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임세원 교수의 추모식에서 울려퍼진 그를 떠나보내는 가족, 동료, 환자들의 이야기들

‘환자분들의 밝은 미래를 위해 몸바쳐 헌신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 곳에서는 근심없이 편히 쉬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립습니다.’

‘잊지 않고 살겠습니다.’

지난 12일 故 임세원 교수 추모식이 열린 고려대 의과대학 유광사홀 앞에는 고인을 그리워하고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후배, 환자, 동료들이 작성한 글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 그리움들의 끝엔 환하게 웃는, 그리고 의연함이 엿보이는 임 교수가 자리하고 있었다.

의사의 길을 걷는 기자 또한 숙연한 마음으로 그의 앞에 국화 한 송이를 올려놓았다.

그렇게 하나 둘 그를 기리는 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졌고 곧 유광사홀은 가득찼다.

추모식 시작 전 복도에 배치된 분향소에는 짧은 줄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故 임세원 교수를 잊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하나되어 국화 한 송이 씩 올려놓고 추모했다. 고인의 웃는 모습에서도 의연함이 비쳐졌다.

복도의 한 쪽 벽에는 작은 포스트잇이 준비되어 있었다.

한 학생이 진심 어린 자세로 오랫동안 포스트잇에 글을 작성했다.

그 포스트잇에는 ‘환자분들의 밝은 미래를 위해 몸바쳐 헌신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 곳에서는 근심없이 편히 쉬시길 바라겠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짧은 글을 써서 제각기 고인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겼다.

유가족과 후배, 동료, 환자 등 300여명의 관계자들이 홀을 가득 채운 가운데 진행된 추모식은 고인을 향한 묵념으로 시작됐다. 이어 동료, 지인들의 추모사가 낭독됐다.

고인의 제자이자 동료였던 강북삼성병원 김선영 임상강사는 추모사를 통해 고인을 잃은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임세원 교수님, 저희 제자들은 교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마음이 힘든 환자들을 위해 끝까지 연구할 것이며 아무도 돌보지 않는 그들을 위해 기꺼이 손을 내밀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성실과 헌신으로 저희를 키워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김선영 임상강사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고인이 마음이 힘든 환자들을 위해 노력하고, 제자 양성 힘을 썼는지가 엿보였다.

임세원 교수와 ‘보고 듣고 말하기’란 자살 예방 프로그램을 함께 개발한 권순정 공군자살예방교관은 고인이 평소 보여준 ‘의사로서의 열정’을 추모사를 통해 전했다.

'이 프로그램이 스스로 생명력을 가지고 계속 전파되면서 우리의 진심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리고 외국인이지만 한국어를 배운 사람들까지도 모두 보고 듣고 말하기를 통해 서로를 지켜줄 수 있기를 바란다'는 고인이 생전에 남긴 말을 전한 권순정 교관의 추모사가 이어지자 유광사홀에는 이 말을 지키기 위해 남은 사람들이 더욱 더 정진해야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안전한 세상을 만들고, 보고 듣고 말하기가 더욱 전파되기를 바라는 마음, 고인이 늘 사람들의 곁에 함께 살아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기자에게도 진하게 전해졌다.

추모사가 이어질 수록 그를 잃은 안타까움과 그리움은 더욱 짙어졌다.

임 교수의 동료이자 선배였던 신영철 교수는 “세상 사람들은 당신을 의인이라고 말합니다. 혹은 우리 시대의 영웅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 가슴속에 남아있는 당신의 모습은 의인도 영웅도 아닌, 너무나 평범하고 너무나 인간적인 나의 동료, 나의 친구, 나의 후배, 평범한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라고 고인을 기렸다.

신 교수의 추모사 후에는 임 교수의 발자취를 보여주는 영상이 나왔다.

진지하게 환자의 고민을 들어주는 모습, ‘보고 듣고 말하기’ 프로그램에 대해 발표하는 모습, 회식 자리에 여러 지인과 함께 있는 모습, 학술대회에서 시상을 하는 모습 등이 잔잔한 음악과 함께 흘러나오자 생전에 고인이 보여주었던 순수한 삶과 죽음 직전의 의연함이 떠오른 듯 곳곳에서 나직한 탄성과 울음이 터져 나왔다.

너무나도 평범한 한 의사의 죽음이 더욱 와닿았던 순간이었다. 누구보다도 상심이 클 유가족이 보여준 모습은 기자에게 큰 울림을 남겼다.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저뭅니다. 아직도 남편을 계속 기다리는 강아지 애봉이가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합니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환자분들은 남편 덕분에 잘 치료가 되어 지내고 있다며 제 손을 잡고 우셨던 많은 환자분들을 보면서 남편이 따뜻하고 여린 마음으로 항상 환자들의 아픔에 같이 아파했던 일들이 더욱 생각납니다. 평소 알 수 없는 우울증으로 힘들어했던 남편이 그렇게 아프게 간 모습에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이는 평생 제 가슴에 담고 가야 할 아픔으로 생각합니다. 남편의 아픈 죽음이 꼭 임세원법으로 결실을 맺어 남편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직은 가해자를 용서하겠다는 말은 못하겠지만 남편이 항상 자랑스러워하고 열심히 하였던 정신질환환자들의 치료환경이 하루 빨리 개선되길 바랍니다. 가족도 이에 함께 하겠습니다.'

동료이자 선배인 신영철 교수가 '평소 고인의 뜻대로 정신질환환자 치료 환경이 하루 빨리 개선되길 바란다'는 고인을 향한 유가족의 편지를 대독하자 가슴에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이어 동료들이 고인과 유가족의 뜻을 받들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결의문이 낭독됐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의 권준수 이사장 등은 이 자리에서 “고인의 죽음을 계기로 안전한 의료 환경이 구축되고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편견과 차별 없이 쉽게 진료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며 이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슬픔에 잠겼던 사람들 모두가 결의에 찬 상태로 추모식은 끝이 났다.

추모식을 마치고 나가는 길, ‘생명이 위협받는 순간에도 우리를 살펴봐 줘서 고마워요. 덕분에 우리가 살았어요. 우리 함께 살아보자는 뜻 잊지 않을게요’라는 애도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고인의 뜻을 전부 다 헤아리기에는 아직 부족한 의대생이지만, 고인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었을지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나직하게 읊조렸다.

“임세원 교수님,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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