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태료·시정명령 받은 수련병원 94곳…전공의 근무 제한 방안 마련에 고심

수련병원들이 전공의 근무시간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 전공의 근무시간을 효율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제한하는 방법을 찾지 못해서다. 전공의법 시행으로 주당 근무시간이 80시간으로 제한됐지만 현장은 아직도 혼란스럽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월 전체 수련병원 244개소를 대상으로 수련환경평가를 실시한 결과, 38.5%인 94개소에서 위반 사례가 적발돼 과태료와 시정명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일주일 평균 1회 이상 유급 휴일을 부여해야 하는 규칙을 위반한 비율이 28.3%로 가장 많았으며 주당 80시간으로 제한된 근무시간 위반 비율이 16.3%로 뒤를 이었다.

복지부가 94개 수련병원에 부과한 과태료는 100만~500만원 수준이었으며 3개월 안에 지적된 사항을 시정하라고 했다.

지난 3월초 이같은 내용이 담긴 행정처분 통보 공문을 받은 수련병원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오는 6월초까지 전공의 근무시간 제한 방안 등을 마련해 시행해야 하지만 아직까지 적당한 방법을 찾지 못한 수련병원들도 많다.

전공의들이 근무시간 외에는 처방전달시스템(Order Communication System, OCS)과 전자의무기록(Electronic Medical Record, EMR)에 접속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방법을 가장 많이 활용하고 있다.

전공의 OCS·EMR 접속 차단했지만 부작용에 고심하는 병원들

과태료 300만원을 부과 받은 A수련병원도 전공의들이 근무시간과 당직 시간 외에는 병원 전산시스템에 아예 접속하지 못하도록 차단하기로 했다.

하지만 전산시스템 접속 차단 후 부작용이 발생해 다시 원상 복구하는 수련병원들도 있다. 근무 시간에 미처 작성하지 못한 기록들이 쌓이거나 전공의의 아이디를 공유해 대리처방을 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이같은 문제 때문에 B수련병원은 근무시간이 지난 전공의가 전산시스템에 접속하려면 사유를 입력하도록 했으며 EMR 수정도 가능하도록 했다. 이 수련병원은 과태료 500만원을 부과 받은 곳이다.

주 1회 휴일 부여 기준 등을 위반해 과태료 100만원 처분을 받은 C수련병원은 전공의들이 근무시간 외에도 OCS과 EMR에 접속할 수 있게 했다. 단, 신규 처방이나 작성은 막고 열람만 가능하도록 했다. 또 근무 시간에 작성하지 못한 일부 기록은 작성할 수 있도록 열었다.

C수련병원 관계자는 “지난해 수련환경평가위원회 위원이 나와 현지조사를 실시할 때 OCS 처방 시각과 EMR 작성 시각을 일일이 확인하더라. 심지어 간호기록도 확인해서 근무시간이 아닌 전공의에게 연락을 하거나 처방을 받았다는 사실을 찾아냈다”며 “응급상황이 발생해 처방을 해야 할 경우를 대비해야 하는데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해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공의 근무시간 제한 후 생긴 파열음

전공의 근무시간 제한은 또 다른 파장을 일으켰다. 전임의(펠로우)와 교수들의 업무량이 대폭 늘면서 곳곳에서 파열음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한 대형병원에서는 전임의가 된 후에도 전공의 시절에 하던 업무를 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지자 관련 업무를 4년차 전공의에게 내리자는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전공의들이 강하게 반발해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공의를 동반한 회진을 줄이는 사례도 생기기 시작했다. 모 수련병원 내과는 전공의 동반 회진을 주 2회로 줄이고 나머지는 교수나 전임의 단독으로 회진하고 있다.

한 수련병원 수련교육부장은 “전공의 근무시간이 대폭 줄면서 전임의와 교수들의 업무량이 급증했다. 교수들은 전공의들이 근무시간 내에 일을 끝낼 수 있도록 회진, 교육, 수술 시간 등도 조정해줘야 한다”며 “교수들도 이틀에 한 번은 당직을 서는 과도 있다”고 말했다.

레지던트 수련을 포기하려 했던 인제대 서울백병원의 상황이 이해가 된다고 말하는 수련교육 담당자들도 있었다.

모 병원 수련교육 담당자는 “현재의 인력으로는 전공의 근무시간을 맞추지 못한다. 전공의 근무시간을 제한하면 진료의 틀이 깨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전공의를 받지 말고 전문의와 다른 지원 인력만으로 진료하는 하고 싶다는 병원들이 꽤 있더라”고 말했다.

“업무 공백 메울 인력 없어 풍선효과만”

정부가 수련교육 현장의 혼란을 초래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전공의 근무시간만 제한하고 업무 공백을 메울 수 있는 대체인력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대한내과학회 엄중식 수련이사는 “환자를 줄이지 않는 이상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한다. 전공의가 못한다면 전임의나 교수, 다른 지원인력이 해야 하는데 이 부분이 조정이 되지 않고 있다”며 “전공의 정원을 줄이는 정책을 아무런 근거도 없이 추진하면서 전공의 근무시간도 줄여버렸다. 그 공백을 누군가는 메워야 하는데 그 대안을 아무도 제시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엄 이사는 “내과학회가 대안으로 제시한 입원전담전문의(Hospitalist)제도 시범사업만 하고 본사업을 못하고 있다. 수가로 보전이 안되니 아무도 지원을 하지 않는다”며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튀어나오는 풍선효과 현상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 통합적이고 포괄적인 계획을 수립하지 않은 채 일을 추진하니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재원이 얼마나 되고 시스템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를 논의해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의료의 틀, 패러다임이 바뀌어가고 있는데 그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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