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복지법 개정 후 까다로워진 비자의입원으로 행정입원 크게 증가
환자‧지자체, 본인부담금 납부 의무 미뤄…중간서 민간 정신병원만 난감

2017년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에 지원에 관한 법’ 개정으로 지방자치단체장을 보호의무자로 하는 정신질환자 비자의입원이 폐지되고, 행정입원으로 통합되면서 행정입원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특히 행정입원이 크게 증가하면서 환자 본인부담금을 놓고 환자와 지자체가 납부책임을 미루는 등 중간에 끼인 민간 정신병원만 애꿎은 피해를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 Y정신병원, 행정입원 환자 받았다 낭패

최근 경기도 소재 Y정신병원은 A시가 진행한 행정입원을 통해 ‘양극성정동장애’환자를 입원시켰다가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환자는 국민건강보험 적용을 받는 정신질환자로 ‘응급입원은 72시간을 넘겨 입원할 수 없다’는 규정으로 인해 72시간이 지날 때마다 여러 병원을 옮겨 입원하던 중, Y병원에 응급입원했지만 이후 A지자체 결정으로 행정입원으로 전환된 환자였다.

문제는 이 환자가 퇴원할 정도로 상황이 호전된 후 벌어졌다. 건보환자였기 때문에 총 진료비 중 약 100여만원이 본인부담금으로 청구됐지만 환자가 ‘돈도 없고, 자의 입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낼 생각도 없다’며 퇴원을 안하고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환자 본인이 아니라면 행정입원을 결정한 A시에서 지원하면 될 것이라고 봤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우선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에 지원에 관한 법’ 중 환자의 경제적 부담 경감 항목에 ‘국가 또는 지자체는 정신질환자와 그 보호의무자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정신질환자의 사회적응을 촉진하기 위해 의료비 경감, 보조나 그밖에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다’고 명시된 조항이 문제다.

‘필요한 지원을 해야 한다’가 아니라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에 지자체에서 행정입원을 결정했지만 본인부담금까지 지원하지 않아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 환자의 경우 주소지가 A시가 아닌 B시였기 때문에 문제가 더 꼬였다.

A시 입장에서는 행정입원을 결정하긴 했지만 B시 주민인 환자의 본인부담금까지 내주기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으며, B시의 경우 자신들이 결정한 행정입원이 아니기 때문에 역시 진료비를 부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건보환자 행정입원에 따른 본인부담금 문제가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 무엇이 문제인가

지자체장이 보호의무자가 되는 비자의입원과 행정입원은 모두 지자체가 정신질환자 비자의입원에 관여한다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절차상 차이가 있었다.

행정입원은 국공립의료기관을 통한 입원만 가능했다. 또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전에는 입원연장을 위해 위해 전문의 2인의 일치된 소견이 있어야 하는 등 지자체장이 보호의무자가 되는 비자의입원에 비해 절차가 까다로웠다. 따라서 현장에서 행정입원이 진행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2017년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으로 지자체장이 보호의무자가 되는 비자의입원이 폐지되면서 보호의무자가 없는 정신질환자 비자의입원을 위한 행정입원이 크게 늘고 있다.

정신건강의학계에 따르면 연간 200여건에 불과했던 행정입원이 2,500여건으로 늘었다.

행정입원이 크게 증가하면서 부작용도 커지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건강보험 적용 정신질환자의 행정입원 증가와 이에 따른 환자본인부담금 문제다.

지금까지 행정입원은 행려환자 등 의료급여환자가 대부분이어서 환자 본인부담금이 문제되지 않았지만, 건보 적용 정신질환자의 행정입원이 많아지면서 환자 본인부담금을 누가 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떠오르고 있다.

특히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으로 행정입원 가능 의료기관이 기존 국공립정신병원에서 ‘지정 정신의료기관’으로 바뀌면서 민간병원 다수가 포함, 앞으로 건보 적용 정신질환자 행정입원 시 환자 본인부담금 문제에 시달리게 될 민간병원이 늘어날 수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행정입원이 가능한 ‘지정 정신의료기관’은 각 지자체에서 공모를 통해 지정한다. 2017년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으로 비자의입원 시 전문의 2인 진단이 필요해지면서 ‘지정 진단의료기관’에 참여하는 민간의료기관이 대폭 증가했다. 국립정신건강센터에 따르면 3월 29일 현재 지정 정신의료기관은 국공립기관과 민간 기간을 포함해 전국에 264곳에 이른다.

행정입원은 사회 전체 이득, 고려해야

사건이 벌어진 Y정신병원에서 해당 환자를 진료한 의사는 본지와 통화에서 자신은 건보환자 행정입원을 처음 겪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행정입원 자체가 많기는 한데 의료급여환자만 있었고 건보환자는 거의 없었다. 개인적으로 이번에 처음 겪은 일”이라며 “건보환자에게 발생한 본인부담금을 받으려고 보니 많이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변호사에게 물어보니 원칙은 환자가 내는 것이 맞다고 하는데, 환자는 낼 돈이 없고 낼 의사도 없다고 한다”며 “그 다음으로는 관할 주소지 지자체에서 내야 하는데, 이번 경우에는 행정입원을 결정한 지자체와 주소지가 달라 문제가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처음 행정입원을 결정할 당시에 (입원할 병원 관할인) A시와 (환자 주소지인) B시 중 어디가 행정입원 주체가 돼야 하는지를 놓고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A시가 주체가 된 것”이라며 “하지만 A시 조례에는 거주지가 A시인 환자의 진료비만 지원할 수 있게 돼 있어 B시가 거주지인 이 환자 진료비는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후) 비자의입원이 점점 어려워져 앞으로 건보환자 행정입원이 더 많아질 것인데, 이런 문제에 대해 명확한 해결책이 있어야 한다”며 “행정입원은 사회 전체에 도움을 주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환자 본인보다는 지자체 등에서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해결책은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뿐?

대한신경정신의학회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건보환자 행정입원 시 본인부담금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정신건강복지법 개정만이 답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 2017년 정신건강복지법이 개정되면서 시군구청장을 보호의무자로 하는 비자의입원이 폐지되고 행정입원으로 통합됐다”며 “그러면서 연 200여건이던 행정입원건 수가 연 2,500여건으로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들 중 대부분은 행려환자로 의료급여 대상이지만 건강보험 급여 대상 환자도 늘고 있다”며 “이런 환자들이 많아질수록 현장에서 환자 본인부담금과 관련한 논란이 많아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이 관계자는 “진주방화사건을 봐도 정신건강복지법에 명시된 비자의입원 요건을 하나도 충족하지 못했다. 때문에 앞으로 행정입원이 더욱 중요해진다”며 “이런 상황임에도 건보환자 행정입원 시 발생하는 본인부담금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법적으로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을 명확히 하는 것만이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이웃 일본의 경우 이같은 경우 관련 법에 ‘행정입원을 결정한 지자체가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 명시돼 있으며, 더해 ‘지자체가 지원하는 금액의 3/4는 국가에서 보조한다’는 조항까지 더해 사실상 정부에서 치료비를 지원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공공정신병원이 전체 정신병원 중 80~90% 정도 된다면 모를까 5% 정도인 우리나라는 결국 민간병원이 행정입원 수요를 감당해야 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건보환자 본인부담금 문제 등은) 민간병원의 의지를 약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당시 도입된 '비자의입원 시 전문의 2인 진단' 결정도 이런 사태 확산에 영향을 준다”며 “전문의 2인 진단을 위해 지정 진단의료기관을 늘렸기 때문이다. 공공병원이 부족해 민간병원이 공공역할을 함에도 피해를 떠안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복지부 “환자 주소지 지자체가 부담하는 것이 합리적”

한편 보건복지부는 건보 정신질환자의 행정입원 시 본인부담금까지 환자 주소지 지자체가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신건강정책과 관계자는 본지와 만나 “행정입원은 행정기관이 진료비를 내는 것이 맞다. 입원은 (환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결정하고 환자에게 진료비를 내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건보 정신질환자 행정입원 시 본인부담금은) 환자 주소지 지자체에서 부담하는 것이 맞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다만 행정입원을 결정한 지자체와 환자 주소지가 다르다면 이 경우 양 지자체가 협의해야 할 것”이라며 “그렇다고 해도 ‘자기 주민을 지원한다’는 명분을 생각한다면 주소지 지자체가 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건보 정신질환자 행정입원과 관련한 혼란을 줄이기 위해 정신건강복지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는 입장이다.

이 관계자는 “법에 ‘할 수 있다’고 명시된 것은 사실상 ‘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며 “법을 수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법 조항은 대부분 그렇게 돼 있다. 강행규정이라고 하면 못했을 경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도 의료기관에서 건보 정신질환자 행정입원 시 본인부담금 관련 문의가 오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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