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협 이승우 회장 "최전선에 있는 전공의 한사람 한사람이야말로 고난 속 영웅들"

한해를 마감하는 날 자신의 환자로부터 흉기에 찔려 사망한 한 의사의 비보로 의료계가 충격에 빠진 가운데 2019년 기해년 첫날 본지와 만난 대한전공의협의회 이승우 회장은 지난해 의료계에 있었던 사건사고들을 돌아보며 침통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정신건강의학과를 전공하고 있는 이승우 회장은 이번 사건은 안전하지 못한 의료환경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라며 지난 한해 끊이지 않았던 응급실에서의 의사 폭행 사건이 사회에 공론화되며 응급의료기관 내 폭력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 것처럼 의료인들이 안전하게 진료할 수 있도록 일반 진료실에서의 폭행 근절 방안 또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의사들이 안전하게 진료할 수 있는 의료환경, 수련환경을 만드는 것이야 말로 환자를 위한 것임을 강조했다.

- 강북삼성병원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에 전 의료계가 패닉에 빠졌다.

먼저 삼가 고인에 대한 명복을 빌며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겪게 된 유가족들에게 진심으로 깊은 위로를 전하고 싶다. 또한 정신건강의학과를 수련하고 있는 전공의로서 스승을 잃은 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다. 안전하지 못한 우리나라 의료환경 현실에 무기력해지고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현재 진료 및 수련 환경이 안전하지 못한 이유는 교수 등 상급자에 의한 폭행 및 성희롱, 환자에 의한 폭행 및 성희롱, 무면허의료행위의 만연 등 다양하다. 이번 사건도 의료기관 내 환자에 의해 일어난 사건으로 결코 안전하지 못한 의료환경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응급실 의료진 폭행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자 응급의료법이 개정된 것처럼 이번 사건을 통해 의료법과 정신건강복지법(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의 변화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진료환경과 수련환경이 안전하지 못하다면 환자도 결코 안전하지 못하다.

- 안전한 진료환경을 침해하는 요인으로 꼽은 무면허의료행위는 지난해 대리수술 등으로 환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며 수면위로 올라오기도 했다.

대리수술로 환자가 사망하는 믿지 못할 일들이 알려지는 등 의료 현장의 비윤리적인 모습에 국민과 의료계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병원 현장에서 수련을 받는 전공의들은 의료기구상 등 비의료인이 수술을 하는 무면허의료행위보다 더 비일비재한 수많은 불법행위를 체감하고 있다. 바로 이른바 PA라고 불리는 무면허의료인력이 하는 불법 행위다.

심지어 의대생들이 다 지켜보고 있는데도 버젓이 불법이 난무하고 있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의사 양성 과정에서 무엇보다 강조되어야 할 의사의 전문가주의(Professionalism)와 윤리가 사라지고 일부 동료의사들이 이런 불법행위를 당연시 여기고 답습하고 있다는 데 있다.

- 무면허의료행위 근절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는지.

지난해 PA문제가 불거지자 정부는 PA를 제도화, 합법화 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매우 무책임한 해결방식이다.

무면허의료행위는 편법이 아니라 명백한 불법이다. 현실적으로 무면허의료인력의 의료행위가 만연해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제도화 한다는 것은 안 될 일이다. 불법임을 인식하고 문제에 초점을 두고 의료기관이 이를 근절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 불법을 저지르지 않고서는 병원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수술을 미루고 입원환자를 더는 받지 않았어야 한다. 전공의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외래환자와 수술환자가 얼마나 되는지를 환자안전보다 우선하는 우리나라 의료 현실은 바뀌어야 한다.

의료계 또한 환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국민이 의사를 신뢰할 수 있도록 자정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 그렇다면 대전협에서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지난 9월 임기를 시작하면서 ‘윤리인권국’을 개설했다. 기존에 정책국에서 부분적으로 맡았던 수련병원 내 비위행위 근절을 별도의 국을 신설해 특화했다. 윤리인권국을 통해 비위행위 근절은 물론 의료계 자정선언에도 앞장서고자 한다.

- 이외에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측면에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전공의 수련에 대한 국가적 책임을 강조하고 싶다. 전공의 수련비용을 국가에서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마련돼야 한다. 선진국에서는 정부 예산 또는 사회보험료를 재원으로 전공의 수련비용의 상당 부분을 직간접적으로 부담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의료질평가지원금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수련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전공의법 제3조(국가의 지원)에 따르면 국가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위해 필요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이에 따른 시책 추진에 노력해야 하며, 국가는 전공의 육성, 수련환경 평가 등에 필요한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이런 국가 차원의 재정 지원은 수련환경 개선의 필수 전제 조건이다.

이러한 국가 차원의 재정 지원은 수련기관의 부담을 줄이고 역량 중심의 수련체계 개편으로 의료의 질을 높이고 환자 안전과 국민 건강에도 기여할 것이다. 국민 공감대를 바탕으로 별도의 예산을 편성하고 이를 현명하게 배분하여 사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 시급하다.

- 역량 중심의 수련프로그램 마련에도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당장 직접적 인건비 지원, 재정적 지원이 어렵다면 우선적으로 역량을 갖춘 전공의를 키워내기 위해 수련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을 도와야 한다는 말이다.

현재 전공의의 연차별 수련교과과정은 일부 전문과목을 제외하면 환자취급범위, 술기 횟수 등에 대한 정량적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연차별 전문성이나 진료 난이도 등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표준화되고 역량을 갖춘 수련교과과정을 개발하여 운영하기 위해서는 전문과목 학회가 주도하는 정량적, 정성적 평가 기준의 수립이 선행돼야 한다. 또한 보건복지부 수련환경평가위원회 산하에 자문단을 설치해 학회별 자문위원과 전공의 자문위원을 위촉하고 평가 기준을 보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정부가 제반 비용에 대한 재원을 전적으로 지원하고, 학회는 역량을 강화하는 동시에, 수련환경평가와 학회별 평가를 일원화해 불필요한 자원 소모를 막고 교육수련의 내용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도록 개선해 나가야 한다.

전공의 수련환경을 개선하는 일은 수련병원에서 환자 안전을 제고하는 일이기도 하다. 국가는 전문의 제도와 전공의 수련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전공의들이 적절한 역량을 갖출 수 있는 수련환경을 조성하고 이를 평가해야 한다.

- 남은 임기 동안 무엇에 집중할 생각인가.

의료계 최전선에 있는 우리 전공의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고난 속의 영웅들이다. 대한민국 1만6,000명 전공의 동료들을 대표한다는 책임감을 명심하고 항상 배우는 자세, 듣는 자세로 초심을 잃지 않겠다.

회장 임기를 시작하면서 강조했던 3가지 권리를 새해애도 끊임없이 외칠 것이다. ‘피교육자뿐 아니라 한 사람의 전문가로서 존중받을 권리’, ‘보다 안전하고 떳떳한 의료환경에서 진료할 수 있는 권리’, ‘전문의로서 국민 앞에 당당할 수 있는 수련교과과정을 제공받을 권리’가 바로 그것이다.

대한민국 전공의들과 우리 의료계의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부족한 점이 많지만 격려와 응원을 발판으로 나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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