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건 대학 마이클 렉트 교수, 환자 중심의 치료효과 평가지표 개발

전혈부터 시작해 혈장 유래 응고인자를 거쳐 유전자재조합 혈액응고인자까지 혈우병 치료제의 발전은 쉼없이 진행되어 왔지만, 치료제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사용된 평가지표들은 늘 의료진 중심 사고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최근 3~4년 사이 투여횟수 감소, 피하주사제 개발과 같은 치료 혁신이 지속되며, 혈우병 치료에서도 환자의 삶의 질 개선이 중요한 치료 목표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오리건 보건과학대학 발달장애연구소의 마이클 렉트 교수(소아혈액종양)는 이 점에 주목했다. 의료진이 출혈 빈도, 통증 정도, 결근이나 결석의 빈도 같은 지표들을 중심으로 혈우병의 치료 성과를 판단하다 보니 실질적으로 환자 개개인에게 중요한 치료 목표를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마이클 렉트 교수는 지난 2년간 혈우병 환자의 맞춤치료를 가능케 할 환자 중심의 GOAL-Hem 지표를 직접 개발, 2018년 평가지표로서의 타당성 연구까지 완료했다.

본지는 지난 19일 이 새로운 평가지표를 소개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마이클 렉트 교수를 만나 GOAL-Hem 지표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개발 경위 및 활용 방안 등을 들어봤다.

오리건 보건과학대학 발달장애연구소 마이클 렉트 교수

- GOAL-Hem 지표란 무엇인가.

GOAL-Hem은 환자가 개인의 치료목표를 설정하고, 개인이 설정한 치료 목표 달성 여부∙수준을 기반으로 혈우병 치료효과를 판단하는 새로운 환자 중심의 평가지표다.

기존 평가지표가 주로 임상 효과에 초점을 맞췄다면, GOAL-Hem은 환자가 치료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개인의 목표를 기반으로 '환자 피드백'에 초점을 맞췄다.

- GOAL-Hem 지표 개발 경위는.

혈우병 치료는 1800년도 중반 전혈을 그대로 수혈하는 형태로 시작해 혈장 유래 혈액응고인자를 거쳐 수많은 사망자와 감염자를 발생시키고 나서야 1990년대 들어 유전자 재조합 치료제가 개발됐다. 이후 최근 3~4년 사이 과거 대비 더 오랜 시간 체내에 머물 수 있는 약물이 개발돼 투여횟수가 줄어들었으며, 정맥주사가 아닌 피하주사를 통해 투여할 수 있는 약물들도 개발되는 등 혁신적인 발전을 이뤘다.

하지만 지금까지 여러 혈우병 치료제 개발에 참여하면서 지켜본 바, 치료제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측정했던 내용은 의사가 생각했을 때 중요한 지표들이었다.

여러 가지 좋은 치료제들이 많이 등장하고 이러한 치료제들이 임상의나 연구자들이 생각하는 중요한 지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어느 정도 파악됐다면, 이제는 환자 본인과 환자 가족들에게 더 중요한 지표는 무엇인지, 치료제가 그 지표 달성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돼 연구를 진행하게 됐다.

- 그렇다면 GOAL-Hem 지표는 어떤 내용으로 구성돼 있는가.

GOAL-Hem은 기본적으로 환자보고 결과(Patient-Reported Outcomes, PRO)의 새로운 방법이다.

먼저 환자 본인에게 ▲질환의 치료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그것들을 요즘 어느 정도 수준까지 해내고 있는가 ▲치료를 받은 후에는 얼마나 더 잘할 수 있길 바라는가와 같은 일련의 질문을 진행한다.

이후 답변을 토대로 환자가 자신이 설정한 목표(Goal item)에 대해서 현재의 상태는 어느 정도 수준인지 평가한 후, 어떻게 바뀌면 개선이라고 볼 것인지, 어느 정도 상황이 악화라고 판단할 것인지 등 스스로 점수를 설정한다.

예를 들면, 혈우병으로 인해 슬관절에 통증이 있는 환자라면 '지금보다 편하게 잘 걷고 싶다'라는 목표에 대해 ▲이틀 동안 1마일을 걷는 현재 상태는 -1점을 기준으로 잡고 ▲하루 1마일이란 목표를 0점 ▲그보다 더 개선했을 경우를 1~2점 ▲악화됐을 경우를 -2점으로 설정해 6주와 12주차 치료 결과를 측정한다.

흥미로운 점은 환자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원하는 목표가 혈우병과 동떨어진 경우도 있다는 점이다. 그런 경우 의료진은 그에 대한 평가에 도움이 될 만한 중재 목표들을 제공하기도 한다.

- 환자가 자신의 치료 목표를 직접 설정하고 거기에 맞는 치료효과를 평가한다는 점은 흥미롭다. 하지만 혈우병 치료의 임상적 치료효과를 알아보는 지표로서는 부족해 보인다.

지적대로 GOAL-Hem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러나 이를 보완적 도구로 활용하게 되면 환자 개개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이 생기는 것이다.

기존에 사용하던 평가 도구들은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환자들의 관절 가동 범위, 출혈 빈도, 순응도, 결근율 및 출석률 등을 측정하는 지표도 있고, 환자가 현재 삶에 얼마나 만족하는지 확인하는 지표도 있다.

여기에 GOAL-Hem을 함께 활용한다면 ▲의학적인 치료효과 평가지표 ▲환자의 심리, 사회적인 상태에 대한 평가지표 ▲일상생활 목표 달성에 관한 평가지표 등이 다 갖춰지게 돼 환자가 현재 어떤 치료 결과를 얻는가에 대해 보다 완전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 경험상 GOAL-Hem의 장점은 과거보다 환자들을 더 잘 알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반면 GOAL-Hem의 단점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한국에 방한해서 혈우병을 치료하고 있는 전문의들을 만나 보니 훨씬 바쁜 진료환경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이런 진료 시스템이라면 GOAL-Hem을 본격적으로 적용하기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GOAL-Hem과 관련된 환자 인터뷰를 꼭 의사가 해야 할 필요는 없다. 간호사나 사회복지사 등 GOAL-Hem에 대해 교육받은 의료인력이 인터뷰를 진행해도 무방하며, 실제 GOAL-Hem의 타당성 검증 연구도 간호사 한 사람이 모든 환자들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일반적으로 최초 환자 인터뷰는 20~30분, 후속 인터뷰는 10~15분 정도 시간이 필요하고 숙련될수록 시간이 단축됐다.

- GOAL-Hem 타당성 검사에서 얻은 결과는.

우리가 진행한 첫 번째 연구는 GOAL-Hem을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연구였다.

▲환자 인터뷰에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지 ▲환자들에게 있어 중요한 개선점과 변화를 GOAL-Hem이 충분히 잡아낼 수 있는지 ▲환자들이 측정하는 변화의 정도와 의사들이 측정하는 변화의 정도가 어느 정도 일치하는지 평가했다.

연구 결과, GOAL-Hem이 혈우병 환자의 치료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에 대한 변화 정도를 측정하는 것이 가능하며, 충분히 사용할 만한 타당성이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또한 지난 2년 동안 GOAL-Hem을 활용한 연구 결과들을 국제적인 저널에 몇 편 게재했다.

이번 방한 역시 이런 논문들을 접한 한국의 혈우병 전문의들이 관심을 가지고 초청해 임상과 연구에 어떻게 GOAL-Hem을 접목할 수 있는지 정보를 공유하고자 방한하게 된 것이다.

- GOAL-Hem에 대한 한국의 혈우병 전문의들 반응은.

새로운 측정 방법에 대해 상당히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느꼈다. 실제로 한국의 전문의들에게 이 평가지표가 어떻게 설계됐는지와 임상연구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필요한 타당성 검증이 완료됐다고 설명했을 때 호응을 보였다.

추가적으로 협력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내비쳐, 한국에서도 임상과 실제 연구 환경에 접목하고자 하는 의지가 높을 것으로 생각된다.

- 미국에서는 GOAL-Hem을 얼마나 사용하고 있나.

아직 진료환경에서 본격적으로 사용을 시작했다고 말하기는 이르다. 미국 혈우병 센터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곳은 없지만, 주요 임상연구에는 반영되고 있다.

이러한 임상연구는 미국 전역의 혈우병 센터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임상연구에 참여하는 의료진 및 환자들은 GOAL-Hem 활용 후 중요성을 인식하게 될 것이며, 향후 미국 전역에서 GOAL-Hem의 채택과 도입의 발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마지막으로 한국의 혈우병 치료 전문의에게 조언한다면.

지난 이틀간 만나본 한국 전문의들은 유전자 치료나 비 응고인자 제제에 대한 연구 등에 참여하는 등 혈우병 치료에서 최첨단을 걷고 있었다.

그러한 연구 결과들이 전 세계적으로 일반화되고 공유 가능하도록 국가간 협력에 조금 더 박차를 가하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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