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수 교수 “합법적 낙태수술 거부 시 형사처벌 받을 수 있어”
"임신주수 따른 낙태제한 차별화‧낙태 허용사유 정비해야"

지난 4월 헌법재판소로부터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은 낙태죄와 관련한 법 개정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법조계에서도 ‘의료인 낙태시술 거부권’ 도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김천수 교수는 지난 15일 서울서부지방검찰청, 대한의료법학회, 보건·의약·식품 전문검사 커뮤니티가 서울고등검찰청에서 개최한 ‘2019년 춘계공동학술대회’에서 낙태죄와 관련한 개선 입법방향에 대해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김 교수는 먼저 낙태에 대한 임신주수에 따른 제한의 차별화와 허용사유의 정비가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김 교수는 “헌재 결정이 제시한 입법방향을 법률 개정에 반영하는 바람직한 방법은 현행 모자보건법 제14조의 5개 허용 사유를 형법으로 옮겨 정비하는 것”이라며 “특히 시기는 매우 중요한 요건사실이다. 임신주수를 어떻게 판단할지에 대한 법적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임신 12주 이전 낙태의 경우 임부의 희망만으로 허용할 것인지, 사회경제적 사유가 소명된 경우로 한정할 것인지 그리고 상담 등 사전절차를 어떻게 둘 것인지 등에 대해서도 논의를 해야 한다”면서 “임신 12주와 22주 사이의 낙태에 사회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도 허용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검토도 요구된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헌재 결정 반영에서 가장 어려운 대목이 바로 사회경제적 사유”이라며 “막연하게 규정하면 실효성이 없다. 그 사유의 구체화 방안과 함께 그 사유의 존부에 관한 판단의 주체 및 과정 그리고 상담 등 사전 절차 등에 대한 논의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현 모자보건법 제14조의 임신중절 허용 사유를 형법으로 가져올 경우 기존 규정 개정 여부 및 적용 대상 확정 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아가 입법개선 과정에 있어 임신·출산 사실의 익명성 보장과 의료인의 낙태시술 거부권 신설 등이 제도적으로 보완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김 교수는 “제도권 밖에서 소위 베이비 박스가 임신 출산 사실의 노출 없이 임신 유지와 출산을 유인하는 효과가 있음은 분명하다”면서 “하지만 이는 임부나 아이 모두에게 매우 위험한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임부가 국민건강보험의 요양급여를 받으면서 임신과 출산 그리고 산후조리의 과정을 마치고 조용히 익명상태로 떠날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면서 “국회에서 이미 논의 중인 소위 비밀 출산법이 바로 그것이다. 임산부의 익명성 희망이 아이의 뿌리 찾기 희망에 우선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또 “낙태죄 관련 법령 개정은 종래에 비해 낙태를 합법화하는 범위가 확대될 것이 명백하다”면서 “특히 초기 태아에 대해 임부가 요청하면 사유를 불문하거나 사회경제적 사유만으로 낙태가 허용될 경우, 의료인들의 낙태 시술 거부권이 보장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헌재 결정이 나온 직후 청와대 청원에 등장했을 정도로 이 쟁점은 생명옹호계열의 의료인들에게는 심각한 문제”이라며 “합법적인 연명의료의 보류 내지 중단에 대한 의료인의 거부권을 인정한 국내 입법례를 참조해 낙태죄 개정 법률에 반영돼야 한다. 이러한 조치가 없으면 합법적 낙태시술을 자신의 신념과 양심에 거부하는 의료인은 의료법 제15조 및 응급의료법 제6조 등의 위반으로 형사 처벌 등의 불이익을 받게 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산부인과 수련과정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김 교수는 “낙태시술을 산부인과 전문의 수련과정에 필수 과정으로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면서 “의료계 일각의 주장을 들어보면 요컨대 낙태시술 교육이 필수과정이 된다면 산부인과를 전문으로 하고자 하는 의학도로서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당하는 위헌적 요소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2020년에 예정된 총선으로 개선입법 시한은 2020년 말이 아니라 2019년 말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입법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이나 조직은 그야말로 차분히 헌재 결정의 범위에서 미래지향적으로 개정 입법 논의에 접근해야 한다. 상대에게 최악이 될 나의 최선만을 추구하지 말고 공존을 도모하는 모두스 비벤디(modus vivendi)의 지혜가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의료계도 의사의 진료 및 낙태시술 거부권 도입에 찬성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법제이사는 “임부의 낙태에 대한 요청을 받은 의사가 신념과 종교적인 이유로 거부해도 의료법 상 진료거부로 보지 않는다는 조항과 불가피하게 낙태수술을 한 의사를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신설돼야 한다”면서 “국가는 법률을 개정함에 있어 위기 임산부들의 낙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원인을 해결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어떠한 형식이로든 낙태의 죄를 부활시켜 의사와 임산부를 처벌하려는 입법을 해서는 안 된다”고 피력했다.

한편 김천수 교수는 정의당 이정미 의원이 대표발의한 형법 및 모자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정미 의원의 개정안은 형법상 자기낙태죄, 동의낙태죄 규정을 삭제하고 모자보건법상 인공임신중절의 보상과 제한 및 이에 따른 벌칙 조항을 신설하는 게 주 골자다.

먼저 임신 14주 이내 임산부의 경우 임산부의 판단에 의한 요청만으로 인공임신중절 및 수술이 가능하도록 해 임산부의 낙태 결정권을 보장했다.

또한 임신 14주부터 22주까지 기간의 인공임신중절의 경우 종전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 사유는 삭제하고 태아가 건강상태에 중대한 손상을 입고 있거나 입을 염려가 뚜렷한 경우로 대체하고, 기존 사유에 사회적·경제적 사유를 더해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확대했다.

다만 임신 22주를 초과한 기간의 인공임신중절은 임신의 지속이나 출산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한정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김천수 교수는 “이들 법안은 헌재 결정을 빙자해서 낙태죄를 ‘사실상’ 폐지한 법안”이라며 “이들 법안을 따를 경우, 낙태를 행한 의사 등은 임부에게 치사상의 결과만 없으면 임부의 요청이나 동의가 없어도, 임신주수에 의한 제한을 어겨도, 허용사유에 해당하지 않아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 ‘사실상 모든’ 위법 낙태에 과태료라는 행정적 제재만을 부과하고자 한 의도”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헌재 결정은 개선입법의 방향으로 낙태죄의 비범죄화를 제시하지 않았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재 결정을 빙자해서 중요한 낙태행위의 사실상 모든 유형을 비범죄화하려는 시도가 은닉된 법안이다. 관련 정부부처와 전문가는 태아의 생명을 두고 혹세무민해서도 안 되고 이를 수수방관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