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대 김열홍 교수 "정부, 신약 가치 반영해줄 수 있는 시스템 갖춰야"

보건복지부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 일환으로 추진하는 '의약품 선별급여제도'가 본격 시행됐다. 선별급여제도는 비용효과성 등이 불명확해 급여적용이 어려웠던 의약품 중 사회적 요구가 높은 의약품을 대상으로 건강보험은 적용하되 본인부담금 비율을 높여 의약품에 대한 환자 접근성을 강화하는 것을 말한다.

항암제 분야에서는 지난 5월 20일 첫 사례로 '퍼투주맙', '에리불린', '엔잘루타마이드', '아비라테론아세테이트' 등 유방암과 전립선암 분야의 4개 품목 6개 요법에 선별급여가 적용됐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올해에만 전이성 대장암을 포함한 16개 항암요법에 대해 선별급여를 도입할 예정이다.

이에 본지는 현재 심평원 중증(암)질환심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인 고대안암병원 혈액종양내과 김열홍 교수를 만나 항암제 선별급여 적용 필요성 및 쟁점들에 대해 들어봤다.

고대안암병원 혈액종양내과 김열홍 교수

- 실제 진료 환경에서 항암제 선별급여 제도에 대한 요구는 어느 정도인지.

항암제 선별급여는 전문가들이 이전부터 필요하다고 주장해온 제도다. 현재 급여권에 있는 항암제의 환자 본인부담금은 5%인데, 이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환자 개인이 부담할 수 없을 만큼 비싼 치료제라도 급여의 고비를 넘지 못한다면, 환자가 약제 비용 100%를 전부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이 생기게 된다. 이런 이유로 전문가들은 본인부담금을 차등화하는 것이 좋겠다고 계속 의견을 피력해왔고, 그것이 선별급여라는 형태로 반영이 된 것이다.

문제는 본인부담금 비율(50%, 30%, 5% 등)을 판단하는 근거다. 이에 심평원의 암질환심의위원회에서는 ▲이 약제가 얼마나 뚜렷하게 환자에게 혜택을 주는지 ▲이 약제 외에 선택 가능한 약제들이 있는지 ▲이 약제가 비용효과성을 입증하지 못해 선별급여 대상이 된 만큼 효과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등을 근거로 활용하여 판단하고 있다.

미국임상종양학회(ASCO)나 유럽종양학회(ESMO)에서 환자들에게 주는 이득이 얼마인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위한 평가 척도를 마련한 게 있는데, 최근 이를 제3자가 검증(validation)해 논문을 발표한 결과, ASCO나 ESMO가 제시한 판단 기준이 별로 적절하지 못하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이는 (해외 유수의 학회에서 만든 평가 기준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의견이 제시된 것은)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이상적인 지표가 아직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평가 기준이 더 개발되면 본인부담금의 비율이 적절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길텐데 그 점은 아직 아쉽다.

그렇지만 선별급여라는 제도가 마련된 이상 전문가들이 최대한 '중지(衆志)'를 모아 약제의 효과 등에 따라 환자가 본인부담금을 조금 더 높이더라도 빨리 급여권으로 포함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른 대체제가 있는 치료제라도 환자가 필요로 한다면 현재 100/100보다는 50% 정도로 본인부담금을 조정해 환자와 정부 모두 부담을 줄이면서 환자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 선별급여 취지는 공감하나 일부 환자들은 불합리하다고 판단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라핀나∙매큐셀 같은 경우 흑색종에서는 본인부담금 5%가 적용되는데, 폐암에서는 급여 적용이 안된다. 폐암에 대해 선별급여 적용이 된다 하더라도 환자들은 같은 치료제인데 왜 다르게 본인부담금 비율을 적용하느냐고 반발할 수 있다.

가장 어려운 문제다. 복지부나 심평원도 민원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고민이 크다. 정부가 어떤 기준을 가지고 정책을 펼치든 간에, 치료를 받는 환자 입장에서는 그동안 의료보험료를 꾸준히 냈음에도 막상 자신이 치료를 필요로 할 때 많은 치료비를 부담해야 하고, 이 치료비가 감당이 안돼 실제 치료를 못하는 문제에 봉착하기 때문에 민원을 제기하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국회 토론회에서 100/100은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어떤 신약이 식약처의 허가를 받게 되면, 당장 본인부담금 5%를 적용하진 않더라도 정부에서 10%라도 일단 무조건 보험을 해주자는 것이다. 그래야만 약제가 급여권에 들어오고, 급여권에서 심사가 이뤄져야 그 약제가 정말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지 모니터링 할 수 있다.

높은 비용을 환자나 정부가 전부 다 떠안는 것은 부담이 크기 때문에 서로 그 부담을 나누자는 것이 건강보험의 취지다. 그러나 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제약사에게 협상의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A라는 약제에 대해 정부가 이미 10%를 부담하고 있었는데, 제약사와의 협약이 깨져 중도에 지원이 끊기게 될 경우, 이미 그 혜택을 받고 있던 환자들은 크게 반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혜택을 주다가 철회하는 것은 정부 입장에서 정말 어려운 문제다.

- 정부는 올해 안에 16개 항암요법에 대해 선별급여를 검토하겠다는 계획이고, 이 안에는 대장암 치료제도 포함되어 있다.

'레고라페닙'의 경우 지금까지 급여권에 들어오지 못한 이유는 암질환심의위원회에서 두 번에 걸쳐 논의한 결과 비용효과성이 떨어진다고 판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약을 개발한 제약회사의 임상시험이 너무 높은 용량으로 설계되지 않았나 싶다. 그러다 보니 많은 환자가 치료 초기에 부작용을 겪고 치료를 유지하지 못한 경우가 발생한 것이다.

이번에 새롭게 진행된 연구는 처음에는 환자들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용량으로 시작해 별 부작용이 없으면 용량을 올려 효과를 볼 수 있는 용량까지 올려보자는 아이디어로 시작됐으며, 그 결과 환자들의 내약성 및 효과가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신약이 개발될 때 제약회사가 1상, 2상을 거치면서 특정 용량을 감내하는 환자들이 70~80% 정도가 되면 그 용량을 고집해 왔다. 또한 가능하면 고용량을 투약하려고 했으며, 고용량을 투약해야만 치료효과가 크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레고라페닙 같은 신생 혈관을 억제하는 표적치료제는 사실 훨씬 낮은 용량에서도 효과를 보인다. 오히려 높은 용량을 사용하면 부작용이 심해지고 신생 혈관을 억제하는 임상적 유용성이 더 안 나타날 수도 있다. 그래서 생물학적으로 효과를 나타내는 용량은 따로 있다고들 얘기한다.

때문에 최대한 환자들이 많이 견뎌낼 수 있으면서 효과를 볼 수 있는 적절한 용량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한데, 이에 식약처의 허가 임상시험에서는 시도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연구자 주도의 리얼월드 임상시험으로 그 약의 실제 유용성을 찾아내는 연구가 더 많다.

레고라페닙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레고라페닙도 식약처 허가는 160mg으로 받았지만 내가 볼 때는 80mg으로 시작을 해서 환자가 잘 견디면 120mg, 160mg으로 증량하면서 투약하면 실제로 환자들이 효과를 더 크게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보험급여의 판단은 허가 임상 데이터에 근거해서 판단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간 암질환심의위원회에서 본인부담금 5% 적용은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한 베바시주맙, 레고라페닙과 같은 신생혈관 억제제의 경우 바이오마커가 뚜렷하지 않아 아무리 표적치료제라 하더라도 일단 모든 환자에게 투여하고 그중 아주 일부 환자에서만 효과를 본다. 이런 점이 그동안 본인부담금 5%를 적용하기 힘든 중요한 근거 중의 하나였다. 선별이 불가능한 치료제, 바이오마커가 없는 치료제는 많은 환자가 효과를 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큰 비용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건강보험 급여에서 자꾸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 사후평가제도를 도입해서 치료 효과를 보인 환자에게 사용된 약제만 건강보험 급여를 해주고, 나머지는 환급하는 방식을 취하자는 논의도 있다.

이는 면역항암제에 해당하는 내용인데, 면역항암제는 ▲임상시험 데이터와 리얼월드 데이터(RWD)에서 현격한 효과의 차이를 보이고 ▲좋은 바이오마커가 없는데 반해 너무 고가이며 ▲적응증이 다양한 문제가 있다.

때문에 가장 좋은 바이오마커는 '실제 환자가 효과를 보느냐, 안 보느냐'로 제약사와 정부가 서로 위험분담을 하자는 취지에서 제안한 것이다. 유럽에서는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례도 있다고 들었다.

- 현재까지 면역항암제를 보유한 MSD, 오노와 BMS 중 한 회사만이 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나머지 두 회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머지 두 회사는 면역항암제 분야에서 선두주자이고 이미 시장을 많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측면에서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MSD는 여러 가지 전략적 차원이 있을 것이고, 오노와 BMS는 두 회사가 전략을 맞춰야 하므로 조금 더 복잡할 것이다. 또한 허가를 받은 암종에서도 반응률이 상당히 떨어지기 때문에 정부의 제안을 받아들였을 경우 회사의 부담이 훨씬 크다는 여러 가지 판단이 있지 않나 싶다.

이와 별개로 정부는 신약의 혁신성에 대한 비용을 고려할 필요가 있으며, 신약이 보험 등재가 되고 시장에 들어올 때는 환자에 대한 비용효과성을 충분히 입증하는 게 맞다. 또한 이런 과정에서 리스크는 서로 분담해야 하며, 이런 차원에서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

정부가 신약의 혁신성에 대한 비용을 어느 정도 유지해주려면 반대로 제네릭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비용을 떨어뜨려 절감된 금액을 신약 개발에 지원해야 한다. 미국이나 유럽의 일부 국가들은 이런 방향으로 국가의 보험 재정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국내 제약회사를 보호한다는 명분하에 제네릭 수가는 높게 유지해주고 신약이 들어오려고 하면 무조건 약가를 싸게 측정해 전체적인 보험 재정을 안정시키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이러면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어렵다. 국내 제약회사들도 신약 개발에 뛰어들고, 정부 차원에서도 신약의 혁신성에 대한 가치를 반영해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 한정된 건보재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환자들에게 효율적으로 혜택을 제공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비용을 분담하는 주체는 환자, 건강보험, 제약회사 이렇게 총 세 개다. 현재 제약사는 위험분담제를 통해서 위험 분담을 하고 있고, 선별급여는 어떻게 보면 환자 측면에서의 위험 분담인 것이다. 이 원리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서로간의 희생이 필요하다. 자꾸 한쪽 입장에서 '나는 좀 더 비용을 적게 내고 좋은 혜택을 계속 받겠다'라고 입장을 내세우면 이 관계가 깨질 수밖에 없다.

3자간에 서로 의견을 듣고 객관적인 전문가로서의 판단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분명히 있어야 한다. 그런 역할을 암질환심의위원회 같은 전문가들이 충분히 해왔다고 생각한다. 어느 한쪽에 기울지 않고 판단해왔고 앞으로도 이런 기조를 가져나가야 우리나라의 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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