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형곤의 醫藥富業

미국 출장 중이던 지난 4일 응급의학과 선배 의사로부터 황망한 메세지를 받았다.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NMC)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사망했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믿지 못했다. 늘 편한 복장에 약간은 어눌하고 사투리가 섞인 억양, 안경 너머로 언뜻 보이는 날카로운 눈빛…그의 평소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사인은 과로와 스트레스에 기인한다고 알려진 급성심장사라고 한다. 가슴이 아프다. 게다가 연락이 없어도 늘 그러려니 했다는 유가족의 말은 베인 상처에 소금을 뿌린 듯한 쓰라림으로 다가온다.

송형곤 젬백스&카엘 대표이사

윤한덕 센터장은 전남대병원에서 응급의학과 수련 후 전임의 과정을 마치고 2002년 중앙응급의료센터가 생길 당시부터 지금까지 근무해 왔다. 실제로 중앙응급의료센터가 출범한 초창기에는 응급의학과 의사들 사이에서 환자 진료를 하지 않는 중앙응급의센터가 꼭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회의가 많았다. 또한 그 당시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수가 그리 많지 않아 대학병원 교수로 임용되기에 어려운 시기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 센터장은 그 역할과 위상이 모호한 중앙응급의료센터의 응급의료기획팀장으로 합류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응급의학과 동료나 선배 의사들과 마찬가지로 그에게 칭찬과 격려를 하지 못했다. 잘 안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는 죽을 힘을 다해 중앙응급의센터를 16년 이상 이끌어 왔고 지금의 위상을 갖게 했다. 누가 뭐라고 하든 그가 대한민국 응급의료체계를 확립한 장본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4년 전 중앙응급의료센터 전원조정센터 당직 전문의로 참여하면서 그와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됐다. 평상시 그의 머릿속은 늘 응급의료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떻게 하면 한정된 가용 자원으로 보다 더 많은 응급환자들이 보다 더 수준 높은 응급의료 혜택을 보게 할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가 힘들어 했던 것이 과연 물리적인 업무의 양이었을까? 절대 그렇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는 응급의학과 의사들에게는 의사이기 전에 공무원이 되어버린 사람으로 인식되었고,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세상물정 모르고 관료사회를 모르는 이상주의 의사로 알려졌다.

응급의료체계 개선을 위한 회의나 공청회를 가보면 응급의료체계에 대한 전문가라고 하는 대학 교수들은 대형병원 입장을 대변하고, 중소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들도 자신이 속한 병원의 이익을 위한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누구도 응급의료체계를, 환자를 위한 하나의 큰 그림으로 이해하려는 사람이 없다. 윤 센터장을 제외하고는.

또한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이나 정책을 결정하는 보건복지부 관료들, 예산을 책정하고 집행하는 기획재정부 관료들 누구도 응급의료체계를 치안이나 소방과 같은 사회안전망으로 보지 않고 고비용 저효율의 돈 먹는 하마라고 생각하고 있다. 윤 센터장처럼 응급의료를 사회간접자본(Social Overhead Capital, SOC)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관료는 없었다.

그는 이러한 괴리감에 힘들어 했다. 결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아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직 살아야 할 많은 날을 두고,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먼저 갔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이루려 했던 환자를 위한 한국형 응급의료체계를 이제는 이루어야 한다. 시간이 걸리고 많은 돈이 들더라도 이제는 해야 한다. 그것이 윤 센터장의 옳은 바람이었을 테니까….

윤 선생, 도와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부디 좋은 곳에서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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