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의협 “국내 현실 감안치 않은 지불제도 개편, 의료시스템 붕괴 초래할 것”

의료계가 가치기반 지불제도(Value Based Payment, VBP) 도입을 총액계약제로 가기 위한 단계라고 지적하며 즉각적인 철회를 촉구했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20일 성명을 통해 “정부의 무리한 지불제도 개편 정책에 대해서 강력히 반대한다”면서 “왜곡된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의 근본적인 개선 없이 추진되는 모든 의료 정책은 효과 없는 포퓰리즘이자 가혹한 규제에 불과하다. 정부는 지불제도 개편 정책 및 이 정책이 포함된 건보종합계획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병의협은 “정부는 제1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을 통해 행위별수가제의 과도한 집중을 완화하기 위해 포괄 및 신포괄 수가, 묶음형 수가, 만성질환 관리 수가 등 다양한 지불제도를 도입·확산하겠다고 발표했다”면서 “특히 건보 종합계획의 4대 핵심가치 중 두 번째로 가치기반을 강조하면서 의료 제공량 기반의 단순 비례적 보상보다는 국민건강 향상에 실질적으로 기여한 성과 및 활동을 측정하고, 이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병의협은 “이는 결국 건보종합계획 발표를 통해 동안 지속적으로 부인해오던 지불제도 개편 계획을 공식화한 것”이라며 “의료계가 문제를 지적하며 반대해왔던 가치기반 지불제도로의 전환임이 분명해졌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난해 정부는 지불제도 개편 논란이 벌어지는 것에 대해서 황당하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전혀 관계가 없다는 주장을 했다”면서 “하지만 이번 건보종합계획에 지불제도 개편을 공식화 하는 내용이 포함되면서 당시 정부의 주장은 명백한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병의협은 정부가 검토 중인 가치기반 지불제도가 미국의 대체지불 모델(Alternative Payment Model, APM)을 차용한 것이라고 평하며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현실적으로 적용할 수 없는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병의협은 “미국식 지불제도 개편안을 우리나라에 적용시키기 부당한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다”면서 “먼저 미국이 행위별수가제를 대체지불제로 개편하려는 근본적인 이유는 GDP 대비 의료비 지출이 17.2%로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에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7.7%에 불과하기에 지불제도 개편의 명분이 약하다”고 지적했다.

또 “미국식 지불제도 개편이 명분을 얻기 위해선 의료수가가 미국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OECD 평균 이상은 돼야한다”면서 “하지만 대한민국의 수가는 OECD 최하위 수준이며 미국의 1/10 수준에 불과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료비 절감의 목적이 분명한 지불제도 개편은 어렵게 현재의 저수가 시스템을 지탱해오고 있는 의료기관들을 더욱 힘들게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병의협은 가치기반 지불제를 비롯한 대체지불제가 비용 억제 효과나 의료의 질과 치료결과 향상에 대해 뚜렷한 효과를 입증하지 못한 점도 문제 삼았다.

병의협은 “지불제도 개편이 정당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지불제도 개편으로 인해서 더 나은 결과가 얻어진다는 증거가 필요하다”면서 “그러나 지금까지 미국에서 시행된 대체지불제의 효과가 확실히 입증됐다는 근거가 매우 빈약하다. 미국에서도 그 효과가 확실히 검증되지 않은 지불제도를 섣불리 대한민국에 적용했다가는 미국보다 훨씬 큰 부작용을 감수해야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가치기반 지불제를 포함한 미국식 지불제도 개편안의 도입은 총액계약제와 인구기반 지불제로 가기 위한 과정이라는 게 병의협의 생각이다.

병의협은 “표에도 나와 있듯이 미국의 지불제도 개편안은 카테고리 4를 최종 목표로 하고 있다”면서 “그런데 인구기반 지불제도인 카테고리 4의 B와 C 유형의 보기(example)에는 총액계약제가 명시돼 있다. 결국 정부의 지불제도 개편안의 최종 종착역은 총액계약제와 총액계약제의 또다른 이름인 인구기반 지불제”라고 지적했다.

병의협은 “총액계약제에 대한 반감과 그 폐해에 대한 우려가 높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정부는 총액계약제라는 최종 목표를 최대한 감추면서도 단계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을 것이고, 그 방안으로 ‘의료의 질 향상’이나 ‘가치기반’이라는 그럴싸한 단어로 포장해 추진할 수 있는 지불제도 개편으로 가치기반 지불제를 선택한 것”이라며 “결국 가치기반 지불제로의 전환은 대한민국의 의료 현실에 맞지 않는 미국식 지불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며, 이러한 방향의 지불제도 개편은 궁극적으로 총액계약제로 가기 위한 단계에 불과하다”고 성토했다.

병의협은 “저수가와 단일 공보험 체제의 폐해 속에서 곪을 대로 곪아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국내 의료현실은 전혀 감안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추진되는 지불제도 개편은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의 근간을 흔들고 종국에는 이 부실한 시스템마저도 붕괴 시킬 것”이라며 “정부는 즉각 불제도 개편 정책 및 이 정책이 포함된 건보종합계획을 철회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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