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의학연구소, '의과대학 학생들의 인권상황 실태조사' 발표…성희롱 문제도 심각

“교수들마다 인계장이 있다. 심지어 어떤 교수들은 치마를 좋아하니까, 치마를 입고 가면 예후가 좋다는 말도 있다. 실제 치마를 입고 가면, '학생은 치마를 입으니까 보기가 좋네'라고 한다."

“인기 있는 피부과, 성형외과, 정신과까지도 심지어 남자들만 뽑는다. 이유는 ‘여자들이 임신을 하고 애를 낳으면 중간에 그걸 누가 채우냐’는 것이다. 심지어 그런 말을 하는 여자 교수도 있다. 같은 성적이면 여자보다 남자가 더 경쟁력이 있는 것이 현실이라서, 여자는 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고, 더 독해져야 한다. 그러면 ‘독한 년’ 소리를 듣는다. 여자로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40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면 더 여자를 안 뽑게 될 거 같아 두렵다."

이는 지난 23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의과대학 학생들의 인권상황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 나온 의대생과 전공의의 인권실태 심층 인터뷰 중 나온 말이다.

인권의학연구소가 발표한 ‘의과대학 학생들의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예비의료인의 상당수가 교육 과정에서 부당한 인권 침해를 겪은 것으로 조사됐다.

23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의과대학 학생들의 인권상황 개선을 위한 토론회'

인권의학연구소는 지난해 4월부터 10월까지 전국 40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생 1,763명(남학생 1,017명·여학생 743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와 심층면접을 병행했다.

설문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절반에 해당하는 49.5%의 의과대학 학생들이 언어폭력을 겪었다고 답했다. 회식 참석을 강요당한 경험은 전체 응답자의 60%였고, 회식 자리에서 춤이나 노래를 강요받는 경우도 일상화돼 있다고 했다.

단체 기합을 받은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는 16%, 신체적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는 응답자도 6.8%로 확인됐다.

의과대학 내 여학생에 대한 성희롱과 성차별 문제도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체적 성희롱을 경험했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11.1% 였고, 불쾌한 성적 농담을 포함한 언어적 성희롱을 경험한 응답자는 전체의 25.2%에 해당했다. 폭력과 성희롱, 성차별을 겪었다고 응답한 학생은 많았지만, 이를 대학 또는 병원에 신고했다는 학생은 3.7%에 불과했다.

또한 성별을 이유로 교육기회 제한과 차별을 경험한 경우는 여성이 15.7%, 남성이 8.2%로 여성이 남성의 1.9배 수준이었다. 성별을 이유로 전공 선택에 제한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듣거나, 커피 심부름 등 특정 업무를 강요받았다는 응답자는 전체 응답자의 35.1%로 나타났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전공과 업무 선택에 차별을 받은 경우는 58.7%로 남성보다 3.3배 높았다.

진로에 불이익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피해자들의 두려움도 있지만, 문제 제기를 해도 대학이나 병원의 대처가 미흡한 것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됐다.

조사에 참여한 인하의대 최규진 교수는 "의대 안에도 상담 센터가 있지만, 그 안에도 결국 평생 볼 수밖에 없는 의대 교수가 있고, 찾아가더라도 내부에서 문제를 누르고자 하는 기제가 작동한다"고 전했다.

그는 가해자 처벌을 위한 체계와 피해자 보호를 위한 메뉴얼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의과대학 학생들의 인권 상황'을 발표한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 김서영 부회장은 위력에 의한 부당한 대우와 인권 침해를 강조했다.

김 부회장은 "의료계 내 인권 침해 문제는 개개인의 문제가 아닌, 의료 공동체 모두의 문제"라고 지적하며 "학생 개개인은 의료계 인권 발전을 위한 소모품이 아니다. 지금 당장 개선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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