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기자의 캄보디아 탐방기'②…5세 이하 아동의 32%가 만성적 영양실조에 시달려

점심 시간이 되자 어디선가 아이들이 몰려왔다. 400명 남짓 수용할 수 있는 식당은 금세 아이들의 웃음 소리로 소란스러워졌다. 책상과 의자 사이사이를 넘나들며 한층 신난 아이들의 손에는 제각기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처음에는 사탕수수 주스라도 마시며 오는 길인가 했다. 길거리에서 판매하는 음료를 비닐봉지에 담아 마시는 것이 캄보디아에서는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애들이 점심 먹기 전에 뭐라도 마시고 오나요? 다들 비닐봉지를 들고 오네요” 주변에 음료수 파는 곳이 있다면 찾아가야지 하고 던졌던 내 질문에 현지 NGO 직원은 이렇게 답했다.

“비닐봉지요? 그거 먹다 남은 밥, 집에 싸가지고 가려고 하는거에요. 몇몇 애들은 여기서 나오는 한끼로 하루를 버티고 있거든요.”

시엠립 도심에서 차로 1시간을 달리면 ‘프놈 끄라운’이란 마을에 도착할 수 있다. 크메르어로 ‘산 아래’라는 뜻을 가진 이 마을은 말 그대로 산을 중심으로 형성된 동네다. 시엠립에서도 대표적인 빈민촌으로 손꼽히는 프놈 끄라운은 마을 건물 상당수가 판자나 나무로 위태롭게 지어졌고, 주민 상당수가 어업이나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아이들도 예외는 아니다. 지독한 가난이 아이들의 일상을 위협한 지 오래다. 12살이 채 지나기도 전에 상당수의 아이들이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학교를 포기하고 농장이나 어촌에 나가 일한다.

시엠림 다일공동체 밥퍼(무상급식사업)에 온 프놈 끄라운 아이들

가난의 굴레는 교육의 기회와 의료서비스 접근성을 앗아갔다. 심지어 먹을 것도 빼앗았다.

캄보디아의 영양실조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인구의 1/3이 학살당한 킬링필드를 겪으며 캄보디아의 농업 생산량은 극감했다. 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캄보디아는 세계굶주림지수(GHI)에서 ’극단적으로 위급한‘ 나라에 포함됐다. 2010년에 들어 국가 내 농업 생산량이 증가해 GHI 지수가 ’심각한‘ 상황으로 호전됐으나 오늘날까지도 5세 이하 아동 중 32%가 만성적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

또한 열량의 섭취는 충분하나 비타민과 미네랄, 아연 등의 섭취가 충분하지 못한 ’숨은 기아(Hidden Hunger)’는 빈민층은 물론 중산층에게도 악영향을 주고 있으며, 영양실조는 캄보디아 내 아동 사망의 약 45%에 기인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좌) 밥퍼에 온 아이들, 곳곳에서 비닐봉지에 밥을 담고 있었다 (우) 미리 식판에 퍼넣고 아이들에게 일일히 나누어준다

실제로 프놈 끄라운에 사는 아이들의 발육 상태는 좋지 못했다. “너 몇 살이니?”라는 질문에 10살 아니면 12살이라고 대답하는 친구들의 대다수가 키가 작거나, 왜소한 편이었다.

교육의 기회나 의료 서비스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먹을 것도 풍족하지 않은 프놈 끄라운에 다일공동체가 들어온 것은 2006년 경이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다일공동체 시엠립 본원은 마을에 있는 결식 아동들에게 하루 한끼 무상급식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의료혜택을 못받는 이들을 위해 기초진료와 보건교육을 진행하며, 도서관과 유치원 같은 시설을 건립해 아이들에게 더 많은 교육 기회를 제공하려 노력하고 있다.

1988년 청량리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한 따뜻한 밥퍼나눔운동(무상급식사업)으로 시작한 다일공동체는 현재 10개국에서 활동 중에 있다.

캄보디아는 다일공동체가 오랫동안 활동한 지역 중 하나다. 프놈 끄라운 주민들에게 다일공동체는 오랫동안 함께한 이웃이며, 꿈을 펼치도록 지원해주는 든든한 아군이었다.

적으면 150명에서 많은 날에는 최대 500명까지 몰려오는 다일공동체 무상급식소가 3주 동안 소비하는 쌀만 약 1,000kg 정도다.

지난 몇 년 사이 마을 환경이 개선되며 급식소를 찾는 아동 수가 줄어들고 있다고는 하나, 이날도 한끼 식사를 위해 10km 밖에서 걸어온 아이를 만날 수 있었다. 아이는 “이곳 아니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곳이 없어요"고 말하며, 비닐봉지에 남은 밥을 담아갔다.

다일공동체의 경우 결식아동을 위한 급식 시설이 잘 갖춰져 있었다

한편 유엔 산하 식량 농업기구(FAO)는 캄보디아 전체 인구의 14.6%에 해당하는 230만명이 식품 불안정 상황에 직면해 있으며, 가정당 평균적으로 수입의 70%를 식료품 구매에 소비하나 불건강한 음식이 대다수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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