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병원, 하루 외래 환자 1만1000명 돌파…“상급종합병원들 연일 기록 갱신 중”
고대안암병원 박종훈 원장 “수익 늘어 좋다고? 환자 쏠림 너무 심각해 불안하다”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으로 인한 상급종합병원 환자 쏠림 현상이 심각하지 않다고 했지만 의료현장의 목소리는 달랐다.

상급종합병원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환자들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상급종합병원을 찾는 환자가 급증하면서 MRI·CT 검사를 받는데 한 달 이상 걸리고 채혈 검사를 받는데도 한 시간 정도 걸리는 등 의료현장 곳곳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다. 환자 수 급증이 반갑지만은 않다는 게 상급종합병원의 입장이었다.

대한병원협회가 5일 서울드래곤시티에서 개최한 ‘Korea Healhcare Congress 2019’(KHC 2019)에서는 복지부의 진단과 달리 상급종합병원 환자 쏠림 현상이 심각하며 이로 인해 다양한 문제들이 파생되고 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빅5병원’ 중 한 곳인 세브란스병원은 선택진료비 폐지, 상급병실료 급여화 등 보장성 강화 정책이 시행된 이후 연일 기록 갱신 중이라고 했다. 이미 하루 평균 외래 환자 수가 1만1,000명을 돌파했다.

세브란스병원 이진우 진료부원장은 “선택진료비가 없어지고 2인실까지 건강보험이 적용되면서 상급종합병원들은 진료수익이나 진료량 면에서 연일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고 한다”며 “우리도 마찬가지다. 연일 병원을 찾는 환자가 증가하면서 지금은 하루에 1만1,000명이 넘는 외래 환자를 감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부원장은 “환자가 늘면서 주차난이 심각해졌으며 CT·MRI 촬영을 하는데 한달 가까이 걸린다. 채혈하는데도 30분에서 1시간은 기다리는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며 “각 부서에서는 연장 근무에 따른 피로도가 증가하면서 추가 인력을 요청하는 서류가 하루에도 10건 이상씩 올라오고 있다”고 했다.

이 부원장은 “이런 상황에서 인력과 시설을 늘리는 게 능사인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고가인 CT·MRI 검사에 대한 요구도 증가하고 있어 추가로 사는 게 맞는지, 외주로 돌리는 게 맞는지도 고민할 수밖에 없다”며 “이런 상황이 얼마나 계속될지 예측도 불가능하기에 어떻게 잘 관리해 나가느냐가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이 부원장은 “이런 문제들을 깊이 인식하고 상생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정책 입안자가 이 부분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게 더 큰 문제”라며 “복지부는 상급종합병원 집중화 관련 지표가 나오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는데 현실을 모르는 것 자체가 굉장히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고려대안암병원의 사정도 세브란스병원과 비슷하다고 했다.

고대안암병원 박종훈 병원장은 “대학병원 원장들의 공통된 고민이다. 예상했던 대로 3차 대형병원 환자 쏠림이 매우 심각하다”며 “지표상으로는 그렇게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병상 가동률이 92%에서 94%로 증가했는데 1~3% 증가한 게 뭐가 심각하냐고 할 수 있지만 90% 병상가동률에서는 엄청난 파급 효과를 가져온다”고 지적했다.

박 병원장은 “수익이 늘어 좋겠다고 하는데 굉장히 불안하다. 그냥 엄살이 아니다. 좋지 않은 방향으로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며 “이런 식이면 대형병원은 감당할 수 없이 비만해 진다. 건강하지 못한 운영 상태가 될 것이다. 인건비는 폭증하고 그러면 더 많은 진료를 요구하는 패턴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 병원장은 “결국 의료비가 급증하고 의료전달체계 왜곡은 더 심해질 수 있다”며 “고민이 많다”고 했다.

“의료생태계 고민 결여된 문재인 케어”

명지병원 이왕준 이사장은 “보장성 강화의 핵심이 상급종합병원의 문턱을 낮추는데 있다. 100% 환자 쏠림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양극화 공급체계를 심화된다”며 “더 심각한 건 환자 쏠림뿐만이 아니라 간호 인력 등 모든 의료자원 쏠림 현상이다. 중소병원 등은 모두 인적 자원 고갈 현상을 겪는다. 의료생태계가 밑에서부터 고사되기 시작한다”고 우려했다.

이 이사장은 “스테로이드로 현상을 유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현재의 보장성 강화 정책은 스테로이드 정책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연세대 보건대학원 병원경영학과 이상규 교수는 “문재인 케어에서 가장 회의적으로 보는 부분은 의료산업 생태계에 대한 고민이 결여돼 있다는 점이다. 의료산업생태계에는 대학병원뿐만 아니라 중소병원과 의원 등 다양한 주체들이 있다”며 “지금 대학병원이 돈을 잘 벌고 있지만 수익성에 매몰돼 혁신성을 잃어가고 있다. 쇠퇴하는 생태계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의료산업 생태계가 건강하려면 개별 산업 주체들이 건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병원 박진식 이사장은 “시간이 지나면 지역 의료접근성이 무너지고 사회가 부담해야 하는 의료비용은 점점 증가할 것이다. 의료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대학병원에 입원전담전문의 1명이 생기면 중소병원 의사 1명이 없어진다. 환자들이 적정하게 배분돼 있는가를 함께 따져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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