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동영상과 인공지능의 만남이 가져올 변화①…수술 복기는 물론 표준술기 데이터도 가능

#1. A교수는 오전에 진행한 대장암 복강경 수술이 이전과 달리 상당히 까다로웠다고 느꼈다. 특히 지혈을 위해 혈관을 잡아 나가는 과정이 왠지 평소와 달랐다고 생각됐으나, 이전 수술과 어떤 점이 달랐는지 명확하게 떠오르지가 않았다. 이에 A교수는 ‘수술영상기록사이트’에 접속해 그간 올려두었던 자신의 수술영상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사이트에 해당 수술명과 자신이 궁금했던 수술장면과 관련한 검색어를 넣자, 대장암 복강경 수술 중 혈관을 잡는 편집된 영상 수십여개가 검색됐다. A교수는 이 영상들을 통해 오전의 수술이 이전 수술과 어떤 점이 달랐는지를 복기했다.

#2. 외과학회 산하 학회 중 한 곳인 B학회가 C수술 영상가이드라인 및 전공의 교육 프로그램 공청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선 C수술 시 장기 절개에 대한 표준 영상을 공유하고, 전공의들이 이를 포함해 숙지해야 할 표준수술영상들을 정했다. 또 C수술에 쓰이는 기구들이 실제 임상에서 효과적이고 안전한지에 대한 논의도 이어갔다. 이 때 근거가 된 건 인공지능에서 분석한 영상들이었다.

수술영상들을 임상에서 다양하게 활용하는 날이 머지 않아 보인다. 의사들의 책장과 서랍 속에서 먼지만 쌓여가는 수술영상들이지만, 인공지능과의 접목을 통해 연구, 교육, 산업 등에 활용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시도가 의료 정보화 컨텐츠 개발업체인 엠티이지(Media&medical Technology Expert Group, MTEG)의 ‘수술동영상을 활용한 지능형 수술 가이드 시스템 및 서비스 개발’ 사업이다. MTEG는 지난달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의 ‘민간 지능정보서비스 확산사업’ 일환으로 추진되는 이 사업의 주관기관으로 선정됐다. 이 사업에는 4개 대학병원(가천대학교 산학협력단, 고려대학교 산학협력단, 서울아산병원, 순천향대학교 산학협력단)에서 6개 진료과가 참여하며, 수행 기간은 2019년 5월부터 2020년 12월까지다.

‘수술동영상을 활용한 지능형 수술 가이드 시스템 및 서비스 개발’은 말 그대로 수술동영상을 교육과 임상에서 활용하는 사업이다. 그렇다면, 정말 수술동영상은 ‘데이터’로서의 가치가 있을까. 또 어떻게 교육과 임상에서 활용한다는 것일까.

서랍 속 잠자는 수술영상을 깨워라

최근 빅데이터, 인공지능의 발달로 수많은 의료 관련 문서기록과 사진들이 중요한 의료정보로 발전하고 있다. 문서 못잖게 영상 자료도 그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국내에선 아직 영상 자료들을 임상에서 활용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카메라가 부착된 내시경 장비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영상 장비들이 소형화·보편화되면서 내외과적 시술에도 영상을 촬영하는 일들이 늘고 있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영상들은 학술대회 발표 등 극히 일부에서만 활용되고 있을 뿐이다.

‘수술동영상을 활용한 지능형 수술 가이드 시스템 및 서비스 개발’ 사업에 참여하는 순천향대서울병원 외과 조성우 교수는 “수술하는 외과의들은 대개 수술영상을 갖고 있다. 적게는 두 시간에서 많게는 10시간 넘는 수술과정을 모두 담은 영상을 CD나 외장하드에 저장해 책장 등에 보관하고 있지만 실제 활용하는 일은 드물다. 어떤 영상에 어떤 수술 내용이 있는지 파악하기 힘들 정도”라며 “외과의들은 자신의 수술을 복기해 한단계 업그레이드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러나 수술 등으로 바쁜 현실에서 몇시간짜리 영상자료를 하나하나 되짚어보긴 쉽지 않다. 필요한 부분만 보기도 어렵다. 이런 욕심과 환경이 이번 사업에 참여하게 된 배경 ”이라고 말했다.

조성우 교수의 지적처럼 현재 국내에 의사들이 보유한 수술영상이 얼마나 되는지는 파악도 안될 뿐더러, CD와 외장하드 등에 비효율적으로 쌓여만 있어 원하는 내용을 찾기도 어렵다.

‘수술동영상을 활용한 지능형 수술 가이드 시스템 및 서비스 개발’ 사업은 이러한 수술동영상들을 수집해 정형화된 데이터로 가공, 의사 개인은 물론 병원 등이 활용할 수 있는 수술 동영상 통합관리 솔루션을 만든다.

해외에선 수술영상 등 의료 관련 동영상을 활용해 데이터화하는 작업이 이미 시작된 상태다.

일본의 경우 2011년 주요 학회를 시작으로 수술영상들을 구축하기 시작해 2017년 1월말 현재 700만건이 넘는 수술 정보를 확보했다. 이를 통해 주요 수술에 대한 데이터 분석 결과를 발표하고, 이를 근거로 수술 위험 평가도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에서도 영상을 활용한 ‘ACS National Surgical Quality Improvement Program'(국가 수술 품질 개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 내 400여개 병원이 참여하는 이 프로그램은 참여 병원과 데이터를 공유하고,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분석 및 보고서도 제공하는 게 목적이다. 이를 통해 수술의 품질 향상, 의료비용 감소, 다른 병원과의 학습 공유 등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영상으로 수술 퀄리티까지 높인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도 동영상을 데이터화해 임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이야기한다.

가천대 길병원 의공학교실 김광기 교수(의료기기 융합센터 의료기기 R&D센터장)는 “과거와 달리 인공지능을 이용한 데이터 분석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영상의 자동 분류 및 분석이 용이해졌다”며 “의료진들이 각각의 수술 중 중요한 부분을 정의하면, 그에 맞는 인덱싱(indexing) 영상들을 만들어 모으고, 이후 인공지능을 통해 트레이닝 시키면 표준화된 수술영상 자료가 만들어지는 게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광기 교수도 '수술동영상을 활용한 지능형 수술 가이드 시스템 및 서비스 개발’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김광기 교수는 이번 사업을 통해 “경험상 500~1,000개 정도의 일정한 (수술영상) 데이터가 쌓이면 교육자료로 활용 가능한 수준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조성우 교수는 장기적으로 영상을 활용한 수술의 표준화도 가능하다고 했다.

조성우 교수는 “수술동영상을 활용한 이번 사업이 수술의사 개개인의 능력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또 인공지능을 통해 분석 정리된 영상들을 가지고 (의사들이) 서로 비교하면서 수술시간 단축, 수술 도구들에 대한 사용 방법, 혈관 잡는 방법 등 디테일한 논의와 정리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전공의 등의 교육에도 활용가치가 있을 것으로 전망됐다.

조성우 교수는 “외과 분야에서는 세부 전공을 위해 일정한 수술건수를 달성해야 하는데, 현재 국내에선 이러한 비기너(beginner)들과 이들이 수술해야 하는 환자들을 위한 보호장치가 미비한 실정"이라며 "외과의는 적은데 수술건수는 많아 지금까진 이런 문제들을 눈감고 넘어가고 있는데, 이런 문제들을 수술동영상을 활용해 일부라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에 ‘수술동영상을 활용한 지능형 수술 가이드 시스템 및 서비스 개발’ 사업을 진행하는 MTEG와 각 병원 연구진들은 단기적으로는 수술 교육 동영상을 만드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표준술기 데이터 도출 및 인공지능을 이용한 ‘지능형 수술 가이드’까지 제작하는 것이 목표다.

개인정보 노출 걱정은 기우

MTEG 주관 사업이 서랍 속에서 잠자던 수술동영상을 교육 등에 활용한다는 점에서 그 가치와 잠재력이 주목되지만, 한편으론 우려되는 바도 없지 않다. 개인정보보호 문제와 의료계의 수술실 CCTV 설치에 대한 반감이 그것이다.

하지만 개인정보 보호 문제 관련 MTEG를 비롯한 관련 연구진들은 비식별화 작업을 통해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했다.

김광기 교수는 “현재 환자 관련한 가공되지 않은 정보는 의료기관만 보유할 수 있다. 때문에 쌓이는 수술동영상 원본 데이터는 사업 참여 의료기관에 보관하고, 이를 비식별화 작업 등을 통해 환자 정보가 노출되지 않게 가공한 후 MTEG 등에서 교육 자료 등으로 활용할 수 있게 데이터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성우 교수도 “환자이름, 나이, 성별 등 기본적인 비식별화는 물론, 수술 시 환자의 특이점이 노출되지 않게끔 하는 방법까지 고심하고 있다"며 "우려되는 점은 최소화하고 연구목적은 최대화 할 수 있도록 참여 연구진들이 각각의 병원 IRB(생명윤리위원회)에 문의해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지난해 무자격자의 대리수술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며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주장이 나오자 의료계는 의료진 및 환자 인권, 개인정보 보호 등을 우려하며 크게 반발했다. 하지만 경기도는 이달 도립의료원 산하 6개 병원 수술실에 CCTV를 설치했다.

때문에 ‘수술동영상을 활용한 지능형 수술 가이드 시스템 및 서비스 개발’ 사업 등을 통해 의사 개인은 물론, 병원들까지 수술동영상 촬영이 보편화되면, 의료계에선 이를 악용한 정책 등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조성우 교수는 “솔직히 아예 걱정되지 않는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간 국내 의료 관련 법과 정책이 시행되는 과정을 보면, 의료계에서 아예 선제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고도 생각된다”며 “의료기관에는 문서와 사진에 이어 영상 자료들이 쌓이고, 이러한 영상을 보다 싸게 많은 용량을 저장할 수 있는 장치나 기술들이 개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언제 어떻게 영상을 활용토록 하는 법이나 제도가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당장 내일 수술영상 저장 관련법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이렇게 뒤통수를 맞지 않기 위해선, 의료계가 선제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의사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필요한 수술동영상의 정의와 기준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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