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대 박종훈 교수

최근에 종종 듣는 말이 있다. 선택진료제가 없어진 뒤 대학병원으로 환자의 쏠림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고 문재인 케어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이러한 상황은 더욱 심화될 것이기에 결국 대형병원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것이다. 과연 이 말은 맞을까? 그렇게 된다면 어떤 상황이 될까? 문케어는 정말 대형병원에 유리한 것일까?

올해 본격적으로 시행된 전공의 특별법은 대형병원들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공의 근무시간이 실질적으로 단축되다 보니 절대적인 인력이 부족하게 되었고 이는 현행법상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도 해결이 불가능하다. 대형병원 상황 때문에 전공의를 단기간에 늘릴 수도 없고, 장기적으로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의사 인력의 적정성 문제에 부딪히며 또다른 고민을 낳게 한다. 이렇다보니 대형병원들은 자연스레 전공의 인력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여기에 일반 직원들의 근로시간 준수, 최저임금 상승 등의 일련의 이슈들이 올해 본격적으로 부상하면서 그야말로 의사뿐 아니라 간호사, 약사 등 의료인력의 부족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고 이는 결국 모든 의료 인력 확보의 전쟁, 그리고 결국 인건비 상승으로 이어졌다.

상급종합병원의 지위만 확보하면 30% 가산을 일괄 적용받는 시스템 하에서는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경증의 환자를 진료하는 것이 과거에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근로시간 준수 개념도 모호했고 전공의 근무시간은 더더욱 큰 문제가 되지 않던 시절에는 그랬다. 근무는 고되지만 기존 인력으로도 불어나는 환자를 진료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시설도 대형병원이라는 그 자체로 충분한 강점이 있었기에 환자들의 불만은 충분히 버틸만했다. 그러나 이제 대형병원의 경우 경증 질환 진료가 기관의 부담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수가는 그대로인데 환자들의 의료서비스에 대한 눈높이가 올라가 있고 그 외 시설에 대한 요건들도 강화된 탓에 시설 투자가 만만치 않게 증가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앞서 말한 전공의 특별법, 근로시간 준수 등으로 인한 의료인력의 인건비 상승이 가파르게 올라간 탓에 병원들의 관리비는 경증 질환자의 증가세를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도달하고 있다. ‘경증 질환으로 오셨으니까 불편함을 감수하셔야 해요’라고 환자들에게 말할 수도 없는 일이고, ‘경증 질환이니까 의사선생님들도 지원인력 없이 알아서 진료하세요’라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 의료인력을 늘려서 더 많은 환자, 그것도 경증 질환 중심의 장기 재원 환자를 본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

우리나라 환자들의 재원기간은 OECD 평균의 두배 이상이다. 이는 현재 병상의 절반으로도 현 진료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중증 질환자를 중심으로 진료할 것을 전제로 인정받고 있는 대형병원이 원칙대로 중증 질환 위주로만 진료 한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병상을 줄일 수 있을까? OECD 평균의 재원기간, 그리고 중증질환 위주로 대형병원들의 진료 패턴이 전환된다면 현재의 의료인력으로도 충분할 수 있지 않을까?

문재인 케어가 본격적으로 시행돼 경증 환자까지 대형병원으로 몰리면 과잉진료는 불을 보듯 뻔하다. 비급여의 상당 부분이 급여화 되었으니 수익성은 바닥을 칠 것이고, 때문에 과잉진료로 가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로 인해 의료비는 폭증할 것이고 대형병원은 대형병원대로 건강하지 않은 고도비만의 상태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다가 결국 쓰러지게 되겠지만 말이다. 정부는 정부대로 의료비 급증으로 인해 두 손을 들것이고 분명 총액계약제라는 카드를 쓸 것이다. 별 수 없지 않을까? 그 수밖에. 이런 체제 하에서 문케어는 모두가 망하는 길이다. 개원의는 어떨까? 끊임없이 수가 인상을 주장한다. 환자의 진료패턴이 대형병원 중심인 왜곡돼 있는 시스템을 그대로 두고 수가만 인상한다면 대형병원의 입장에서는 경증 질환 진료는 더욱 매력적이게 될 것이다.

왜 우리는 의료전달체계를 제대로 확립하지 못할까? 약간의 열만 나도 환자가 알아서 서울 대형병원으로 이동하는 그런 나라가 있을까? 오사카에 거주 하는 환자가 동경으로 몰리고, LA 거주 환자가 워싱턴이나 뉴욕으로 몰린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교육과 의료에 대한 요구는 누구나 끝을 보려고 하는데, 의료제도가 정치적인 논리에 끌려왔기 때문이다. 누구나 최상의 진료를 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에 어떤 질환으로도 대형병원에서의 진료는 허락돼야 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사실 전달체계를 바로 잡아보려는 시도는 종종 있어 왔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도 그럴 것이 환자 중심의 전달체제 개편이 아닌 공급자 중심으로 고민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계속 실패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하는 것이 답일까? 환자가 알아서 전달체계를 제대로 밟게 하는, 경증인데 대형병원 진료하면 환자 본인부담을 왕창 안기는 방식은 이미 실패했다. ‘있는 사람만 갈 수 있다’는 프레임에 걸린다. 근거가 없기 때문에 대형병원에 페널티를 줄 수도 없다.

그런데 수가는 질환의 난이도 별로 정해졌음에도 가산료는 기관에 일괄 적용되는 것일까? 현행 체제라면 국립암센터는 우리나라 어느 상급종합병원보다 암치료에 있어서 낮은 수가를 받아야 한다. 왜? 진료의 질이 낮아서가 아니라 기관이 상급이 아니라서 그렇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대형병원의 경우 중증 질환은 지금보다 훨씬 높은 수가를 주고 경증질환은 일반 병원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다. 재원기간 단축을 전제로 대형병원이 알아서 선택하라는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대형병원은 목숨 걸고 경증질환을 줄이려 할 것이고 재원기간도 줄이려 들 것이다. 오는 환자를 어떻게 막냐고 하겠지만 정말 그럴까. 이 정도 병이면 작은 병원에서 치료하셔도 된다는 주치의의 권고가 있다면 대부분의 환자는 들을 것이다. 게다가 비용까지 비싸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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