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대 박종훈 교수

한 동안 영리병원인 제주 녹지국제병원의 설립 허가가 논란이 되더니 이제는 내국인 진료 허용 여부가 이슈로 등장했다. 시민단체는 영리병원의 등장에 대해 국민의 건강권이 훼손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고 대한의사협회도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의사협회의 반대 논리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실질적인 반대 이유는 영리병원 설립에 대한 막연한 저항감과 불안감을 갖고 있는 것에 기인하지 않을까 싶다.

과연 영리병원은 국민의 건강권 확보와 의료의 공공성을 훼손할까? 사회주의 의료체계를 갖고 있는 유럽 국가나 일부 의료 후진국에서도 영리병원은 존재한다. 유럽의 경우는 응급이 아닌 경우 마냥 대기해야 하는 환자들 가운데 경제적 여유가 있는 자들이 신속한 진료를 위해 찾고, 후진국의 경우는 양질의 진료를 얻고자 자비로 영리병원을 찾아서 신속하고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다. 분명 차별화된 상황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국민들의 저항 없이 의료의 일정 부분을 차지하면서 존속하고 있는 것이 우리식의 관점에서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그렇다고 영리병원을 허용하고 있는 나라들에서 국민 건강권이 위협받아 문제가 됐다는 보고 또한 없다.

영리병원에서의 진료는 건강보험에서의 탈피를 의미한다. 즉, 영리병원에서 진료를 보려면 환자는 진료비를 전액 본인 부담해야 한다. 우리의 경우 기본적으로 진료비의 20%를 본인부담 하는 것이니 일반 병원에서의 수익성과 동일하게 하려면 5배를, 그리고 영리병원의 특성에 맞게 운영하려면 아마도 10배는 내고 진료를 받아야 할 것이다. 과연 그 정도의 진료비를 내고 기존의 병원이 아닌 영리병원을 찾을 환자가 있을까? 영리병원을 찾을 정도로 대부분의 병원에서 제공하는 진료가 마냥 기다려야만 하거나 의료 수준을 의심하게 할 정도일까? 개원가에서 감기 치료는 본인 부담금이 5,000원을 넘지 않는다. 그런데 감기 치료 받자고 5만원 내고 갈까? 척추 수술을 받는데 총진료비가 1,000만원이 든다고 가정했을 때 본인 부담은 200만원일 텐데 2,000만원을 내고 영리병원을 가야 할 정도로 기존의 척추 전문병원이나 대형병원의 수준이 낮을까? 암 치료를 위해 유수의 대학병원이나 암센터를 제치고 영리병원을 갈까? 얼마나 대단한 의료를 제공하기에 10배 이상을 지불하면서까지 영리병원을 찾는 일이 벌어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의료의 공공성 훼손과 국민의 건강권이 위협받는다는 근거는 무엇일까? 설마 영리병원에서의 진료가 건강보험 적용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럴 수는 있다. 영리병원에서는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는 신의료 기술들이 자유로이 시행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어차피 공공성이나 건강권과는 무관한 시술들이며 적절성이 보장되면 당연히 건강보험체제로 들어올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말이 내국인 진료지 실제 진료의 대부분은 외국인 진료이거나 신의료기술 또는 어차피 건강보험적용이 안 되는 영역이 해당되기에 일반 국민의 건강권과는 큰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영리병원 도입이 규제 일변도의 의료시스템에 숨구멍을 만드는 창구가 되고 차체에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문제를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는 될 수 있을 것이다.

얼마전 국민들의 상당수가 영리병원 설립에 반대한다는 설문 조사가 보도된 적 있다. 설문에 답한 국민들은 영리병원을 잘 알고 답을 했을까? 영리병원이 생기면 가진 자 만이 제대로 된 의료혜택을 받을 것이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받은 것은 아닐까? 옆집 아이가 공부를 잘 하는 것이 우리 집 아이에게 불리할 것이라는 이상한 사고가 매사에 진취적이기 보다는 패배의식을 심어 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보편적 의료는 지체되지도, 수준이 낮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계도 나서서 반대하는 논리가 깔끔해 보이지 않는다. 의약분업 이후 대한민국 의료계는 단 한번도 새로운 시스템을 제안해 본 적이 없다. 늘 방어만 하고 있을 뿐이다. 공격이 없는 수세적인 방어로 승리하는 전투는 없다. 언제까지나 우리는 반대만 할 것인가. 반대하고 싶다면 그 명분이라도 아주 정교하고 분명했으면 싶다. 그것이 전문가 단체가 보여 할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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