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반우 정혜승 변호사…2012년, 의료인 의료기관 다중운영 금지조항 이후

문재인 케어’의 취지는 건강보험 보장성을 높여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덜자는 것으로, 취지 자체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가 국가의 모든 구성원으로부터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건강보험제도 및 의료정책 시행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을 직시하고 원칙에 따라 수정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본 연재에서는 그간 문제가 되었던 사례들을 중심으로, 문재인케어 시대에 법률적 정비가 필요한 부분들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의료인은 어떠한 명목으로도 둘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할 수 없다.'

의료법에 이 조항이 도입된 지도 6년이다.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이 조항 도입 당시 의료계는 혼란에 빠졌다. 도입 전에도 의료인이 2개 이상의 의료기관을 형식적으로 ‘개설’하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했다. 2개 이상의 개설신고·허가를 받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대법원은 2003년에 의사가 여러 의료기관 운영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는 판결을 했던 상태였다. 의사가 자신이 개설한 곳 외의 의료기관에서 직접 의료행위를 하는 것이 아닌 한, 경영에만 참여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국회에서는 이같은 조항을 도입해버린 것이다.

사실 국회의 심사 과정에서는 부정적 의견이 더 많았다. 공정거래위원회와 법제처는 의료인이 다른 의료기관에 투자·경영하는 것까지 금지하는 것은 국민의 건강을 보호·증진하는 의료법의 목적을 벗어난 과잉규제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심지어 보건복지부는 현실적으로 개설자인 의료인이 다른 의료인으로부터 자본을 투자받는 것까지 규제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으며, 다른 의료기관에 대한 경영참여를 통해 공동구매·공동마케팅 및 경영정보 공유 등 의료기관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는 측면 등이 있으므로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제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법률 개정안은 통과됐다.

형사상 기소 : 의료법위반과 사기죄

이 조항 개정의 배경에는 유디치과 사태가 있었다는 점은 이미 익히 알려진 바와 같다. 개정 이후 1년이 넘게 지난 2013년 11월 20일이 되어서야 T병원이 이 조항 위반 혐의로 최초로 기소됐다. 개정 직후부터 사건들이 생기지 않은 것은 기존 대법원 판례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조항이기 때문에 당장 현실에 적용하기는 어려웠던 점, 외부에서는 의료인의 다중운영 상황을 알기 어려운 점, 대체 ‘운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호한 점 등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형사 기소는 의료법 제33조 제8항 위반죄 뿐 아니라, 운영기간 동안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은 요양급여비 전액에 대한 ‘사기죄’도 포함하여 이루어졌다. 마치 일반인의 사무장병원과 같은 취급을 한 것이다. 요양급여로 받은 비용이 매우 크기 때문에 형법보다 가중처벌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죄로 기소됐고, 형량도 높았으며 구속영장 발부의 위험성도 높았다.

의료법 제33조 제8항에 대한 헌법소원은 여전히 진행중

T병원에 대한 형사 재판에서 위 의료인 의료기관 다중운영 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취지의 위헌법률심판제청과 헌법소원심판청구가 이어졌다. 헌법재판소는 2014년에 접수된 사건을 아직까지도 판단하지 않고 있다. 2016년에는 관련 사건들을 모아 헌법재판소가 공개변론까지 열었다. 필자도 공개변론에 참여했는데 당시 재판관들은 2012년 조항 개정 당시에는 법개정에 반대했던 보건복지부의 입장이 헌법재판에서는 왜 바뀌었는지 궁금해했다. 보건복지부 측은 법개정 이후에 살펴보니 다중운영 의료기관은 사실상 사무장병원과 유사한 양태를 보이기 때문에 제한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 것이라고 답변했다. 즉, 법 개정 이후 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다중운영되는 의료기관이 의사가 운영하는 사무장병원, 즉 ‘의사 사무장병원’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을 창설해낸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빠른 시일 내에 이 조항의 위헌 여부에 대해 판단해 주어야 조항 적용으로 인한 혼란이 해소될 것이다.

행정처분 : 요양급여 환수처분

‘의사 사무장병원’이라는 명목 하에, 다중운영된 의료기관들이 받은 요양급여비용은 전액 환수처분되기 시작했고, 환수처분에 앞서 요양급여 지급보류처분이 이루어졌다. 예컨대 선배가 후배 병원에 자금을 투자하고 운영을 관여한 경우, 후배의 병원의 요양급여비용의 지급이 보류되고 환수처분이 행해진 것이다. 심지어 지급보류처분은 법률상 근거 없이 ‘환수를 못할지도 모르니 미리 지급을 보류한다’는 취지의 복지부 내부 지침에 따라 행해졌다.

지급이 보류되고 환수처분을 당한 의료기관들은 하나 둘 문을 닫았다. 그러나 의문은 계속됐다. 다중운영을 한 사람은 선배인데 후배의 병원에 환수처분을 하는 것이 옳은가? 더 나아가, 그 후배는 병원에서 제대로 된 진료를 했고 선배는 운영을 도운 것에 지나지 않은데 왜 그 진료의 대가를 전부 환수해 가는가?

환수처분 취소소송 승소…환수처분에 제동이 걸림

이같은 의문에 기초하여 환수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이 진행됐다. 1심 법원은 환수처분은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렸지만, 유디치과의 사건에서 항소심 법원은 최초로 환수처분을 취소하는 판결을 했다. 비록 의료법에 위반하여 다중운영을 했다 하더라도 의사가 진료하고 요양급여기준에 따라 비용을 받은 것이므로 요양급여비용 청구에 ‘속임수나 부당한 방법’은 없었다는 취지였다. 이 판결을 뒤따라 환수처분을 취소하는 판결이 몇 차례 행해졌고 대법원이 최종 심판을 위해 심리하고 있다.

형사상 사기죄 불기소 경향

T병원을 비롯한 법 시행 초반에는 요양급여를 주로 하는 병원이 다중운영으로 적발되는 경우 공단에 대한 사기죄를 적용해 위와 같이 중한 형에 처해지고 인신구속까지 행해졌다. 하지만 검찰도 사기죄 기소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공단을 ‘속여서’ 요양급여비용을 받았다는 것인데, 다른 의사가 운영에 관여하였지만 어엿하게 의사가 개설을 했고, 그에 따라 요양기관으로 ‘당연지정’되었고, 다른 불법행위(과잉진료 등) 없이 환자를 진료하고 낫게 해주었는데 이 과정에서 공단이 ‘속았다’고 보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을 비롯한 전국의 검찰은 의료기관의 다중운영기관 행위가 발견되더라도 의료법위반죄만 적용할 뿐, ‘사기죄’의 적용은 사실상 중지하고 있다. 이 조항 위반으로 받는 현실적인 위험은 매우 줄어든 셈이다.

의료인 의료기관 다중운영금지조항은 도입 당시부터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일단 개정된 이후 공단은 ‘의사 사무장병원’이라는 자극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요양급여비용 환수에 총력을 기울였다. 본래 ‘사무장병원’이라는 용어는 비의료인이 의료기관을 장악할 때나 쓰던 용어이다. 국가가 자격을 부여한 의사에게 ‘사무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이 조항의 시행된 지 불과 6년 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각종 문제점이 나타나는 이유도 무리한 개정 과정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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