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수막염·뇌염 원인 1시간 만에 진단하는 ‘필름어레이 검사’
지난해 9월 건강보험 적용됐지만 원가보다 낮은 수가로 검사 중단 사태

뇌수막염과 뇌염의 원인을 1시간 만에 진단하는 검사가 급여권 진입 이후 사장될 위기에 놓였다.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가 때문이다.

핵산증폭검사(polymerase chain reaction, PCR)로 분류되는 ‘필름어레이(FilmArray)’ 검사는 종류에 따라 최대 일주일까지 걸리던 뇌수막염/뇌염 원인 진단검사를 1시간으로 단축시켜 ‘획기적’이라는 평을 받았다. 이에 국내에서 신의료기술로 인정받은 지 1년 만에 빠르게 급여권에 진입했지만, 그와 동시에 빠르게 임상현장에서 사라지고 있다.

일주일 지나야 진단 결과 나오는 기존 검사법

세균성, 진균성, 바이러스성으로 나뉘는 뇌수막염은 그 원인에 따라 치료방법도 달라진다. 바이러스성 뇌수막염은 특별한 치료 없이 열, 두통 등 증상 완화 요법만으로 충분하다. 반면 세균성 뇌수막염은 항생제를 투여해야 한다. 세균성 뇌수막염은 하루 이틀 사이에 급격하게 증상이 악화되면서 사망할 수 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소아 중증 세균성 감염증의 5% 정도가 세균성 뇌수막염이다.

뇌수막염 원인을 빠르게 진단하면 그만큼 정확하고 신속한 치료가 가능하다. 이는 뇌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기존 검사법은 짧아야 1~2일, 길면 일주일 이상 걸려야 진단 결과가 나온다. 또한 통상 검체 여러 개를 모아서 검사하는 시스템이어서 진단검사 요청 시기를 잘못 맞추면 결과가 나오기까지 더 오래 걸리기도 한다.

서울대병원 신경과 이순태 교수는 “기존 바이러스 검출 검사인 PCR로 진단 결과가 나오기까지 일주일 정도 걸린다. 진단검사 접수와 검사하는 시간이 맞지 않으면 그 이상 걸릴 수도 있다”며 “그 사이 환자는 항바이러스제를 계속 쓰든지 아니면 기다렸다가 검사 결과가 나온 뒤에 약을 쓰든지 해야 한다. 진단검사 결과가 늦게 나오면 불필요한 치료가 이뤄지거나 치료가 지연되는 일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뇌염 같은 경우 손상되면 회복이 잘 안된다. 초기에 빨리 치료해야 하는 질환 중 하나로 빠른 바이러스 검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뇌수막염과 뇌염의 원인을 1시간 만에 진단검사할 수 있는 FILMARRAY ME Panel.

뇌수막염 원인 1시간 만에 진단하는 검사

이같은 문제를 해결한 게 비오메리으(bioMérieux)의 필름어레이 검사다. 필름어레이 검사는 환자 1명당 뇌수막염/뇌염 진단검사를 개별적으로 실시할 수 있으며 검사 결과도 1시간 이내에 나온다. 또한 검체 1개당 카트리지 1개를 사용하며 장비도 하나만 있으면 된다. 기존 검사법은 검체 오염 방지를 위해 전처리 과정에 필요한 장비를 별도 공간에 설치해 사용해야 했지만 필름어레이는 검체를 넣은 카트리지를 장비에 넣기만 하면 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등록된 필름어레이 패널은 4개로, 뇌수막염과 뇌염 원인을 찾아내는 ME((Meningitis/Encephalitis) 패널과 장염을 검사하는 GI(Gastrointestinal) 패널, 호흡기질환 원인을 찾는 RP(Respiratory) 패널, 패혈증을 진단하는 BCID(Blood Culture Identification) 패널이다.

이번에 논란이 된 검사는 뇌수막염/뇌염 검사다. 카트리지 1개인 필름어레이 ME 패널은 검사 한 번에 뇌수막염/뇌염의 원인이 되는 세균 6종류, 바이러스 7종류, 진균 1종류를 한 시간 안에 진단한다. 원인을 찾기 위해 여러 번 검사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이 검사는 지난 2017년 9월 한국에서 신의료기술로 인정받았으며 같은 해 11월부터 비급여로 의료 현장에 도입됐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8년 7월 행정예고를 거쳐 9월부터 건강보험이 적용됐다.

재료비 원가도 안되는 수가…한 번 검사할 때마다 6만원 적자

문제는 건강보험 수가였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1시간 이내에 진단검사 결과를 도출하는 필름어레이 검사의 실효성 등을 인정해 신속가산료까지 신설했다. 관련 고시에 따르면 통합자동진단키트(필름어레이 검사)를 이용해 검사처방부터 결과보고까지 4~6시간 이내 이뤄질 경우 30%가 가산된다.

신속가산 30%가 적용된 필름어레이 검사(뇌수막염/뇌염) 수가는 9만3,000원 정도다. 종별 가산이 추가로 적용되면 수가는 최대 12만원 정도다.

필름어레이 검사 비급여 가격은 25만~35만원 정도였으므로 급여권에 진입하면서 그 가격이 절반 이하 수준으로 떨어진 셈이다.

통상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이용량이 늘어 비급여보다 수가가 낮게 책정되더라도 의료기관에 어느 정도 수익은 생겼다. 하지만 수가가 재료비조차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필름어레이 검사의 경우 패널 원가보다 수가가 낮게 책정됐다는 게 비오메리으 측 입장이다. 비오메리으코리아는 프랑스 본사로부터 패널은 10만원에 들여와 의료기관에는 18만원 정도에 공급하고 있다. 대리점을 통해 검사 장비를 대여하고 패널을 판매하는 시스템이기에 18만원이 공급할 수 있는 최저가라고 했다.

검사에 필요한 패널을 18만원에 사야 하는 의료기관은 한 번 검사를 할 때마다 최소 6만원은 적자를 볼 수밖에 없다. 물론 진단검사에 드는 인건비나 의사업무량 등에 대한 보상도 없다.

급여화 이후 검사 중단한 병원들…패널 판매량 ‘0’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필름어레이 검사 급여 적용이 행정예고된 7월부터 패널 판매량이 급감하기 시작했다.

비오메리으코리아에 따르면 2018년 6월 784 파우치(pouch)가 판매됐지만 7월에는 330 파우치로 반토막났다. 1 파우치는 환자 1명을 검사할 수 있는 패널이다. 8월에는 판매량이 79 파우치로 줄었으며 급여 적용 이후인 9월에는 60 파우치, 10월에는 30파우치로 줄더니 급기야 12월에는 하나도 판매하지 못했다.

2018년 6월 기준 전국 25개 의료기관에서 필름어레이 검사를 했지만 현재는 필름어레이 검사를 하는 의료기관을 찾기 힘들어졌다. 1시간 이내에 뇌수막염이나 뇌염의 원인을 진단할 수 있는 의료기관이 사라진 셈이다.

자료제공: 비오메리으

양산부산대병원도 그중 하나다. 양산부산대병원은 지난 2018년 1월 필름어레이 검사를 도입해 뇌수막염과 뇌염이 의심되는 환자들에게 적용해 왔다. 하지만 급여화된 2018년 9월부터 검사를 중단했다. 검사를 한번 할 때마다 최소 6만원씩 적자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양산부산대병원 소아청소년과 남상욱 교수는 “중추신경계 감염은 뇌가 손상되면 영구적인 후유증 또는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필름어레이 검사가 특히 유용하다”며 “신속하게 결과를 알 수 있어 진단도 빨라진다. 척수액 검사 소견으로 원인균 추정이 힘든 환자의 진단에 결정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원인균이 확인되면 즉각적인 치료방침을 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급여화 이후 필름어레이 검사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고 진단에 걸리는 시간이 다시 늘었다고 했다.

남 교수는 “필름어레이 검사를 중단한 이후 진단이 불가능하거나 추정진단으로 치료를 해야 하는 경우가 늘어났다”며 “이런 경우 환자의 임상상태나 경과관찰, 재검, 추가검사 등을 통해서 진단과 치료계획을 새로 세워야 한다. 결과적으로 진단율, 진단에 걸리는 시간과 적정한 치료까지 걸리는 시간, 전체 입원 기간 증가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남 교수는 “필름어레이 검사는 이전 검사보다 정확한 진단율 증가, 진단까지의 소요시간 단축, 원인균 검출률 증가, 빠른 적정치료 개시, 입원 기간 감소 등 여러 가지로 필요성이 높은 검사”라며 “한마디로 진료의 질을 크게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검사”라고 말했다.

필름어레이 검사를 도입하려다 급여화 이후 포기한 의료기관들도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필름어레이 검사를 도입하려고 장비까지 들여놨지만 10만원대로 수가가 정해지면서 도입을 포기했다.

서울아산병원 진단검사의학과 성흥섭 교수는 “장비는 갖다 놨지만 검사를 못하고 있다. 기존에도 임상에서 요구가 많았지만 현재 수가로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현장에서는 패널 공급가가 10만원이 넘으면 검사를 할 수 없다”며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환자들이다.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데 할 수 없어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성 교수는 “특히 필름어레이 검사는 환자 1명씩 검사할 수 있지만 다른 기존 검사는 검체를 모아놨다가 돌린다. 한명씩 돌리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라며 “기존 검사를 필름어레이 검사로 대체하려는 기관이 늘고 있었지만 수가가 너무 낮게 책정돼 못 쓰게 된 상황이다. 급여화 이후에는 비급여로 필름어레이 검사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15분 만에 결과 나오는 플랫폼도 개발 중…한국엔 도입하기 어려울 수도”

필름어레이 패널을 공급하는 비오메리으코리아 측은 공급가를 낮추기는 힘들다는 입장이다.

비오메리으코리아 홍지혜 Medical Affairs Director는 “필름어레이 패널 수입 원가가 10만원이다. 마진도 없이 의료기관에 납품할 수는 없다”며 “최근 일본에서 필름어레이 검사가 급여화됐는데 수가가 17만원 정도다. 그런데 한국과 다르게 일본은 의료기관이 검사 장비를 구입한다. 장비는 1대당 4,000만원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과 의료환경이 다른 한국은 장비를 구입하지 않고 대여한다. 그래서 장비를 빌려주고 패널을 판매하는 대리점을 두고 있다”며 “현재 공급가인 18만원 이하로 패널을 공급해야 한다면 대리점을 운영할 수 없기에 구조조정해야 한다”고 했다.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인 그는 무엇보다 환자들이 빠르게 진단받을 수 있는데도 한국 의료현장에서는 이를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필름어레이 폐렴 패널도 나왔다. 그리고 15분 만에 진단검사 결과가 나오는 플랫폼도 개발하고 있다. 이 제품이 나오면 응급실에서 바로 원인을 진단할 수 있다”며 “하지만 수가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면 이런 기술들은 한국에 도입하기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당장 뇌수막염/뇌염 진단을 빨리 받을 수 있는데도 환자들이 이를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며 “회사 차원에서 최선을 다해 해결해보겠지만 최악의 경우 키트(패널) 자체를 한국에서는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대한진단검사의학회 보험이사이기도 한 성흥섭 교수는 “이 검사의 유용성을 알기에 심평원도 신속가산 30%를 신설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 수가는 의료 현장에서 필름어레이 검사를 하기에 너무 낮게 책정됐다”며 “급여 고시에서 같은 그룹으로 묶여 있는 다른 검사들이 있어서 필름어레이 검사 수가를 더 인상해주기 힘들다면 신속가산을 인상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진단검사의학회와 대한소아과학회는 필름어레이 검사 수가 조정을 위해 조만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행위조정신청을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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