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대회 곳곳에 추모 물결…“정신과 아니었으면 환자 인권 말살하는 나쁜 의사란 말 들었을까”

진료 현장에서 동료를 잃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모습이다. 임세원 교수가 환자의 칼에 찔려 사망한 지 3개월이 지났지만 동료 의사들에게는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지난 11일 서울 서대문구 그랜드힐튼호텔에서 개최한 춘계학술대회는 임 교수를 잃은 동료 의사들의 슬픔과 아픔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신경정신의학회는 학술대회에 임 교수의 저서와 사진을 전시하고 영상을 상영하는 추모관을 설치했으며 춘계학술대회 포스터에도 임 교수의 모습을 담았다.

11일부터 12일까지 서울 서대문구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진행되는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춘계학술대회에 마련된 故임세원 교수 추모관.

또한 임 교수의 삶을 되돌아보고 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슬픔과 극복’이라는 별도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주제 발표를 맡은 동료 의사들은 생전 그의 모습이 떠오르는 듯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임 교수와 정신과 전공의 수련을 같이 받은 경희대병원 백종우 교수는 그를 “원칙적이고 다소 까칠해 보일 수 있지만 환자 앞에서는 잘 웃었다. 항상 전력투구하는 모습이었다”고 기억했다.

백 교수는 임 교수를 찌른 피의자가 참석하지 않아 재판이 오는 5월 1일로 연기됐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언론에는 조울증이라고 보도됐는데 그건 초기였고 지금 보면 조현병에 가까운 듯하다. 그가 여동생 집에서 위협적인 행동을 보여 경찰이 출동했었는데, 이때 치료를 받을 기회가 있었는데도 놓쳤다. 안타깝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피의자가 경찰에 한 진술 등을 보면 ‘병원에서 집을 머리에 심었다’, ‘3차 세계대전 주동자로 몰리고 있다’고 말하는 등 피해망상적인 증상을 보인다”며 “우리(정신과 전문의) 중 입원 치료가 필요한 환자인데도 입원시키지 못하는 경우를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백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임 교수의 유족은 그 누구도 비난하지 않고 안전한 진료환경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쉽게 치료받을 수 있는 사회가 고인의 유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며 “그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말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지난 11일 열린 춘계학술대회에서 ‘슬픔과 극복’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가졌다. 경희대병원 백종우 교수는 이날 심포지엄에서 故임세원 교수의 생전 모습을 회상하며 그의 업적을 설명했다.

마음드림의원 정찬승 원장도 “유족의 성숙한 대처는 폭력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경종을 울렸다”며 “폭력을 행한 환자의 마음까지 헤아리고 보살피는 큰 의사의 모범을 보여줬다”고 했다.

임 교수와 함께 강북삼성병원에서 근무한 오강섭 교수는 그의 희생정신을 계승하는 방안에 대해 발표하기 위해 단상에 올랐지만 “아직도 힘들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오 교수는 “가장 고통스러웠던 건 반(反)정신의학 정서다. 일부 환자와 보호자는 정신의학이 한국에는 필요하지 않다며 차라리 자신들을 위한 섬을 만들어 달라고 하기도 한다”며 “내가 내과 의사였으면 환자단체로부터 인권을 말살하는 나쁜 의사라는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밉다가도 아직 낫지 않은 환자라는 생각에 이해하려 노력한다”며 “한국자살예방협회에서 오는 5월 ‘임세원 아카데미’를 개최한다. ‘젊은 임세원’을 양성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승화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아직은 어려운 문제”라고 했다.

신경정신의학회 이동우 정책연구소장은 “오늘 심포지엄 주제가 ‘슬픔과 극복’인데 극복이 쉽지 않은 것 같다. 이겨내고 있지만 아직은 힘들다”며 “작가 박완서 씨는 슬픔은 극복하는 게 아니라 그냥 견디는 거라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견딜 힘을 키워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경정신의학회 권준수 이사장도 “훌륭한 동료 의사를 잃었다. 그리고 훌륭하고 품격있는 유족으로 인해 정신과 의사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이 바뀐 것 같다”며 “이제는 정신과 의사들이 답을 해야 할 때이다. 안전한 진료환경, 정신질환자의 차별 없는 진료를 뛰어넘는 운동이 돼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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