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1인 1개소법 위반했더라도 정당한 요양급여 이뤄졌으면 급여비 지급해야”

의료법 상 1인 1개소 조항을 위반한 의료기관이라도 정당한 요양급여가 이뤄졌다면 요양급여비용을 환수 할 수 없다는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16년 서울고등법원은 L병원을 운영하던 의사 K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대상으로 제기한 ‘요양급여비 환수처분 취소’ 소송에서 1심과 마찬가지로 K씨의 손을 들어줬다.

K씨는 지난 2011년 11월 선배 의사와 함께 L병원을 합법적으로 개설했지만 이듬해인 2012년 의료법 제33조 8항이 개정·시행되면서 2014년 10월 해당 조항을 위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고 공단으로부터 급여비 지급 정지 및 환수 조치를 당했다.

공단의 급여비 지급 정지로 병원 문을 닫아야 했던 K씨는 소송을 제기했고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2월 24일 L병원은 이중개설된 의료기관이 아니라며 93억원에 달하는 급여비 환수 처분을 취소했다.

공단은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의 판단도 같았다. 2심 재판부는 1심과 마찬가지로 L병원이 이중개설금지 조항(의료법 33조 8항)을 위반해 개설되지 않았다고 봤으며 설사 이중개설된 의료기관이라고 하더라도 급여비 환수는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최근 서울행정법원도 의사 A씨가 공단을 상대로 청구한 57억4,683만원 상당의 요양급여비용환수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 2010년 1월부터 2015년 4월까지 인천 B병원의 개설자로 등록돼 있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다.

그러던 지난해 7월, 공단은 서울특별시지방경찰청으로부터 ▲B의원은 광주광역시에서 요양병원을 운영하던 C씨가 A씨의 명의를 빌려 설립했으며 ▲2010년 1월, B의원을 병원으로 확장하면서 C씨가 A씨에게 매월 1,500만원 상당의 급여를 지급했다는 내용의 수사결과를 통보받았다.

이에 공단은 같은 해 8월 A씨가 의료법 제33조 제8항 및 제4조 제2항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국민건강보험법 제57조 제1항에 근거해 요양급여비용 57억4,683만원을 환수하는 처분을 내렸다.

이에 대해 A씨는 “B병원은 개설 초기, 의사 C씨가 운영자금을 투자하고 운영성과를 귀속받기는 했지만, 2012년 8월 이후로는 C씨와의 동업관계를 완전히 청산하고 월세 및 관리비 이외에는 금원을 지급한 적이 없다”면서 “진료, 자금 조달, 인사 등 경영 의사결정과 실무자들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단독으로 행사하며 독자적으로 운영했다”고 주장했다.

또 “수사기관으로부터 이중개설 혐의를 받고 있는 병원은 B병원이 아닌 D병원”이라며 “공단의 환수 처분은 B병원이 수사기관으로부터 이중개설 혐의를 받고 있는 전제에서 내려진 것이므로 위법하다”고 말했다.

나아가 “설령 공단의 주장과 같이 B병원이 이중개설 조항을 위반해 개설된 병원이라고 하더라도, B병원은 의료법에 따라 개설된 의료기관으로서 요양급여비용 수급자격이 있는 요양기관에 해당한다”면서 “아울러 B병원은 건보법 상 ‘속임수나 기타 부정한 방법’에 따라 요양급여비용을 지급받은 적이 없다”고 항변했다.

서울행정법원은 B병원이 의료법 상 이중개설 금지 조항을 어긴 사실은 인정했다.

법원은 “공단이 2018년 7월 서울지방경찰청으로부터 의료법 제4조 제2항, 제33조 제8항을 위반했다는 수사결과를 통보받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이를 근거로 환수 처분에 이르렀다”면서 “반면 A씨가 B병원의 실제 개설·운영자라는 점을 인정할 만한 자료를 찾아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 “서울지방경찰청이 공단에 통보한 수사결과에 따르면 A씨가 C씨와 함께 이중개설 혐의를 받고 있는 병원은 B병원이 분명하다”면서 “C씨가 B병원 폐업 직후 같은 장소에서 D병원을 새로 개설해 운영한 것일 뿐, 2010년 1월부터 2015년 4월까지 존재했던 병원은 B병원”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법원은 B병원에서 실제 정당한 진료가 이뤄진 이상, 이를 환수하는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먼저 “의료법에 따라 병원의 경우에는 개설허가, 의원의 경우에는 개설신고수리가 개설과정의 중대·명백한 하자에 의해 당연무효가 아닌 한 정당하게 개설된 의료기관에 해당한다”고 전제했다.

법원은 “공단은 ‘의료법에 따라 개설된 의료기관’이란 의료법에 따라 적법하게 설립된 의료기관 만을 의미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렇게 해석할 경우 의료법 제36조에서 정한 시설기준 중 경미한 위반행위가 있음을 간과하고 행정정이 의료기관 개설허가를 하거나 신고수리를 한 경우까지 모두 무효라고 보게 돼 요양기관의 범위를 지나치게 축소하는 결과가 발생한다”면서 “이는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방식의 취지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의료기관이 실질적으로 유효한 요양급여를 한 경우에도 요양급여비용을 받을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해 의료기관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반면 논리적으로 해당 의료기관이 요양급여 실시의무를 부당하게 불이행해 형사처벌을 받아야 할 경우에도 경미한 위법행위가 있음을 이유로 형사처벌을 면할 수도 있게 돼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법원은 “건보법 제47조의2는 ‘요양급여비용의 지급을 청구한 요양기관이 의료기관 개설 조항을 위반했다는 사실을 수사기관으로부터 확인한 경우에 해당 요양기관이 청구한 요양급여비용의 지급을 보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같은 법 제57조에는 ‘의료기관 개설 조항을 위반해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는 자가 의료인의 면허나 의료법인 등의 면허를 대여받아 개설·운영하는 경우 개설자에게 그 징수금을 납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의료인이 복수의 병원을 개설·운영하고 있는 경우에는 이 같은 명문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또 “B병원과 같이 의료법 제4조 제2항, 제33조 제8항을 위반해 개설된 의료기관의 경우 개설허가가 취소되거나 의료기관 폐쇄명령이 내려질 때까지는 요양급여를 실시하고 보험급여비용을 공단으로부터 받는 것 자체가 법률상 원인 없는 부당 이득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의료인이 의료기관을 중복·개설 운영했더라도 실질적으로 정당한 요양급여가 이뤄진 것으로 평가된다면 원칙적으로 그 비용을 지급하는 게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취지에 부합한다”고 했다.

한편 이 사건을 대리한 법무법인 고도 이용환 변호사는 “이중개설 금지 위반은 건보법 상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는 자가 의료기관을 개설한 속칭 사무장병원과 달리, 요양급여 비용 보류 규정과 환수처분 규정이 없다”면서 “또 이중개설 금지 위반이 ‘건보법 제57조 제1항의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례가 누적되고 있음에도 법적 근거 없이 이중개설 금지 위반을 이유로 지속적으로 요양급여 환수처분을 하는 건 의료기관에 대한 과도한 재산권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이어 “이중개설 금지 위반을 이유로 한 E구청의 ‘의료급여 부당이득금 부과 처분’에 대해서도 취소소송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번 판결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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