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표 광주광역시의사회 명예회장

횡격막탈장 진단이 늦어져 유명을 달리한 어린이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밝힌다. 무슨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겠지만 우리 의사들은 가족의 비통함을 진정으로 같이 나누고자 한다. 이 안타까운 사건에 누군가의 잘못이 있으면 응당 대가를 치러야 한다.

하지만 여기 연루된 의사 3명 모두를 법정 구속한 법원은 과연 ‘국민을 위한 합리적 사법제도를 구현’했는지 의심스럽다. 처음 단순한 복통 환자를 진료한 응급실 의사까지도 12일 후의 갑작스런 흉부 증상으로 인한 사망과 연결시킨 점이나 도주할 우려가 있다고 법정구속을 시킨 점은 고대 진(秦)나라의 상앙 변법을 연상시킨다.

진나라는 공손앙의 법가사상을 통치이념 삼아 가혹한 법률 지상주의로 질서를 잡아 중국 통일의 기반을 마련했다. 하지만 무자비한 처벌로 인해 반란이 일어나고 불과 통일 15년 만에 멸망했다. 이런 과도한 법집행으로는 법원의 목표인 '사회갈등을 해소하고 통합에 기여할‘ 수도 없고 ’신뢰받는 좋은 법원으로 거듭날‘ 수도 없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법이 정의 실현의 유일한 수단은 아니며 완벽하지도 않기 때문에 법 만능주의에 빠져선 안 된다. 과거의 형벌은 잔혹하기 그지없었다. 어질기로 소문난 한나라 문제는 죄인의 얼굴에 먹물을 들이거나 코, 발뒤꿈치, 손목, 팔다리를 자르거나 불알을 썩게 하는 육형(肉刑)이 너무 지나치다해 매를 때리는 태형으로 완화시켰다. 막상 이 법이 시행되자 죄인들은 곤장을 맞다가 대부분 죽어버렸다. 오히려 개악이 됐지만 후대 경제에 이르러서야 곤장의 수를 줄여 나갔다. 법은 항상 불완전하며 나쁜 법일지라도 쉽게 바꾸기가 힘들다. 우리나라에서 육형이 폐지된 것은 고종 때의 일이다.

완전한 법이 있더라도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문제가 된다. 한비자에 나오는 이야기다. 한나라 소후(昭侯)가 술에 취해 꼬꾸라져 잠들었다. 주군이 감기에 걸릴까봐 관(冠) 담당 관리가 옷을 덮어 주었다. 눈을 뜬 소후는 기분이 좋았지만 처분을 발표했다. 옷 담당자는 자신의 직분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처벌하고 관 담당자에게도 자신의 직분이 아닌 월권행위를 했다며 벌을 내렸다. 법이 만능이라 믿는 법가 무리들은 이런 인정머리 없는 판결을 좋아한다.

충절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남송의 악비는 금나라가 전전긍긍하는 주전파 장수였다. 주화파는 악비를 반역죄로 모함했다. 고종은 금나라와 전쟁에 자신이 없었고 이겨봐야 왕권을 유지하기 힘든 처지였으므로 주화파의 “확실한 증거는 아직 없지만 그런 일이 있었을지도 모른다(莫須有).”는 주장을 채택하여 악비를 참수했다. 악비가 없어진 송나라는 멸망의 길을 걸었다. 명백한 증거 없이 개연성과 정황만으로 잘못된 결론을 내리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한 법은 판단하는 사람의 의도에 의해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우리도 국가인권위원회에 재심청구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판정이 번복된 경우가 허다했다.

철학 박사이자 종양내과 의사인 싯다르타 무케르지는 ‘의학의 법칙들’에서 의학의 법칙이란 그야말로 불확실성, 부정확성, 불완전성의 법칙들이다고 한다. 과학은 본질적으로 ‘잠정적’이다. 완전하지 못하다는 말이다. 그중 의학은 인간에 대한 가장 불완전한 정보를 바탕으로 예측하며 완벽하지 않은 결과를 맞는다. 사람들은 의사들에게 완벽한 판단을 내리길 요구하지만 이는 몰이해에서 오는 소박한 희망일 뿐이지 그렇지 않는 것이 의학의 특성이다. 많은 정보를 사용하여 예측하고 거의 완벽한 결과가 도출되는 물리나 화학처럼 취급해서는 안 된다.

예전에 퇴임을 앞둔 광주지방법원장이 소회를 피력했다. ‘지난 법관 시절 피고인의 피치 못할 상황과 정상을 고려하지 못하고 단순한 정의감에 사로잡혀 많은 인신구속을 했다. 그 분들에게 죄를 지었고 항상 후회한다’고 했다. 나는 그 분을 존경하고 신뢰한다. 엄벌주의가 세상을 더 밝게 만들지는 못한다. 법은 공정하고 항상 ‘타당한 구속력’을 행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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