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형곤의 醫藥富業

지난 12월 31일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세원 교수가 환자가 휘두른 칼에 상해를 입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31일 오후 5시 44분경 ‘양극성 정서장애’를 앓고 있던 정신건강의학과 외래 환자 박모(30)씨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상담을 하던 임세원 교수에게 미리 준비한 흉기를 휘둘렀고 도망가는 임 교수를 뒤쫓아 가슴 부근을 수차례 찔렀다고 한다. 임 교수는 응급실로 옮겨져 응급처치를 받았지만 이날 오후 7시 30분경 사망했다고 알려졌다.

송형곤 젬백스&카엘 대표이사

칼에 찔린 상처를 자상(刺傷)이라고 하는데 다발성 자상 환자의 대부분은 저혈량성 쇼크가 동반되고 그것이 직접 사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응급실에 이러한 자상 환자가 오면 제일 먼저 출혈 부위를 막아 지혈함과 동시에 대량의 수혈을 통해 소실된 혈액을 보충하는 처치를 해야 한다. 하지만 대동맥 등 큰 혈관이나 심장 등에 직접적인 손상이 심한 경우는 이러한 처치 자체가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다. 임 교수의 경우도 사고 발생이 오후 5시 44분이고 사망이 선언된 시각이 오후 7시 30분경이라고 알려졌는데 사고 발생 후 두시간도 안돼 사망했다는 점은 이미 손상이 치명적이라 백약이 무효였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최근 진료 중인 의사에게 환자가 폭력을 행사하는 사건이 심심치 않게 발생했다. 대부분은 응급실에서 음주자에 의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폭력에 의해 상해의 정도도 생명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차원이 다르다. 왜냐하면 폭력의 결과가 사망이기 때문이다. 또한 일과 시간 중 외래에서 도망가는 의사를 쫓아가 살해한 것과 작은 병원도 아닌 유명 대학병원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해진다. 간단히 말해 “벌건 대낮에 인력경비업체가 상주해 있는 유명 대학병원 외래에서 의사가 자기가 보던 환자에게 칼 맞아 죽은 것”이다.

의사가 되기 전 수년간 의과대학에서, 그리고 의사가 되고 난 후 병원의 수련과정에서 의사는 의사가 추구해야 하는 최선의 가치를 인간에 대한 존중과 생명이라고 배운다. 그런데 생명을 지켜야 할 의사가 진료 현장에서 강도도 아니고 적군도 아닌 자신의 환자에게 칼 맞아 죽은 것은 참으로 심각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개인 의원과 병원, 상급종합병원, 대학병원 등 각종 의료기관의 외래와 병동, 그리고 응급실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들 중에 이번 일이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의사는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목숨을 담보로 하고 환자를 볼 의사가 몇이나 될지 필자는 알 수가 없다.

환자 보며 욕 듣고 두들겨 맞고 발길질 당하고 심지어는 칼 맞아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저수가와 관련된 많은 문제, 문재인 케어와 비급여 문제, 한방사들과 관련된 의료일원화 문제 등은 차라리 행복한 고민인 듯 싶다.

이대로는 안된다. 의사는 군인이 아니다. 군인은 적군과의 전투에서 국가를 위해 한 목숨 바치는 것이 가치있지만 의사가 일방적인 폭력에 목숨을 내놓고 환자를 보는 것은 말도 안된다.

이제는 바꾸어야 한다. 의료계는 모든 역량을 안전한 진료 환경 보장에 집중해야 할 때이다. 법을 만들어 병원 입구에 금속탐지기를 설치하든지, 진료실마다 경비원을 상주 시키든지 이제는 바꾸어야 한다. 안전한 진료 환경이 보장될 때까지 면허증을 반납하고 환자를 보지 말아야 한다.

아둔한 손을 가져 흉부외과를 하지 못하고 정신과를 택하셨다는 임세원 선생님. 환자들에 대한 선생님의 헌신과 열정은 많은 후배의사와 환자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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