난달 첫 회의를 개최했지만 협의체에서도 PA 문제를 다루지 않기로 함에 따라 현재로서는 PA에 대한 논의는 무산된 것이나 다름 없다.

복지부는 협의체에서 PA에 대한 논의가 빠진 이유에 대해 ‘의료법 상 존재하지 않는 직역’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그러는 사이 의료기관들은 인력부족 문제를 PA로 풀고 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병원 42곳을 대상으로 PA 고용 여부를 조사한 결과, PA를 운용하는 병원은 29곳(69.04%),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는 PA간호사수도 총 971명이다.

PA들은 수술, 환부 봉합, 시술, 진단서 작성, 투약 처치, 처방, 수술 동의서 등 의사의 업무를 대행하고 있다. 해결방안 없이 문제로만 지적되고 있는 사이 ‘불법 보조인력’으로 낙인찍혀 스스로를 ‘유령간호사’로 부르고 있었다.

최근 기자가 만난 PA들도 스스로를 ‘투명인간’, ‘유령’이라고 표현했다. 이들은 처음 기자에게 이름은 물론 경력과 소속을 밝히는 것도 꺼려했다. 특정화되기 쉬운 업무 특성상 인터뷰에 응한 사실이 병원 내 알려질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한 목소리로 매일 ‘자괴감’이 든다고 했다. 의사도, 간호사도 아닌 유령 같은 존재로 직업 정체성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외과 수술실에서 보조 인력으로 일하고 있는 PA 4명, 병동에서 근무하는 PA 2명을 만나 이들이 겪고 있는 ‘진짜 문제’는 무엇인지 들어봤다.

- 수술실이나 병동에서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소개해 달라.

병동 PA 1 정확하게 명시된 업무규정이 없다보니 현장에서 처리하지 못하는 모든 일을 PA가 맡고 있다. 처음에는 연구 간호사들이 해야 하는 교수들의 연구 업무도 PA가 맡아서 했고, 환자로부터 동의서를 받는 일도 했다.

전공의가 동의서 받는 일이 힘들다고 토로하면 그 일이 PA에게 모두 넘어오기도 한다. 간혹 PA가 언론에 문제로 드러나면 쉬쉬하면서도 업무를 줄여주진 않더라.

병동 PA 2 의사들 업무를 PA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전공의나 인턴이 해야 할 일인데 바빠서 못하는 일을 PA가 다 한다. 또 학회 참석하는 교수를 위한 비행기 표 예약은 물론 개인 블로그 홍보 역할도 맡아 하던 PA도 있었다. 심지어 신경외과에서는 중환자실 환자까지 보고 있다고 들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일을 해야 하는 것인지 모른 채 업무를 다 떠안고 있다. 더욱이 교수와의 관계가 틀어지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관계 유지 차원에서 문제제기 하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술실 PA 3 수술실에서는 환자가 도착하면 입실부터 환자 확인, 수술 부위 소독 등 수술 준비를 한다. 복부 수술을 하고 난 후 중요한 근막 봉합 등은 의사들이 하고 가장 표피인 피부 봉합은 PA들이 하고 있다. 미화할 수도 숨길 수도 없는 사실이다. 줄이려고 하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수술이 다른 방에서 동시에 진행되거나 많이 밀려 있을 땐 어쩔 수 없다.

수술실 PA 4 우리 방은 PA에게 일을 많이 시키는 편이다. 오퍼레이터까지 시킨다. 협진 오면 회신 넣는 일도 PA가 해야 한다. 5년 이상 경력이 되다보니 업무 숙련도 면에서 전공의보다 잘 한다는 칭찬을 듣기도 한다. 심지어 전공의에게 알려주라고 하는 교수들도 있다. 교수에게는 인정받지만 아무 의미 없다. 일을 할 때마다 자괴감이 느껴진다.

"PA 문제,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의료계의 어두운 단면"

- 자괴감이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수술실 PA 4 환자들은 내가 의사인 줄 안다. 환자들에게 죄송하고 의사도 간호사도 아닌 직업 정체성 혼란이 일 할 때마다 든다. 의사들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하면서 간호사로서 커리어는 전혀 쌓지 못하고 있다. 병원에서는 어차피 잘 해야 간호사다. 그냥 책임만 커지는 것 뿐이다. 누가 나를 간호사로 인정해 주겠나. 일이 싫지만 그만 둬도 이직할 곳이 없어서 그만 두지도 못한다.

수술실 PA 3 매일 불안하다. 테크니션으로 발전하더라도 결국 문제가 발생할 때 책임은 누가 질 거냐는 거다. PA 채용공고나 근로계약서, 직무 기술서 등에도 책임 문제 관련한 내용은 전혀 없다.

수술실 PA 4 아직까지 책임 문제가 발생하진 않았지만 의료행위를 하다보면 합병증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만약 이 문제로 환자가 소송을 걸고 깊게 파헤친다면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분위기다. 아무도 이런 문제에 신경 쓰지 않는다. 교수도 전공의도. 가끔은 “(시술) 하는 거 많이 봤잖아. 네가 해”라고 할 때도 있다. 요즘은 못 하겠다고 이야기라도 할 수 있지, 초반에는 눈치 보느라 그냥 할 수밖에 없었다.

수술실 PA 1 초반에 정말 힘들었다. 내가 한 일 때문에 밤에 잠도 못 잤다. 내가 환자에게 해를 입히지 않았을까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매일 출근하면 환자 상태부터 뒤져봤다. 지금은 처음보다 덜 하지만 정말이지 평생 직업은 아니다.

- 봉합이나 시술 등은 간호대학 커리큘럼에 있나. 의료현장 투입 전, 별도 교육은 시행하고 있나.

수술실 PA 3 간호대학에서도 병원에 입사해서도 관련 교육은 전혀 없었다. 현장에 바로 투입 돼 “이렇게 해”하고 보여주고 끝이다. 그냥 알아서 공부했다. 이론부터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았다면 모르겠지만 현장에서 테크닉 적인 방법만 배웠다. 이렇게 방법만 배우면 일반인도 할 수 있을 거다.

수술실 PA 2 간호대 다닐 때 간호학 책만 갖고 공부하다가 이제는 의학책을 갖고 공부하게 된 상황이 됐다. 업무를 하려면 의학책을 봐야만 알 수 있는 거다. 교육 커리큘럼도 없어 의사들에게 의학 교과서를 빌려 혈관의 구조 등 인체 구조에 대해 혼자 공부했다.

- 경력인정이 안 되는 이유가 있나.

병동 PA 2 연차가 오래될수록 업무 숙련도가 높아져야 하는데, 3년이나 8년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반복되는 업무이다 보니 업무 전문성으로 보자면 전문성이 떨어진다. 평생 일할 직업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비전이 없으니 기회가 되면 언제든지 나가고 싶다. 하루에 환자 15~20명씩 봐도 간호부나 진료부에서는 하루 이틀 환자 줄었다고 노는 사람 취급한다. 보람도 없고 회의감만 든다. 후배들에게도 좋은 자리 찾아 가라고 충고한다.

수술실 PA 1 직업인이라면 누구나 연차에 따른 직급이 주어져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다. 반복하고 숙달되면 누구보다 그 일을 잘 할 수는 있지만 거기서 끝이다. 후배 입장에서 선배를 볼 때 저 모습이 내 미래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괴롭다. 직업적 소명도 사라지고 내가 대체 뭐 하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의사도 간호사도 아닌 ‘남의 일’을 대신하는 사람밖에 안 되는 것 같다.

수술실 PA 2 소속감이 없는 것도 큰 문제다. 간호본부에서 PA들을 뽑았지만 우리를 멀리한다. 우리는 의사인건가, 간호사인건가. 의사가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간호사도 아니다.

병동 PA 1 간호본부에서는 대놓고 “너희가 의사인줄 아냐”고 말할 정도다. 동료 간호사들의 PA에 대한 인식도 문제지만 의사들의 ‘갑질’도 견디기 힘든 이유 중 하나다.

- 교수들의 ‘갑질’은 무슨 의미인가.

병동 PA 2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을’의 입장이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일 하는 것도 아니고 교수의 지시가 곧 법이다. 교수 본인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윽박지르고 심할 땐 물건을 집어 던지기도 한다. 업무 지시가 내려왔을 때 능력 밖의 일이라고 이야기해도 좋지 못한 소리만 듣는다. 어떤 교수는 “내가 하라고 했잖아. 왜 못해. 하라면 해야지”라며 강요한다. 그럴 때마다 너무 힘들다.

병동 PA 1 교수 지시를 어기거나 생각을 이야기하면 반발한다고 생각한다. 당장 인사 불이익이 생겨 아무 말도 못 하게 된다. 간호부에서조차 우리를 보호해 주지 않는다. 교수가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소위 ‘찍으면’ 간호부에서 해고 통지를 한다. 정규직이라고 한들 소용없다. 교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가야 한다. 몸이 힘든 건 참겠다. 교수들의 무시하는 말투, 태도는 정신적으로 참기 어렵다.

수술실 PA 2 병원이 PA 인력을 인정해 주지 않는 분위기도 힘들게 한다. 업무 강도가 세고, 혹은 능력 밖의 일을 많이 하면서 생각했던 건 그냥 동료들의 ‘인정’이었다. 그런 게 없다. 일할 맛이 안 난다. 유휴간호사가 많다고 하지만 인력을 소중히 생각하지 않는 이런 간호계 분위기에 돌아오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병동 PA 1 솔직히 PA로 있어보니 환자에게 위험을 줄 정도로 처방 내는 걸 본 적이 없다. 간호사가 대리 처방이 문제가 된다면 오더 내는 일을 일부 간호사에게 주든지 업무범위 조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력 4~5년차 대상으로 교육과정 만들어 양성화해야"

- 의료현장에 있는 PA로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수술실 PA 1 결국 PA를 채용하게 된 이유 자체가 의사가 부족해서 아닌가. 의사가 부족하니 대체 인력으로 간호사를 채용한 것이라고 본다.

수술실 PA 2 전공의법 시행 이후 전공의 선에서 처리되지 못한 업무가 PA들에게 넘어 왔다. 결국 PA들이 처리하지 못하는 일을 처리하기 위해 병원에서는 오후 5시 이후 처치 전담간호사를 더 채용하기로 했다. 인턴이나 전공의 퇴근 후 나머지 처치 일을 맡아 하게 될 거라고 들었다.

수술실 PA 4 인력 채용을 못 하는 이유가 돈 문제 아닌가. 전공의를 적게 뽑는 대신 임금 수준이 낮은 간호사 인력으로 대체하는 격이다. 차라리 PA를 제도화 시켜 법 테두리 안에서 일 할 수 있게 하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한병원협회도 대한간호협회도 PA 제도화에 힘써 줄 것 같지 않다.

수술실 PA 1 의사들도 간호사들도 PA 문제 만큼은 논의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인 것 같다. 국민이 보기에 PA가 봉합하는 일을 한다고 하면 불법인데 왜 하느냐 하겠지만, 실상 병원에서는 그렇지 않다. PA들이 수술 안 하는 과가 없을 정도로 정말 많이 일 하고 있고, 환자안전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열심히 일 한다. 그런데 이런 PA가 근절된다면 누가 대체하겠나. 전공의 수가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PA 문제는 사회에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의료계의 어두운 단면이다.

수술실 PA 3 의사도 PA가 있으면 편하고, 간호사도 PA가 있으면 편한 건 사실이다. 부정하지 못할 거다.

병동 PA 1 숙련된 PA라면 전공의 1년차 업무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간호경력 4~5년차 정도 인력을 대상으로 교육과정을 만들어 양성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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