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여행투석 시대’① 부산 범일연세내과의원을 찾은 ‘특별한 환자들’

3박 4일 일정으로 부산을 찾은 대만 '관광객' 20여명이 지난 6월 18일 범일연세내과의원을 찾았다. 이들 중 10명은 혈액투석을 받아야 하는 말기신부전 환자다.

차이슈리(Tsai Hsiu-Li) 씨는 여행을 좋아하는 대만 여성이다. 하지만 말기신부전으로 투석치료를 받기 시작하면서 여행이 힘들어졌다. 일주일에 3번은 병원을 찾아 투석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20년 동안 말기신부전을 앓으면서 그의 삶에서 여행의 즐거움이 사라졌다.

하지만 3년 전 ‘여행 투석’을 알면서 삶의 즐거움을 다시 찾았다. TDQ(Taiwan Association for Dialysis Patients' Quality of life, 台灣腎友生活品質促進協會)라는 사단법인을 통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안전하게 혈액투석을 받으며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됐다. 대만은 지난 2007년부터 말기신부전 환자를 위한 여행투석이 시작됐으며 현재는 보편화됐다. 대만 내 말기신부전 환자는 8만명 정도다.

여행투석을 알게 된 차이슈리 씨는 지난 3년 동안 일본 전역과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을 다녀왔다. 비행기로 4시간 이내에 갈 수 있는 나라들이다. 말기신부전 환자들은 심·뇌혈관질환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아 긴 비행시간은 몸에 무리를 줄 수 있다.

차이슈리 씨가 이번에는 부산을 찾았다. 한국은 지난해 서울에 이어 부산이 두 번째 여행지다. 물론 여행 일정에는 ‘혈액투석’도 포함돼 있다. 그는 “여행을 다니면서 혈액투석을 받기 어려워 복막투석을 했다. 그래서 해외여행은 힘들었다”며 “3년 전 ‘여행투석’이라는 걸 알았다. 현지에서 안전하게 혈액투석을 받을 수 있어서 안심하고 해외여행을 다닐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차이슈리 씨를 비롯해 대만에서 온 말기신부전 환자들은 지난 6월 18일 부산에 있는 범일연세내과의원을 찾았다. 이들은 3박 4일 일정으로 부산 여행을 온 ‘관광객’이면서 혈액투석을 받아야 하는 환자다. 그리고 이날 오후 일정은 ‘혈액투석’이었다.

범일연세내과의원 이동형 원장은 대만 말기신부전 환자들 도착하기 전 미리 받은 진료정보를 통해 개별 건강상태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왼쪽). 이어 대만 환자들이 투석치료를 받기 위해 병상에 눕자 통역사의 도움을 받아 의사소통을 하며 진료를 시작했다.

이들이 범일연세내과의원을 ‘선택’한 데는 TDQ와 연계된 WTDM(World Traverl Dialysis Medical Network)를 통해 투석치료의 질을 인정받은 곳이기 때문이다.

일본과 대만, 한국이 함께 하는 WTDM은 말기신부전 환자가 안전하게 투석치료를 받으면서 해외여행을 즐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2016년 설립된 단체다. 한국에서는 범일연세내과의원 이동형 원장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WTDM과 MOU를 맺고 여행투석 사업에 동참하고 있는 한국 의료기관은 범일연세내과의원을 비롯해 총 7곳이다.

범일연세내과의원은 인공신장실을 운영하며 혈액투석만 전문으로 하는 의료기관으로, 대한신장학회로부터 ‘우수 인공신장실’ 인증도 받았다. 또한 이 원장은 내과 전문의이면서 신장학회 인정 투석전문의이기도 하다.

그런 범일연세내과의원도 단체로 여행투석을 온 대만 환자들로 인해 긴장감을 늦추지 못했다. 그동안 한 번도 진료하지 않은 환자들이고, 한국과 다른 의료환경에서 진료 받았던 환자들이기에 혹시 모를 응급상황에도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WTDM을 통해 진행된 여행투석 중 가장 많은 환자들이 참여한 일정이기도 하다.

범일연세내과의원 이동형 원장은 이날 통역사의 도움을 받아 대만 간호사 왕첸전(Wang Chen Jen) 씨와 환자 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범일연세내과의원을 찾은 대만 관광객은 20여명이며 이들 중 10명이 말기신부전 환자다. 이들의 여행투석에는 간호사도 동행했다.

범일연세내과의원은 대만 환자들에 대한 정보를 미리 받아 개별 상태를 파악하고 그에 맞춰 투석 준비를 마쳤다. 의사소통을 위해 통역사도 별도로 섭외했다.

이날 오후 12시 30분경 대만 환자들이 범일연세내과의원에 도착하자 의료진은 미리 준비된 병상으로 안내한 후 진료를 시작했다.

진료는 한국과 대만 의료진 간 협진처럼 진행됐다. 이동형 원장은 이번 여행투석에 동행한 대만 간호사 왕첸전(Wang Chen Jen) 씨와 함께 환자별 상태를 다시 확인하고 혈류속도를 조정하는 등 투석 치료를 진행했다.

범일연세내과의원 이상선 간호사가 투석치료를 받고 있는 대만 말기신부전 환자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범일연세내과의원은 이날 대만 환자 투석 진료에 ‘베테랑 간호사’들만 포진시켰다.

오랜 기간 투석 환자를 돌봐왔던 간호사 이수정·이상선·박지영·박가람 씨는 ‘낯선 대만 환자’ 진료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들은 “생각보다 혈관이 약한 환자들이 많아서 신경이 더 쓰인다”며 여러 차례 혈류 속도 등을 확인했다.

신경이 곤두서기는 대만 간호사도 마찬가지다. 왕첸전 씨는 환자 한명 한명씩 별도로 상태를 확인하면서 불편 사항들을 한국 의료진에게 전달했다.

그는 “오래 전부터 말기신부전 환자들이 여행을 갈 때 동행하는 일을 해 왔다”며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은 혈액투석을 받는 환자들의 상태변화”라고 말했다.

대만 투석 환자들이 병상에 누워 혈액투석을 시작하자 그 가족들은 여행 가이드와 함께 별도 일정을 떠났다. 그들은 투석이 끝난 오후 6시경 다시 돌아와 함께 부산 여행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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