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일원화’ 국회 토론회 열렸지만 의-한 입장차만 확인…‘국민건강’ 언급했지만 방법은 각각

의료일원화를 위한 대토론회가 열렸지만 의-한 간 입장차는 줄어들지 않았다. 의료계는 여전히 한의학이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한의계에서는 한의학에 대한 의료계의 이해 부족을 주장하고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윤일규 의원은 7일 오전 국회에서 ‘의료일원화를 위한 대토론회’를 개최했다.

한의협 최혁용 회장(좌), 의협 최대집 회장.

특히 이날 토론회는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과 대한한의사협회 최혁용 회장이 모두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의협 최대집 회장은 축사를 통해 “(의료일원화는) 미래세대를 대상으로 의대 단일 의학교육제도 도입을 위해 현 한의대를 폐지하고 의대로의 단일 의학교육을 통한 단일의사면허자 배출을 전제로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 회장은 “기존 면허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기존 면허자 및 재학생은 의료일원화 논의대상에서 배제하며 의료일원화 시행 후에도 기존 면허자는 변함없이 기존 면허와 면허범위를 유지하고 상호 영역을 침범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의협 최혁용 회장은 “의료일원화를 도입한 나라는 많지만 우리나라처럼 상호 배제적인 면허체계를 가진 나라는 없다”며 “이 때문에 국민건강을 위한 경쟁이 아닌 갈등만 커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의료일원화 토론 자체가 거부돼 왔지만 그나마 최대집 회장은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의료일원화가 시행될 수 있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의료일원화의 조건’을 주제로 발표한 의료리더십포럼 임기영 회장은 “의료일원화의 정의를 명확히 해야 한다"면서 "이해당사자들 각각의 입장을 고려하거나 당사자 간 합의를 중요시하면 반드시 실패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임 회장은 “무엇이 옳은 길인지, 무엇이 진실인지를 물어야 한다. 특히 국민과 사회에 옳은 길은 무엇인가, 학생들에게 옳은 길은 무엇인가가 중요하다”며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의료일원화의 가능성과 과제’를 주제로 발표한 서울대 보건대학원 조병희 교수는 의료일원화가 필요하지만 의료일원화 성공이 의-한 갈등의 끝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 교수는 의료일원화를 통해 ▲의사인력 증가와 경쟁 심화 ▲한방의 의학적 표준화 및 과학화, 증거기반의학 채택 압력 ▲전통 한의학 영역 축소 ▲통합의사들이 한의학을 멀리할 가능성 ▲통합과정에 소요되는 사회적 비용 등을 의료일원화가 초래할 수 있는 위험으로 꼽았다.

또한 외형상 집단 갈등은 종식될 수 있지만 집단 내 갈등 형태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으며, 통합의사제 도입 후에도 한방은 소멸되지 않고 의료계의 ‘약한 고리’에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 교수는 ▲한의사의 특수성에 대한 고려 ▲의사를 위한 한의학 연수과정 실시 ▲의-한 교류협력 활성화 ▲공동 커리큘럼 및 교재 개발 등 통합의학교교육의 표준화 ▲통합 담론 개발 등을 강조했다.

‘의료이원화체계 : 개선필요성과 방향’을 주제로 발표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건의료연구센터 윤강재 센터장은 ▲신속한 추진 ▲사회적 갈등 해결 원칙 ▲의-한-정 협의체 복원 후 논의 ▲교육일원화 우선 추진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 수행 등을 의료일원화를 위한 조건으로 꼽았다.

좁혀지지 않는 의-한 갈등

하지만 이어진 패널 토론에서는 의료계와 한의계 양측 참석자들 모두 기존 의-한 양 측 의견을 그대로 주장했다.

의협 성종호 정책이사는 “우리나라가 못살고 후진국일 때 의료인력이 부족해 전통의학을 통해 국민건강에 도움을 주자는 생각이 지금에 이른 것”이라며 “제도 발전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항상 세계화, 선진화를 이야기 하면서 왜 의료일원화 논의 때만 북한, 몽골 등 후진국 예를 드는지 모르겠다. 의료일원화도 선진국을 모델로 하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성 이사는 “(의료계는 교육일원화가 우선시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교육일원화만 봐도 의대는 최소 교수 수가 125명 정도고 수련병원도 500병상 이상이 돼야 하지만 한의대는 교수 수는 30명 수준인데, 이마저도 정규직인지 알 수 없고 수련병원 수준도 살펴봐야 한다”며 “질 차이가 많이 난다. 이런 부분도 고려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성 이사는 “한의학 교육이 한계에 이르렀다. 젊은 한의사들 절반이 해부학을 중심으로 침을 놓고 있다”며 “지금 한의학 교육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여부도 돌이켜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의학회 염호기 정책이사는 “현재 한의계에서 진료하는 환자들을 보면 대부분 정형외과 환자다. 한의사 수가 2만3,000명이라고 하는데 (이들이 진료하는) 외래환자의 다빈도 질병은 대부분 정형외과 관련이 있다”라고 말했다.

염 이사는 “실제 한의 영역은 의료분야에서 극히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의료일원화라고 하면 두가지 가치가 비슷해야 하는데 가치가 비슷하지 않은 것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논란을 키우는 것”이라며 “어느 부분에서 합쳐질 수 있는지부터 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염 이사는 의료일원화를 대하는 의료계, 한의계, 정부의 생각이 다르다는 점도 지적했다. 의료일원화를 의료계는 ‘한의대 폐지’로, 한의계는 ‘진료영역 확대’로, 정부는 ‘한의약 산업화’로 이해해 목적이 다르다는 것이다.

염 이사는 “의료일원화 당사자들이 근본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 국민건강, 환자안전 등을 염두에 둬야 의료일원화의 목적에 부합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한의계는 의료일원화가 한의 발전의 기회라는 점을, 의료계는 교육일원화를 통한 의사 수 증가 정도는 양보하고 수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한의계 참석자들은 한의학에 대한 이해를 강조했다.

한의협 손정원 보험이사는 “한의학에 대한 인식 자체가 매우 잘못됐다. 젊은 한의사 절반이 해부학을 기본으로 침을 놓는다고 하는데, 이는 이미 한의사들이 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진료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해부학 등을 양방만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이다. 허준 선생도 해부학을 했다”고 밝혔다.

손 이사는 “의료일원화가 한의사에는 이득이고 의사들에게는 손해라고 하는데, 이런 생각도 바꿔야 한다”면서 “의사는 의사답게, 한의사는 한의사답게 진료할 수 있게 해줄 때 의료일원화가 앞당겨 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한한의학회 한창호 정책이사는 “의료일원화는 20여년 전에도 논의했었던 내용이다. 이제는 국민건강 증진을 목표로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은지 생각해야 한다”며 “의사, 한의사를 떠나서 어떤 방법이 최선인지 다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보건복지부 이기일 보건의료정책관은 의료일원화를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천명했다.

이 정책관은 “의료일원화는 국민건강과 미래세대를 보고 추진해야 한다. 정부 역할의 중요성을 느낀다. 적극 추진할 것”이라며 “의료계, 한의계, 교육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등이 참여하는 관련 협의체를 구성하고 2년간 로드맵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이 정책관은 “아직 정부에서 결정한 것은 하나도 없다. 협의체를 통해 내용과 시기 등을 논의할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환자안전과 미래세대를 위한 최적의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